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와 조선의 만남, 고려궁지

화문석과 고인돌 유적지로 유명한 강화도에는 여러 가지의 역사 유적들이 많이 모여있다. 그중 하나가 강화읍 관청리에 있는 ‘고려궁지’이다. ‘고려궁지’라는 명칭만 들으면 고려시대의 멋진 건물들이 웅장하게 들어서 있고 유물들이 연달아 출토되고 있는 궁궐을 떠올리기 쉬운데, 사실 고려궁지에는 고려시대의 문화재가 거의 없고 조선시대에 세워진 건물들이 몇 채 있을 뿐이다. 이름과는 달리 고려시대 흔적이 거의 없음에도 불구하고 고려궁지는 많은 역사적 의미를 갖고 있다.

고려 중기, 원나라가 고려로 쳐들어와서 빠르게 남하했다. 그러자 위협을 느낀 고종은 고려 무신 최우의 주장에 따라 강화도로 수도를 옮긴다. 그 후 39년동안 강화도는 고려의 수도였는데, 그 기간 동안 왕이 머물던 궁궐의 터가 바로 ‘고려궁지’이다.

강화도에 세워진 고려 궁궐은 개성에 있던 송도궁궐을 본따서 만들었다고 한다. 그 당시 개경의 고려 궁궐은 고구려의 영향을 받아서 계단 모양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고려궁지도 계단 모양의 터 위에 만들어졌다. 고려궁지가 고려의 수도였을 때에는 이곳에 건물들이 가득 들어차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름다웠던 고려 궁지는 곧 파괴되고 만다. 원나라와 고려가 협정을 맺을 때, 원나라가 강화도에 있는 궁궐을 파괴시키라고 요구를 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고려궁지는 터만 남게 되었다.

그러나 조선이 세워진 이후 강화도는 한양과 가까이 있고 한강과 임진강을 들어가는 길목에 있다는 이유로 군사 요충지와 피난처로 주목받기 시작했고, 고려궁지에는 강화 유수부 동헌과 이방청 등 관청 건물들이 들어서게 된다. 이러한 이유로 오늘날 고려궁지에 가면 조선시대의 흔적만 볼 수 있다.

이곳 고려궁지가 고려시대의 궁궐터임을 알려주는 유일한 것이 고려궁지의 입구인 승평문이다. 승평문은 개경에 있는 고려궁궐의 남쪽문 이름이라고 한다. 승평문에 들어서면 오른쪽으로 유수부 동헌이 보인다. 이곳은 예전에 강화 유수부로 강화지방의 업무를 보던 곳이며, 1945년 해방 이후 잠시 강화군청 건물로 사용되기도 했다고 한다. 강화 유수부는 강화도 근처의 황해도, 경기도 바다를 다 관리해야 했기 때문에 전국에 있는 다른 유수부들보다 권이 더 강해서 조정의 판서들도 무시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유수부 동헌의 옆에는 외규장각이 세워져 있다. 원래 외규장각은 고려궁지 안에 있는 것이 아니고 고려궁지 바깥에 있었지만, 외규장각을 복원하면서 고려궁지 안에 세워졌다고 한다. 외규장각은 정조가 왕실관련 서적을 안전하게 보관하려고 강화도에 세운 건물이다. 그러나 병인양요 때 이 건물에 보관되어 있던 의궤들이 불태워지고 약탈당하기도 했다. 이때 약탈당한 문화재 중의 하나가 작년에 우리나라로 돌아온 ‘외규장각 의궤’이다.

외규장각 옆에는 종각이 있는데, 그 안에는 보물 제 11호인 ‘강화 동종’이 있다. 고려궁지에 있는 것은 복제품이고 진품은 강화역사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이 종은 조선시대에 강화성문의 문을 열고 닫는 시간을 알리는 데 사용되었다. 아침에 문을 열 때에는 33번, 저녁에 문을 닫을 때에는 28번을 쳤다고 하는데, 요즘에도 새해 첫날이나 몇 개의 국경일에 타종을 하고 있다. 그 밖에도 고려궁지 안에는 6방(이방, 병방, 형방, 예방, 호방, 공방) 중 하나인 ‘이방청’이 있다.

한때 고려의 수도였던 고려궁지. 원나라의 침략이란 역사를 품고 있는 고려궁지. 조선시대에도 강화도의 중심이었던 고려궁지. 비록 고려시대의 흔적은 거의 남아 있지 않지만 39년동안 고려의 왕이 머물던 고려궁지는 강화도의 중요성을 가장 잘 설명하는 역사의 중요한 문화재이다.

박가민 독자 (서울언북초등학교 / 5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