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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누리 편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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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날만큼은 나도 외교관!

지난 3월 6일 푸른누리 기자 5명(나서중, 박수현, 이서호, 이창원, 조화진) 은 서울 한남동에 있는 미국대사관 공보과 브리핑룸에서 주한 외교관 두 분을 인터뷰하였다. 이 분들은 한국인 입양아로 미국에서 자란 뒤, 외교관이 되어 다시 한국을 찾았다는 공통점이 있어 기자들이 더 관심을 갖고 있었다.

5명의 인터뷰 기자 모집에 100명이 신청할 정도로 인터뷰 전부터 많은 관심을 받던 로버트 오그번 (한국 이름 : 우창제) 공보부참사관과 샨 던컨 (한국 이름 : 효선) 서기관과의 인터뷰 현장을 온라인으로 옮겨 보겠다.


약속 시간보다 먼저 인터뷰 장소에 도착한 오그번 외교관은 기다리고 있던 푸른누리 기자단의 학부모에게 먼저 환한 미소와 함께 인사를 건넸다. 검정 뿔테 안경에 푸근한 인상이 꼭 이웃집 아저씨와 같았던 오그번 외교관님은 일일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물어보며, 오느라 힘들지 않았냐며 따뜻하게 푸른누리 기자들을 맞아주셨다 .

뒤이어 들어온 샨 던컨 외교관님은 건강한 외모와 지적인 아름다움을 겸비한 분이었다. 말투는 강하면서도 부드러웠고,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이끌면서도 절제력 있게 말을 이어나갔다.


본격적인 질문에 앞서서, 기자들 모두 영어로 자기소개를 했고, 이어 이창원 기자가 외교관 두 분에게 장구 연주를 선사했다. 한국문화를 외교관에게 보여주고 싶은 이창원 기자의 열정이 더해져서 분위기는 금세 달아올랐다.


미 외교관 두 분을 위해서 푸른누리 기자 모두는 영어로 질문을 했다. 약간은 긴장한 듯한 목소리로 질문을 하는 기자들을 보며 이번 인터뷰에 참가한 기자들이 얼마나 열심히 이 시간을 준비했는지 엿볼 수 있었다. 또 외교관님도 푸른누리 기자들을 위해서 간간히 한국말을 섞어가며 인터뷰를 진행했다. 서로를 배려하는 모습이 아름다운 인터뷰의 막이 올랐다.



1. 어떤 계기로 외교관이 되기로 마음먹으셨나요? - 조화진(곡성중앙초 5)


던컨 외교관 (이하 던컨) : 대학교 때 은퇴한 외교관이 학교에 와서 강의를 했어요. 그 분이 자신이 한 일, 일한 국가 등을 이야기 해주었는데 그것이 무척 감명 깊었습니다. 그 때 외교관이 되기로 결심했지요.


오그번 외교관 (이하 오그번) : 1960년대 아버지께서 베트남에서 외교와 관련한 일을 하셨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나는 믿지 않았는데, 대학교 때 은퇴한 외교관이 와서 강의를 한 것을 보고 진짜 그런 직업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뒤 본격적으로 외교관이라는 직업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외교관은 공무원이면서, 미국과 다른 나라 사이의 다리 역할을 하고, 돈도 받으면서 일할 수 있으니 참으로 매력적인 직업이라고 느꼈습니다.


2. 외교관이 되어 한 일 중에 가장 보람 있었던 일이나, 인상 깊었던 일은 무엇인가요? - 박수현(늘푸른초 5)

오그번 : 한국 외에 2001년에서 2005년까지 있었던 베트남에서 한 일이 가장 인상깊게 남아있습니다. 그 곳에서 베트남 전쟁 이후 처음으로 미국과 베트남 사이에 ‘문화, 예술 교류프로그램’을 진행했습니다. 처음으로 미국의 힙합 음악, 브레이크 댄스, 재즈 공연 등을 펼칠 수 있어서 보람있고 의미 깊었습니다.


던컨 : 모로코에서 근무할 때 한 미국인 할아버지(한국말로)가 가족을 찾게 도와준 일입니다. 그 할아버지는 가족과 연락이 끊어진 채 모로코에서 홀로 외롭게 살고 있었어요. 어느 날 영사관으로 찾아온 할아버지에게 미국에서 걱정하고 있는 가족들을 수소문해서 찾아서 상봉시켜 준 일이 가장 보람되었습니다. 곤경에 빠진 미국 국민을 도울 수 있어서 뿌듯했지요.



3. 처음 한국으로 발령을 받았을 때 기분은 어땠고, 지금 한국에 와서는 상상하고 기대했던 것과 어떤 차이가 있었나요? - 이창원(서울서교초 4)

오그번 : 훌륭한 기자네요.(웃음) 언제나 뛰어난 기자들은 한 번에 한 가지 질문만을 하지 않고, 여러 질문을 섞어서 한 번에 묻습니다.

저는 생후 10개월 정도에 한국을 떠났고, 또 미국에서 살면서 다른 나라를 방문하는 것은 한국이 처음이었습니다. 다른 나라를 경유해서 오는 동안 몸이 아팠는데, 한국에 도착하는 순간 창 밖을 내다보면서 “내가 한국에 다시 왔구나”라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을 느꼈습니다.

던컨 : 주한미국대사관은 근무 여건이 좋기 때문에 다른 외교관들도 오고 싶어하는, 경쟁이 치열한 곳이에요. 운이 좋게도 제가 이 곳에 올 수 있었지요. 여기서 동료들과 식당에 가면 나는 한국인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유럽이나 다른 나라에서는 느낄 수 없는 감정입니다.


4. 두 분 다 한국 출생이지만 각각 다른 나라를 대표하는 외교관이십니다. 외교관은 기본적으로 자기 나라의 이익을 위해서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되는데요. 만약 한국과 미국 사이에서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문제가 생긴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 이서호(상당초 5)

오그번 : 그 문제는 한국과 미국 사이에서는 어렵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두 나라의 이해관계에 공통적인 부분이 많기 때문이지요. 한국에도 이익이 되는 일이 미국에도 이익이 됩니다. 다른 나라에 비해 미국과 한국 사이의 외교문제는 그다지 어렵지 않다고 생각해요.


던컨 : 나 역시 선배님(한국말로)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두 나라 사이에 공통적인 이해관계가 많고, 또 이견 차가 나는 부분은 점점 줄어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5. 한국에서 낳아주신 부모님은 만나셨나요? 그렇다면 명절 때 찾아 뵈었는지요. - 나서중(서울일원초 3)

오그번 : 한국에 오면서 ‘부모님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를 했습니다. 부모님을 찾기 위해 텔레비전 인터뷰에도 나가보고,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였지요. 그러나 입양을 도와준 사회복지단체가 이름을 바꾸고, 부모님의 주소지도 바뀌면서 부모님을 찾기가 무척 힘들었어요. 이번에 푸른누리 기자들이 나의 한국 이름을 소개해준다면, 나의 형제, 자매들이 나를 알아보는 데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부모님을 찾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을 최대한 기울였기에, 지금은 마음이 조금 편해졌어요.


던컨 : 나를 낳아준 아버지는 제가 태어나기 한 달 전에 돌아가셨어요. 나의 어머니는 연락이 닿아서 한 달에 한번씩 만나고 있습니다. 나의 어머니는 나를 만날 때마다 “운동을 해라, 초콜릿은 너무 먹지 마라” 등등의 잔소리를 하십니다. 아마 여러분의 어머니가 하시는 것과 똑같이 말씀하시는 것 같아요.(웃음)


6. 자라면서 거짓말이나 어떤 잘못이 아닌 외모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부당함을 느낀 적은 없는지, 혹시 그랬다면 그런 부당함을 어떻게 이겨냈고 부모님은 어떤 위로를 해주셨는지요. - 이창원(서울서교초 4)

던컨 :굉장히 어려운 질문이네요. 앞으로 이 기자를 주목해야겠습니다.(웃음)

세계 어디를 가나 주위 사람을 괴롭히는 못된 친구가 있는 것 같아요. 그러나 그것은 아주 소수이며, 저는 선생님이나 친구, 가족들로부터 그런 부당한 대우를 받아본 적이 없어요. 다른 이들을 놀리는 친구들은 나뿐만 아니라 모두를 괴롭히는 것이지요. 다행히도 저의 부모님은 저를 많이 격려해주시고, 응원해주셨습니다.


이창원 기자는 던컨 외교관의 말이 끝난 후, “제가 이 질문을 쓴 게 아니예요.”라고 영어로 말했다. 아까 어려운 질문을 하는 ‘tough reporter’라는 던컨 외교관의 말이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이에 오그번 외교관은 그게 기자로서 좋은 자질을 갖춘 것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인터뷰 질문은 푸른누리 기자들이 보내준 질문을 골라서 사전에 준비한 것이다)


오그번 : 던컨 외교관님은 어디서 자라셨나요? 콜로라도요? 정말 좋은 도시네요. 제가 자란 곳은 뉴저지의 시골마을이었습니다. 따라서 아시아계 미국인이 흔치 않았어요. 그랬기 때문인지 저는 오히려 그들과 잘 어울리면서 지냈어요.

다만 지금은 그나마 안경렌즈가 압축이 되어서 얇지만 그 때에는 정말 두꺼운 안경을 끼고 다니고, 운동도 잘 못해서 책만 보는 공부벌레라는 별명이 있었습니다.(웃음)


어렸을 적 거울을 볼 때마다 내가 부모님과도 친구들과도 생김새가 다르다는 것을 느꼈어요. 그 때 저희 부모님은 태극기를 벽에 붙여주시면서 “너는 분명한 내 아들이다. 그러나 너의 뿌리는 한국이라는 것을 잊지 마라. 그 사실을 항상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네가 언젠가 커서 한국에 다시 돌아갈 수 있음을 기억해라.”하고 말씀하셨지요.


7. 우리 또래의 미국 학생들은 어떤 것을 가장 중요시하며, 어떤 교육을 받는지 궁금합니다. - 나서중(서울일원초 3)


오그번 : 굉장히 어려운 질문인데요. 한국과 마찬가지로 미국 학생들 역시 인생에서 중요한 개념들을 가르치고자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공부를 하는 원칙을 가르칩니다. 공부를 어떻게 하고, 공부한 것을 어떻게 내 것으로 만드느냐, 배운 것을 어떻게 적용시키느냐 등에 중점을 두지요.

가족들의 참여가 필요한 숙제도 내줍니다. 얼마 전 제 딸은 가족 족보를 알아오라는 숙제를 받았어요. 나조차도 모르는 것들이 많아서 미국에 있는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어서 물어보기도 했습니다. 가족간의 소통과 서로의 참여가 필요한 숙제들을 종종 내줍니다.


던컨 : 나는 여러분 나이 또래의 자녀가 없어요.(웃음) 그래서 내가 어렸을 때 어떻게 교육받았는지를 생각해보아야겠네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스스로 사고하는 방식을 중요시 여긴 것 같습니다. 그리고 중학교에 가서는 분석하는 능력을 키웁니다. 이런 것들은 대입을 준비하는 데에 굉장히 중요합니다. 또한 창의력 역시 중요시 여깁니다.


8. 두 분 모두 7~8개 외국어를 하시는데요. 언제 어떻게 이렇게 많은 언어를 배우셨나요? - 이서호(상당초 5)

던컨 : 미국에서는 고등학교 때에도 외국어가 필수과목입니다. 저는 어머니가 독일인이어서 독일어를 배웠고, 또 언어 배우는 것을 좋아했습다. 또한 외교관이 된 이후에는 중동지역에서 일을 하고 싶어서 아랍어도 배웠지요. 한국어만큼 어려운 언어였어요. (웃음)


오그번 : 아랍어나 스페인을 배우기는 했지만 영어밖에 못한다고 말해야 할 것 같네요. 미국인들에 비해서는 잘하는 편이지만, 다른 나라 언어를 다양하게 말하는 유럽인들에 비해서는 부족합니다.


미국인들도 예전에는 영어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분위기가 있었으나 지금은 다른 나라 언어에도 많이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다른나라 언어를 배운다고 해서 자신의 정체성이 줄어드는 것이 아닌 다른 나라 문화를 이해하는 폭이 넓어진다는 것을 서서히 깨닫고 있지요. 이는 한국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9. 한국 문화 익히기라는 취미를 가졌는데 한국의 어떤 문화가 가장 인상 깊으셨나요? - 박수현(늘푸른초 5)


오그번 : 20년 전 한국에 처음 왔을 때 가야금 연주를 보았어요. 그 때에는 그 연주가 전통적인 요소가 강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2005년에 다시 한국에 와서 가야금 연주를 보았는데 독일의 기타와 함께 연주하고 있었습니다. 한국 문화가 얼마나 실용적이면서 다른 문화 요소를 잘 받아들이는지를 느낄 수 있었어요. 마치 찌개를 한 번 먹고 나서 며칠 후 다른 재료를 넣어서 다시 끓일 수 있는 것과 비슷한 이치였어요.


던컨 : 인상 깊은 점이 많아서 하나를 딱 꼬집어서 말하기가 힘드네요.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한국음식을 꼽고 싶어요. 다른 나라의 맛있는 음식과 비교해서, 맛도 뛰어나면서 건강에도 좋습니다. 전 갈비찜, 떡, 미역국, 돌솥비빔밥 등을 좋아해요. 좋아하는 음식을 다 대려면 시간이 부족할 것 같아요. (웃음)


10.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두 분에게 어떤 의미를 지녔나요? 한 문장으로 얘기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나서중 (서울일원초 3)

오그번 : 세계사에서 50년은 무척 짧은 시간입니다. 그러나 한국은 50년 전과 비교했을 때 무척 다른 모습이에요. 한국 전쟁으로 인해 50년 전에는 ‘비극’이라는 단어로 정리되었다면, 지금은 ‘성공입니다. 또한 50년 전이 ‘불행’이었다면 지금은 ‘행복’이에요. 그리고 ‘정체’되어 있던 한국은 지금은 무척 ‘역동적’입니다.


던컨 : 다음 일정이 있는 오그번 외교관님을 위해서 저는 빨리 한국말로 할게요. ‘정과 열정’. 끝! 하하하.

유쾌한 말투로 “끝”이라고 외치는 던컨 외교관님의 말과 곧이어 ‘정’이라는 단어가 한국인의 그 감정을 말하는 것이냐고 묻는 오그번 외교관님의 질문과 함께 인터뷰가 끝이 났다.

하지만 이들의 인연은 여기까지가 아니었다. 오그번 외교관은 미국 공보과가 17일에 주최하는 St. Patrick`s Day 행사에 푸른누리 기자들을 초청한 것이다. 이어 부산에 사는 이서호 기자에게 부산 미국영사관에 있는 외교관을 직접 전화로 연결해 주었다. 이서호 기자는 조만간 이 분을 만나러 부산 영사관을 방문할 것이라고 했다.

외교관으로서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두 분은 푸른누리 인터뷰에 적극적으로 응해주었다. 열린 마음과 자상한 배려 덕분에 기자들이 편하게 질문을 주고 받을 수 있었다. 외교관이 꿈이라는 푸른누리 기자들에게 오늘의 인터뷰는 평생 잊지 못할 좋은 경험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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