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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형외과 과장 정훈 (서울적십자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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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의료봉사 활동의 의미

2004년 12월 24일 인도네시아에서는 쓰나미라고 불리는 무서운 재앙이 발생하였습니다. 인도양에서 시작된 거대한 지진으로 인해 엄청난 높이의 바닷물이 육지를 덮었고 그 바닷물이 지상의 모든 것들을 바다 속으로 끌고 가버렸습니다. 바닷가에서 수 킬로미터에 달하는 육지가 피해를 입었으며 당시 약 28만 명이라는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거나 실종되었습니다. 당시 TV와 신문의 뉴스를 통해 그 소식을 들었을 때 ‘세상에 이런 일도 있을 수 있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그저 먼 나라의 이야기로 넘겼습니다.

그러던 중 대한적십자사에서 인도네시아에 의료진을 파견하기로 하였고 서울적십자병원에 근무 중이던 저는 그 활동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저희 봉사단은 인도네시아에서도 가장 큰 피해를 입었지만 진료할 의료진이 없는 ‘물라보(Meulaboh)’라는 지역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이 곳 주민의 3분의 1이 쓰나미로 인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 곳에 가기 위해 비행기를 세 번이나 갈아 타야 했고 마지막에는 군용 트럭을 타고 도착했습니다.

처음 접한 쓰나미의 상처는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바닷가 주위의 모든 육지에는 무너진 건물의 잔해 이외에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잔해 속에서 사체들을 찾아 헤매고 있었고 집을 잃은 사람들은 임시 수용소에서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들은 다행히 병원으로 사용하던 건물이 남아 있어서 그 곳에서 한 달 가량 그들과 함께 생활하며 진료 활동을 하였습니다.

여러분들도 아시겠지만 그 곳은 적도 부근이라 무지하게 덮습니다. 에어컨은 커녕 시원한 식수조차 구할 수 없었습니다. 씻는 물도 흙탕물 수준이었고 잠도 한 달 내내 텐트에서 자야 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곳에서의 생활이 힘들지 않았고 점차 즐겁게 느껴졌습니다. 아무런 대가는 없지만 우리의 조그만 힘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참으로 행복했습니다.

하루는 어떤 할머니가 진료실 앞에서 신발을 벗더니 맨발로 들어와 저희에게 절을 한 후 아픈 부위를 보여주었습니다. 그 순간 ‘아 이 할머니는 의사를 생전 처음 보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들에게 감사해 하는 그 곳 사람들을 보면서 우리 또한 그분들에게 감사했습니다. 왜냐하면 일상적으로 반복되는 직업적으로 하던 일들이 언제 어디서 쓰여지느냐에 따라 살아가는 데에 또 다른 행복과 기쁨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아마도 해외의료활동이 갖는 개인적인 의미라고 생각됩니다.

해외에서 현지인들과 섞여 생활하다 보면 우리와 다른 그곳의 생활과 문화를 접하게 되고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됩니다. 한 번은 물라보에서 떨어진 고립된 마을에서 진료가 필요하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그곳은 식량도 부족하여 쌀을 싣고 가는 덤프트럭의 짐칸에 올라 타고 무려 12시간을 달려 간 적이 있습니다. 가는 도중 한 밤중에 어느 민가에서 식사를 하겠다고 하였는데 우리는 도저히 먹을 엄두가 나질 않아 먹지 않겠다고 하자 동행하던 현지인이 이 지역에서는 권하는 음식을 사양하면 큰 실례를 하는 것이라 하여 무엇으로 만든 건 지도 모를 음식을 먹었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재미있었던 에피소드지만 그 당시에는 무척 당황스러웠습니다. 겨우 목적지에 도착하였는데 환자 중에 다리가 부러져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자세히 보니 다리 주위에 약초 같은 풀을 발라 놓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그것은 그 마을의 주술사가 뼈 부러진 곳을 낫게 한다고 해 놓은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것을 닦아내고 기브스를 하려고 했지만 환자는 주술사의 치료를 더 믿었고 강력히 치료를 거부하여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돌아온 적도 있습니다.

전쟁과 마찬가지로 재난이 발생한 경우에 가장 큰 피해를 입는 사람은 어린이들이라고 합니다. 그곳에서도 충분히 보호받지 못하거나 다쳐도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하는 많은 어린이들을 보았습니다. 신발이 없기 때문에 못에 발이 찔려 오는 아이도 있었고 다리가 부러져도 방에 누워있는 것이 치료의 전부인 경우도 많았습니다. 제가 그곳을 떠나기 직전 마지막으로 보았던 환자는 십대의 여자아이였습니다. 그 아이는 다리가 부러져 부모에게 업혀 왔었는데 기브스 치료를 해 주었습니다. 부러진 뼈가 아물듯이 지금쯤 훌륭한 어른으로 성장했기를 희망합니다.

여러분들도 나중에 어떤 일을 하게 되더라도 자신의 능력이 다른 사람에게는 큰 희망과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기회가 된다면 해외 봉사 활동을 경험하시길 기대합니다. 우리가 사는 곳이 아닌 다른 곳에서 현지인들과 생활한다는 것은 단순히 해외여행을 다녀오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경험입니다. 종전에 겪어보지 못한 다른 문화와 사람들의 삶을 보게 된다면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열정이 생기고 인생의 새로운 목표를 가지게 될 것입니다. 세상은 넓습니다. 자신이 겪은 세상의 넓이만큼 여러분의 꿈과 생각도 넓어질 것입니다.










정형외과 과장 정훈 (서울적십자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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