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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호 11월 5일

과학 향기 추천 리스트 프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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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꺽꿀꺽~ 물 먹는 새 만들기

“고무고무, 예전보다 좀 마른 거 같지 않아?”
“아, 물주는 거 깜빡했다. 잠깐만. 금방 가져 올게.”


베란다에서 들려오는 걱정스러운 목소리에 짠돌 씨는 속으로 혀를 찼다. 온 가족의 사랑을 듬뿍 받는 고무나무에게 한동안 물을 주지 않은 사실을 이제야 깨달은 것이다. ‘고무고무’라는 애칭을 가진 고무나무를 위해 빈 페트병에 물을 담아 베란다로 허겁지겁 달려간 짠돌 씨는 화분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녀석, 미안하다. 물 많이 먹고 다시 통통해지렴.


“아빠, 고무고무 목 많이 말랐나 봐. 물이 막 사라져.”
“응. 너무 오래 내버려둬서 흙까지 바싹 마른 거 같네. 아빠가 제대로 못 챙겨서 미안해.”


가뭄에 물 만난 고기마냥 물을 쑥쑥 흡수하는 마른 흙을 보며 짠돌 씨는 또 한 번 혀를 찼다. 별로 춥지 않은 날씨 탓에 건조한 가을이 온 걸 깜빡하고 있었던 게 실수였다. 옆에 같이 쪼그리고 앉아 고무고무의 잎을 만지작거리던 막희가 뭔가를 떠올린 듯 박수를 쳤다. 이럴 땐 십중팔구 짠돌 씨가 ‘귀찮아지는’ 일이 생긴다. 이미 눈치 챈 아내 김 씨는 슬금슬금 베란다 밖으로 나가려는 참이었다.


“아빠, 아빠! 나 되게 신기한 거 깨달았어!”
“음, 막희야…. 아빠 지금 바쁘니까 다음에 얘…기 하면 안 될…? 아냐. 미안해. 마음껏 얘기하렴.”
“있잖아, 흙이 고무고무에게 맘마를 주는 거야!”
“엥? 뭐라고?”
“그러니까! 흙이 먼저 물을 먹고 고무고무가 먹을 수 있도록 맛있게 만들어서 다시 고무고무에게 주는 거라고!”
“저…, 막희야. 아빠가 잘 이해를 못 하겠는데, 좀 더 쉽게 말해주면 안 될까?”

막희는 미간을 좁히며 팔짱을 끼고 과장되게 한숨 쉬었다. “이런 바보 아빠를 봤나” 어디선가 들려오는 환청에 짠돌 씨는 조금 울고 싶어졌다. 난! 고무나무에! 물 준! 죄밖에! 없을! 뿐이고!


“아빠가 물주면 흙이 먼저 먹잖아.”
“먹…, 응. 쑥쑥 잘 먹지.”
“그러면 고무고무가 먹을 게 없잖아.”
“….”
“찬 물을 고무고무가 먼저 먹으면 고무고무가 탈나니까, 흙이 먼저 먹고 따뜻하게 데워서 토해내는 거야. 흙 뱃속에 있는 좋은 것도 잔뜩 넣어서 고무고무 많이 먹어라~ 하는 거지. 어때? 나 똑똑하지?”


흙이 무슨 어미새냐…. 아이답게 기발하다면 기발한 생각이고 과학적으로 아주 틀린 말도 아니었지만, 저 미묘한 비틀림은 대체 어쩐다냐. 그렇다고 유치원생 앞에서 모세관 현상이니 반투막이니 하는 어려운 용어를 늘어놓을 군번도 아니었다. 허리에 팔을 올리고 의기양양하게 서 있는 막희를 멍하니 바라보며 짠돌 씨는 안 돌아가는 머리를 억지로 굴렸다. 으으. 생각할수록 머리 아프다. 누가 나 좀 구해 줘~! 이때 김 씨가 달려나와 구원의 손길을 내민다.

“막희 똑똑하네~! 그럼 막희 생각이 진짜 맞는지 어떤지 한 번 실험해 볼까?”


실험을 시작하고 10분 후, 불에 달궈 구부린 피펫 사이로 붉은색 물이 흘러 들어갔다. 초롱초롱한 눈으로 ‘새’를 주시하던 막희가 순간 탄성을 질렀다. 뒤 꽁무니를 푹 숙이며 물을 뱉어낸 새가 다시 앞으로 힘차게 고개를 숙이며 물을 빨아들이기 시작한 것.


“엄마엄마, 얘 정말 물 잘 먹는다! 왜 이런 거야?”
“응, 고무고무가 물 먹는 비결은 ‘모세관 현상’ 때문이야.”
“모세관?”
“아주 가는 관을 모세관이라고 해. 눈에 보이지 않지만 고무고무 같은 식물의 뿌리나 줄기 속에는 모세관이 다발을 이루고 있단다. 이런 모세관 속에 물이 들어가서 외부보다 높이 올라가는 현상을 모세관 현상이라고 하지.”
“웅, 잘 모르겠어.”

“막희에겐 조금 어려울 수도 있겠네. 음, 막희야. 거기 가느다란 빨대를 여기 빨간 물속에 잠깐 담궈 볼래? 잘 봐, 물 끝이 밖의 물보다 더 올라와있지? 이게 모세관 현상이야.”
“왜 이렇게 되는 거야?”

“물은 자기들끼리 뭉치는 버릇이 있어. 또 관의 벽에도 잘 달라붙지. 그래서 좁은 관을 통과할 때 똘똘 뭉쳐서 위로 쑥쑥 잘 올라가는 거야. 관이 가늘수록 이런 현상이 잘 일어나. 엄마가 만든 새도 부리가 좁고 가늘잖아? 그래서 물을 꿀꺽꿀꺽 잘 마신단다.”


“그런데 왜 이게 고무고무와 관련이 있어? 흙이 물 토해주는 게 아니야?”
“막희 말도 반쯤은 맞아. 고무고무에 물을 주면 흙 속에 있는 빈 공간(공극)에 물이 스며들거든. 흙에 뻗어있던 고무고무의 뿌리가 이 물을 빨아 들이지. 고무고무의 뿌리 속 물이 흙 속의 물보다 이것저것 녹은 게 많아서 더 진해. 이렇게 물의 진하기가 차이 나면 물은 덜 진한 데서 더 진한 곳으로 움직이려 하거든. 왜, 엄마가 김치 담글 때 배추를 소금물 속에 넣으면 배추 숨이 확 죽잖아. 그건 배추 속 물이 바깥의 진한 소금물로 빠져 나가서 그래.”

“그렇게 고무고무 속으로 들어간 물이 모세관 현상 때문에 잎이나 줄기로 이동하는 거지?”
“오우, 정답. 과학을 배운 막신이는 더 빨리 이해하는구나.”
“자기야. 이노무 새는 언제까지 계속 이렇게 고개를 숙였다 들었다 하는 거야?”
“빨아들일 물이 없을 때까지는 아마. 그리고 ‘이노무’ 같은 단어 붙이지 마! 나름대로 얼마나 열심히 만든 건데….”

“엄마 화났다~. 아빠 나쁘다~.”
“막희는 울릴 뻔 하고, 엄마도 화나게 하고. 오늘도 아빠 체면 확 구기네?”
“…나, 가서 고무고무에게 물이나 더 주고 올게.”


베란다로 향하는 가장의 처량한 어깨 뒤 거실의 웃음소리는 더욱 도드라졌다. 쓸쓸한 가을 바람에 잎을 떨고 있는 고무나무를 쓰다듬으며 짠돌 씨는 속으로 조용히 주먹을 쥐었다. 내 이대로 물러설 수 없다! 실험을 찾고 찾고 또 찾아, 다음 달에는 반드시 체면을 탈환하련다! 사람이 주먹을 쥐든 분루를 삼키든, 고무나무와 피펫 새는 아무 말 없이 물만 꿀꺽꿀꺽 마셔댈 뿐이었다.


<동영상으로 보기>




- 글 : 김은영 과학칼럼니스트
- 기사 제공: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과학향기’

위 기사의 사진 / 동영상은 CCL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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