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서 독자 (샘모루초등학교 / 5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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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교육청에서는 창의적 체험학습을 권장하기 위해서 초등학교 학급을 대상으로 신청을 받아 선정된 학급에 체험학습비를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그런 활동에 관심이 많으신 우리 5학년 3반 담임선생님께서는 지원을 하셔서 선정이 되었고 뜻을 같이 하신 5학년 7반과 함께 7월 7일 강원도 원주에 있는 고판화 박물관으로 체험학습을 가게 되었다.
7월 7일 아침 6시 20분쯤 설레는 마음으로 눈을 떴다. 평소보다 훨씬 빠른 시간이었다. 일분일초가 너무 천천히 지나가는 것 같았다. 기대로 가득찬 마음을 가지고 8시 쯤에 학교로 향했다. 학교에는 친구들이 거의 와 있지 않았다. 그러나 자리에 몇 분 앉아있으니 친구들이 정말 들뜬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반갑게 뛰어왔다. 우리반과 7반이 모두 모이자 우리를 실은 두대의 버스가 출발했다.
3시간쯤 달리자 버스 한대가 간신히 지나갈 만한 좁은 산길로 어렵사리 버스가 올라가다 자그마한 공터에 멈췄다. 주변에는 고랭지 채소가 잘 자라고 있었고 여기저기에 핀 예쁜 풀꽃들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풀냄새가 코끝에 향기롭게 전해져 왔다. 정말 자연과의 조화가 잘 이루어져 있는 곳이었다.
가파른 길을 걸어서 얼마쯤 올라가니 아늑하고 소박해보이는 작은 건물들이 보였다. 거기에는 희끗희끗한 머리에 회색의 승복을 입으신 스님이 한 분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다. 그 곳 명주사의 주지스님이시자 고판화 박물관의 관장님이신 한선학(55세) 님이라고 소개해주셨다.
관장님께서는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시면서 건물들의 특징과 쓰임새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 주셨다. 사찰은 여러가지 단청을 칠한 모습을 봐왔는데 거기는 칠하지 않은 나무 그대로의 건물이었다.건물지붕은 강원도의 전통집 너와지붕이었다. 박물관과 도서관, 숲속 판화학교 건물이 본당 옆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가볍게 산책을 한 후에는 기다리던 점심식사 시간이었다. 서로 바꿔 먹으며 우정을 쌓는 도시락 먹기도 여행에서는 빠질 수 없는 재미인 것 같다. 도시락을 다 먹고 나서는 우리반과 7반으로 나누어서 7반은 먼저 전통책 만들기를 하고, 우리반은 목판에 그림 새기기를 했다.
먼저, 목판에 먹종이를 대고 그 위에 그릴 그림을 올려놓았다. 나는 나비문양과 물고기 문양 중에서 물고기 문양을 택했다.그 다음에는 그릴 그림의 테두리를 따라 그리고 먹종이와 그림종이를 떼고 목판에 그대로 그려진 테두리의 안을 빗금칠했다. 뾰족한 삼각칼로 테두리를 먼저 판 후에, 둥근칼로 나머지 부분들을 파 주었다. 생각보다는 힘들고 어려운 작업이었지만, 친구들과 함께 도와가면서, 함께 즐기면서 하는 작업이었기 때문에 너무 즐거웠다.
목판이 완성된 후에는 옆에 있는 고판화 박물관을 구경했다. 우리가 주로 다니는 박물관들에 비해 관장님의 개인 박물관이라 그런지 작고 아담한 매력이 있었다. 그곳에서 제일 먼저 판화가 무엇인지 배웠다. 판화는 ‘판으로 찍어내는 그림’을 가리킨다. 또, 일본의 색판화인 ‘우키요에’에 관한 설명도 들었다. 유명한 화가인 빈센트 반 고흐, 모네, 마네도 이 ‘우키요에’를 배경으로 하거나 이용한 그림들을 많이 그렸다고 한다. 이런 배경이 일본이 현재 애니메이션 강국이 될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고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의 판화는 다른 나라의 골동품 가게에 있거나, 잘 보존되고 있지 않아서 잊혀진 작품들이 많다.
조선시대 최고의 목판으로 찍어낸 ‘오륜행실도’는 판화의 그림을 우리도 잘 알고 있는 김홍도가 그리고 정조대왕이 만드셨다고 한다. 하지만,우리나라에 단 하나도 남아있지 않은 소중한 문화재인데 일본인들이 화로로 쓰고 있었다고 한다. 관장님께서는 어렵사리 오륜행실도 목판 원판을 찾아내셔서 고판화 박물관 ‘문화재 수난 자료관’에 전시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소중한 문화재가 일본사람들의 화로로 사용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충격적이었다.
마지막으로 관장님은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박물관은 아이디어의 창고입니다. 모든 창조는 모방을 통해 일어납니다. 박물관은 아이디어를 훔쳐가는 곳입니다. 옛날 판화에서 현대의 디자인을 홈쳐가는 곳입니다" 판화가 그저 판화로만 끝나지 않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아이디어를 주는 것이라는 의미인 것 같다.
관장님의 설명을 다 듣고 문화재들을 둘러보고 난 뒤, 너와집 도서관에 가서 내가 만든 목판과 거기에 있는 다른 목판들로 속지에 들어갈 그림들을 찍었다. 그리고 나서, 양초로 색한지에 칠을 하고 능화판에 문질러 우리의 전통문양이 드러나도록한 겉표지도 만들었다.
만들어진 속지와 표지를 전통방식대로 책으로 묶고, 오른쪽 위에 ‘숲속판화학교’라고 쓴 제목도 붙였다. 훨씬 멋스러워 보였다. 드디어 전통책이 완성되었다.
갑자기 쏟아진 소낙비를 맞으면서도 젖을까봐 옷속에 책을 숨기고, 손이 빨개지는 고생을 하기는 했지만 그렇게 해서 완성된 책은 정말 멋있었다. 옛날에 만들어진 듯한 은은한 느낌의 표지와 재밌는 그림들이 만나 모두의 책들이 소중한 작품이 되었다.
드디어 완성된 책을 가슴에 품고 관장님과 아쉬운 작별을 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푸른 숲들, 꽃들, 나무들, 그리고 소박하고 아름다운 고유의 너와집에서 판화를 새기고 전통책 만들기까지. 내 마음속에는 아름다운 추억을 또 하나 새길 수 있었다.
이윤서 독자 (샘모루초등학교 / 5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