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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동실 (조화진 기자 학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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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외교관 딸과 함께 한 서울 나들이

지난 가을 딸이 청와대 어린이 기자를 지원하면서부터 설레는 날이 참 많았다. 기다리는 마음이 크면 클수록 그 기대감도 더 커지게 마련. 드디어 기자단 출범식 있던 날 세상 부러울 것 하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딸은 격주에 한번씩 발행되는 ‘푸른누리’를 많이 기다린다. 신청한 기사가 어느 면에 실리는지 다른 기자들은 어떤 기사를 올렸는지 궁금해 한다. 신문이 발행되는 날은 온 가족이 ‘푸른누리’에 실린 기사가 화제가 된다.
영어에 대한 흥미를 갖기 시작하면서부터 딸은 어느 날 외교관이 되고 싶다는 말을 했다. 나는 ‘세계를 가슴에 품어라’ 등 외교관에 관한 서적을 사주었다.


외교관인터뷰가 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딸은 곧 신청서를 작성하고 ‘혹시’라는 기대와 설렘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1차 심사와 2차 전화 면접을 마치고 나니 그 기대감이 절정에 달했다. 외교관 인터뷰 담당기자로 확정된 날 마치 외교관이 된 것처럼 기뻐했다. 나는 딸과 함께 책이나 신문에서 외교관에 대한 여러 가지 정보를 수집했다.


드디어 3월6일 아침 8시6분 곡성 역에서 전라선 기차에 몸을 실었다. 11시 반에 용산 역에 도착하여 1호선 지하철을 탄 우리는 우선 미국대사관을 찾은 후에 근처에서 점심을 먹기로 하였다. 남영 역에서 나와 막 오른쪽으로 꺾으니 미군부대가 눈에 들어온다. 그 맞은편이 바로 미국대사관임을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우린 왔던 길을 되짚어 와서 건널목을 건넜다. 마침 아웃백이 있어서 점심식사를 하기위해 들어갔다.


우리가 앉은 바로 옆 테이블에는 미군들이 한창 식사 중이다. 조금 있으니까 우리가 앉은 테이블 바로 앞에 낯익은 얼굴이 보인다. 순간 난 놀랐다. 바로 오늘 인터뷰 할 오그번외교관이 아닌가. 인사를 드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일행과 계속 영어로 대화하는 모습을 보니 실례될 것도 같아 선뜻 나서질 못했다. 대신 딸과 함께 영어로 이 상황을 얘기할 수 있도록 질문을 만들어봤다. 오그번외교관 일행이 먼저 나간 후 우린 천천히 식당을 나와서 미국대사관으로 향했다.

약속 시간에 맞춰 주한미국대사관 공보과 자료정보센터에 들어섰다. 정면에 성조기와 태극기가 나란히 서 있는 게 눈에 들어온다. 링컨과 오바마 대통령의 얼굴사진은 물론 역대 미국대통령의 영어서적들이 맨 앞자리에 전시되어 있었다. 양 옆엔 영어책들이 병풍을 두른 것처럼 벽장을 꽉 매우고 있었다. 건물 밖 세상과는 달리 마치 미국에 온 느낌이 들었다. 먼저 온 기자와 학부모님들을 보니 적이 안심이 되었다. 조금 있으니 ‘푸른누리’담당자가 들어와서 이름표를 나누어주었다. 자리를 정돈한 다음 지시사항을 듣고 있는 동안 오늘의 주인공인 외교관들이 들어왔다. 가볍게 인사를 주고받는 사이 난 아까 식당에서 본 그 분임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기자들과 외교관들이 둥근 탁자에 앉았다.


▲우리 딸이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드디어 고대하던 인터뷰시간이다. 어떤 계기로 외교관이 되었는지 딸이 먼저 영어로 질문했다. 두 분 다 대학교 때 외교관의 강의를 듣고 나서 외교관이 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오그번외교관은 ‘외교관’은 공무원으로서 미국과 다른 나라 사이의 다리 역할을 하면서 돈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매력적인 직업이라고 했다.

어린시절 미국으로 입양 갔다가 외교관이 되어 한국에 돌아온 두 분은 참으로 특별한 분들이다. 부모에 대한 원망이 있었을 텐데도 당당하고 밝았다. 특히 오그번외교관은 친부모님을 찾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아직까지 만나지 못했다고 했다. 입양서류에 적혀있던 한국이름 ‘우창제’를 소개해주면서 푸른누리 기자들에게 ‘혹시나 친부모님을 찾을 수 있을까?’ 하고 부탁하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다. 어린시절 주위 사람들과 다른 외모를 느꼈을 때 부모님이 방 벽에 태극기를 걸어놓으면서 “너는 분명히 내 아들이다. 그러나 너의 뿌리는 한국이다. 언젠가는 한국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고 말씀하셨기에 남다른 걸 즐길 수 있었고 오늘의 오그번을 있게 하였다고 했다. 어린 자녀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줄 수 있는 부모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느낄 수 있었다.


미국의 교육에 대해서 말할 때는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하였다. 오그번외교관은 미국교육은 ‘공부하는 원칙을 가르쳐 준다.’며 자신의 초등학교 4학년인 딸의 경우를 예로 들며 알기 쉽게 설명해준다. 부모도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서 자녀에게서 새로운 걸 배울 수 있었다는 등 독립적으로 사고하는 방법을 중요시 한다고 했다. 던컨외교관 역시 미국은 독립적이며 분석적이고 창의력을 중요하게 여긴다고 했다.

오그번외교관은 가야금 연주를 보고 한국 문화가 실용적이면서 다른 문화 요소를 얼마나 잘 받아들이는지 느낄 수 있었다고도 했다. 던컨외교관은 한국문화 가운데서 맛과 몸에 좋은 한국음식이 제일 인상 깊었다고 했다. 특히 이라크에서 근무할 때 한 카페에서 ‘김치’를 봤다며 이제 김치는 국제적인 음식이 되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고 하자 ‘김치 버거’니 ‘김치 주스’니 하는 이야기도 나와 한바탕 웃음을 터트렸다.

오그번외교관은 한국은 편리하고 윤택한 삶을 누리는 것에 대해서 모범이 되는 나라로 인식된다며 한마디로 다이내믹 즉 ‘역동적인 나라’로 표현했고, 던컨외교관은 ‘정과 열정’ 이라고 했다.


▲맨 오른쪽 가에 노란 자켓 입은 어린이가 제 딸 이구요, 그 옆에 검은 자켓은 저랍니다.

외교관이 되기까지의 여정과 보람 에피소드 등을 듣는 동안 무한한 감동이 밀려왔다. 미국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열리는 듯했고 외국어에 대한 공부의 필요성도 더욱 느껴졌다. 인터뷰를 마치고 기념사진을 찍는 동안 난 딸에게 아까 점심시간에 있었던 일을 오그번외교관에게 얘기하도록 권했다. 오그번외교관은 무척 반가워했다. 인터뷰 일정을 마친 우리들은 다들 발길이 안 떨어진 듯 머뭇머뭇 거렸다. 돌아오는 열차에서 대사관에서 받은 기념품을 하나하나 훑어보며 행복감에 젖어 들었다. 오늘 하루를 돌아보니 딸과 한 서울 나들이로 참 많은 걸 경험했고, 푸른누리 기자가 된 딸이 무척 자랑스럽게 여겨졌다.

고동실 (조화진 기자 학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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