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리아 기자 (서울길음초등학교 / 5학년)
추천 : 100 / 조회수 : 933
백점빵 할머니가 계속 머뭇거리자 영수는 백점빵 할머니한테 매달리듯 말했어요.
“할머니, 그 조건이 뭔지 어서 말해주세요?”
“좋아 말해주지. 사실 별건 아니다.”
“별게 아니라고요?”
그 순간 백점빵 할머니가 마치 뱀처럼 살살 돌리던 고개를 갑자기 영수의 얼굴 앞으로 쭉 내밀었어요. 영수는 깜짝 놀라 뒷걸음질을 쳤죠. 그 모습을 보며 백점빵 할머니는 재미있다는 듯 웃었지요.
“겁이 많구나.”
“갑자기 그러니시까 그렇죠.”
“그렇게 겁이 많아가지고 내 조건을 들어줄 수 있을까?”
“뜸들이지말고 얼른 말씀하세요?”
“좋다. 니가 원하는 그 어떤 과목이든 백점을 맞도록 해줄 수 있다. 단 백점을 맞을 때마다 네가 싫어하는 사람이 다치게 될 거야. 그걸 견딜 수 있겠니. 너처럼 겁 많은 아이가 말이야.”
“제가 싫어하는 사람이 다친다고요?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고요?”
“나는 그렇게 잔인한지는 않단다. 좋아하는 사람이 다치면 얼마나 마음이 아프겠니. 그래서 대신 네가 싫어하는 사람을 다치게 할 거야.”
“많이 다치나요?”
“그건 때에 따라 다르지. 아주 조금 다칠 수도 있고, 경우에 따라 많이 다칠 수도 있고. 왜 네가 싫어하는 녀석들인데도 다치는 게 겁나냐?”
“겁나는 게 아니라 미안한 거죠.”
“널 못살게 구는 녀석들인데요? 40점 맞았다고 약 올리는 녀석인데요? 어쩔 수 없이 그럼 계속 그렇게 40점이나 맞고 살아가렴. 나는 가마.”
백점빵 할머니는 정말 휙하니 돌아섰어요. 순간 영수는 할머니를 잡고 말았죠.
“할머니, 아직요. 정말 백점은 맞는 거죠?”
“그렇다니까. 해볼테냐?”
영수는 입을 꾹 다문 채로 고개를 끄덕거렸어요. 그런 영수의 머리를 귀엽다는 듯 백점빵 할머니가 만져주었죠. 왠지 잠이 쏟아졌어요. 뭔가 나른하고 졸린 기분이 들었어요. 눈이 저절로 감겼어요.
“일어나, 영수야. 영수야. 오늘 시험 본다면서.”
엄마 목소리예요. 영수는 벌떡 일어났어요. 엄마의 허리에 앞치마가 둘러져 있었어요. 어느새 아침이었던 거죠. 영수는 서둘러 밥을 먹고 학교로 달려갔죠. 하지만 이상했어요. 백점빵할머니를 만난 게 꿈이었는지 궁금했으니까요.
하지만 한가하게 그 일이 꿈인지 사실인지를 따질 겨를은 없었어요. 1교시부터 사회과목 단원평가를 봐야만 했으니까요. 하나도 공부를 안했으니 오늘도 40점 이상을 맞기는 어려울 게 뻔했지요. 그런데 이상했어요. 시험지에 노란색 글씨로 된 정답이 보였어요. 아무래도 선생님이 시험지를 잘못 주신 것 같았지요.
“저어, 선생님. 시험지에 답이 있는데요?”
담임선생님은 영수에 양심고백에 황당하다는 듯 한 표정을 지었지요.
“영수야, 당연히 시험지에는 답이 있지. 그 답을 정확하게 찾으면 되는 거야.”
“저, 그게 아니고요. 시험지에 진짜 답이 있는데.”
“그러니까 그 답을 찾아 풀란 말이야.”
영수는 이상했지만 시험지에 보이는 노란색 글씨의 답을 그대로 옮겨 적었어요. 그때 신기한 일이 일어났죠. 영수가 문제에 답을 옮길 때마다 미리 적혀있던 노란색 글씨의 답이 차례차례 사라진 거예요.
답을 다 적고 났을 때 시험지를 살피며 지나가던 담임선생님이 갑자기 영수의 머리를 부드럽게 어루만졌지요.
“녀석, 사회는 엄청 공부했나 보네. 거의 다 맞은 것 같네.”
영수는 그제 서야 백점빵 할머니를 떠올렸어요. 분명 뭔가가 지금 일어나고 있는 거라는 걸 영수는 알 수 있었어요. 그때 반장 번태가 번쩍 손을 들었지요.
“선생님, 문제 다 풀었는데 화장실 갔다 와도 돼요?”
“그래, 시험지 잘 덮어두고 다녀와.”
“예.”
까불거리며 교실을 나서던 번태가 갑자기 미끄러지면서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어요. 굉장히 아픈지 엎어진 채 가만히 있는 번태를 보니 백점빵 할머니가 말한 조건도 떠올랐지요. 백점을 맞으면 영수가 싫어하는 친구가 다치게 될 거라는 예언 같은 조건이었죠. 영수는 여전히 바닥에서 신음소리만 내며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어요. 어쩌면, 정말 어쩌면 거짓말 같은 일이 지금 영수에게 일어나고 있는 거지요.
다음 편에 계속 됩니다.
최리아 기자 (서울길음초등학교 / 5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