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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윤 독자 (서울삼릉초등학교 / 5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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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이 겪은 가슴 아픈 역사

할아버지, 할머니와 부산 UN 국군 묘지에 갔었다. 그 곳에는 여러나라 군인들의 묘가 많았다.

나는 여긴 우리 나라인데 여러나라의 군인들의 묘가 많아 이상해서 할아버지께 "할아버지 여긴 왜 여러나라의 군인들의 묘가 많아요?" 라고 여쭈어 보았더니 할아버지께서 6.25사변에 대해 얘기를 하셨다.

우리나라의 전쟁이었지만 6.25 사변을 도와주러 많은 외국군인들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싸우다 전사한 여러나라의 군인들의 묘라고 얘기 해주시면서 할아버지께서 겪으신 6.25 사변이야기를 들을 수있었다.


처음으로 듣는 할아버지의 6.25 사변이야기

난 6.25 사변이 일어났단 것만 알지 별 의미 없이 받아들였고 난생 처음 할아버지께서 직접 겪으신 이야기를 들어 그 당시 얼마나 힘들고 무섭고 참혹했는지 새삼 느꼈다.

할아버지 연세가 8살 때 북한군들이 할아버지가 사시던 대전으로 들어왔다. 그래서 할아버지 가족들은 피난을 계룡산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서 몇 달 동안 계셨다고 한다. 산에서는 비상식량으로 쌓온 미숫가루를 타 드시거나, 북한군들이 움직이지 않을 때 나무 껍질을 벗겨 그냥 씹어 드셨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그 어린 나이에 숨어 계시면서 총과 칼 등 사람을 해치는 무기들을 가지고 다니는 북한군들을 봤을 때 매우 매우 무서우셨다고 한다.

북한군인들이 대전에서 나간 뒤에 할아버지와 가족들이 내려오셨지만 아쉽게도 할아버지 형님이신 큰할아버지께서는 20살이어서 전쟁에 보내 질 수 있기 때문에 더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한참동안 계셨다가 나중에 내려오셨다고 한다.

할아버지께서 내려오셔서 보신 마을에는 집들은 엉망이 되었고 동네사람들과 할아버지의 친한 친구분들이 죽었고 그 모습을 보고 많이 속상하고 두려우셨다고 한다.


여기까지 할아버지께서 겪으신 6.25 사변 이야기를 들으며 난 6.25 사변이나 모든 전쟁이 우리에게 주는 피해는 아픔과 슬픔, 이별, 죽음...그리고 피난을 다니면서 생긴 전쟁 고아들...

무엇보다도 한민족, 같은 나라 간에 미워하는 마음, 한민족끼리 총을 겨누며 죽여야 했던 너무 비극적인 일이라는 것이다.


독일도 우리나라처럼 분단국가 였는데 국가와 시민들이 스스로 사랑하는 마음과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노력하여 벽을 허물고 같은 민족 같은 나라로 통일이 되었다.

우리나라도 아직 남한을 사랑하는 마음, 북한에 대한 그리움이 있다면 우리 모두 다 같이 통일에 대해 좀 더 많은 노력과 관심을 보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이글을 쓰면서 <기억하라 대한민국 일어나라 대한민국> 이라는 말을 우리나라의 모든 국민에게 하고 싶다.

언젠가는 내가 아니 우리 모든 국민이 남한, 북한이란 말을 사용하지 않고 그냥 ‘우리나라’ 라고 부른는 날이 올 것이며 그 날을 위해 나도 많이 노력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열심히 해야겠다.

박지윤 독자 (서울삼릉초등학교 / 5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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