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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호 3월 3일

테마기획1 추천 리스트 프린트

홍리빈 기자 (상당초등학교 / 5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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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운동의 발자취를 찾아

지난 일요일이었던 2월 20일 아침을 먹으면서 아빠가 나에게 3.1절 하면 생각나는 분이 누구냐고 물었다. 나는 곧바로 "유관순 열사"라고 대답했다.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한 이름이니. 그랬더니 아빠가 다섯 분을 말해보라고 했다. 나는 이준 열사, 안중근 의사, 윤봉길 의사 이렇게 말하고 나니 갑자기 생각이 뚝 끊겼다. 내가 항일 운동에 대해 아는 게 무얼까..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마침 이번 푸른누리 54호 기사의 테마가 "3.1절 하면 생각나는 사람"이다. 푸른누리에서 소개한 나라사랑 광장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현충시설 소개가 있었다. 그곳에서 부산에 위치한 항일 운동 관련 유적을 찾아보았다. 다 찾아보기에 너무 많은 것 같았다. 그래서 동래지역에 있는 유적을 찾아가 보기로 하고 아빠와 같이 나섰다.


처음으로 동래고등학교 내에 있는 항일 운동 기념탑을 찾았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동래고 교정에는 많은 기념비들이 있었지만 항일기념탑은 정문에 들어서니 바로 눈에 들어왔다. 이 탑은 일제강점기에 동래지역 3.1운동을 비롯하여 부산항일학생의거(일명 노다이 사건)를 주도하고 선봉에 섰던 동래고 출신순국선열과 애국지사의 얼과 희생정신을 기리기 위해 1995년에 건립되었다고 한다.

노다이 사건이 무엇인지 궁금해 찾아보았더니 일제 말기 부산지역의 대표적 항일학생의거로 일제의 압박이 극에 달했던 1940년 11월 23일, 부산 구덕운동장에서 열렸던 ‘제2회 경남 전력증강 국방경기대회’에서 동래고와 부산상고 학생 1천여 명이 일본인 심판의 편파판정에 항거해 거리시위를 벌이고 배속장교인 ‘노다이’ 육군대좌의 관사를 습격한 사건을 말한다. 이 사건으로 두 학교 200여명이 체포됐으며 그 중 15명이 구속되고 2명은 옥고로 숨진 사건이라고 한다. 자유와 정의를 위한 학생들의 민족정신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두 번째로는 같은 칠산동에 있는 박차정 의사 생가를 찾았다. 박차정 의사는 1925년 부산지방 여성교육의 중심으로 항일 운동을 이끌어 가던 동래 일신여학교(현 동래여고)에 입학하여 1934년 34세의 나이로 순국하기까지 독립운동단체인 근우회, 민족혁명당, 조선의용대에서 활동한 대표적인 여성 항일 운동가였다고 한다. 아쉽게도 생가의 문이 굳게 닫혀 있어 안으로 들어가 볼 수는 없었다.


세 번째 탐방지는 박차정 의사의 모교인 일신여학교, 현재의 동래여고. 동래여고 교정에는 부산일신여학교 만세운동 기념비가 있다. 1919년 부산 일신여학교 학생들이 전개한 3․1독립운동을 기념하기 위하여 건립한 비로 1919년 일신여학교에 재학 중이던 고등과 학생 김응수 등 11명의 학생과 주경애․박시영 2명의 선생이 1919년 3월 11일 좌천동 거리를 누비며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였는데 당시의 항일운동 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1984년 11월 당시 일신여학교 자리인 부산시 동구 좌천1동 768번지에 만세운동기념비를 건립하였다고 한다. 그 후 1992년 5월 19일 일신여학교의 후신인 동래여고 교정으로 이전했다고 하는데 당시 일신여학교의 3.11의거는 이후 동래고보 봉기(3월 13일), 동래 범어사 학생 의거(3월 19일), 구포시장 의거(3월 29일) 등 부산·경남지역 항일운동에 불을 지피는 기폭제가 되었다고 한다. 동래여고 교정에서 바라보면 부산에서 제일 큰 태극기가 보인다. 경부고속도로 입구 만남의 광장에 자리한 태극기인데 만세운동기념비가 있는 이곳에서 커다란 태극기를 바라보니 나도 모르게 가슴이 벅차올랐다.


네 번째는 동래여고 인근에 있는 금정문화회관 만남의 광장에 있는 박차정의사 상으로 갔다. 박차정의사 동상은 나라를 구하기 위해 목숨 바친 당당한 여성 운동가의 모습이었다.


다섯 번째 탐방지는 3.1운동 유공비가 있는 금정중학교였다. 이 비석은 3.1독립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번질 때인 1919년 3월 18일 당시 범어사 경내에 있던 명정학교(초등과정)와 지방학림(중등과정) 학생 40여명의 동래장터 독립만세운동 참여를 기리기 위해 건립된 것이라고 한다. 금정중학교는 할머니 산소가 있는 영락공원을 갈 때면 매번 지나다니는 길에 있는데 이곳에 이런 기념비가 있다는 것을 지금까지 몰랐다. 지난번 요산문학관을 찾았을 때 김정한 선생님의 연보에 명정학교에 다니던 12살 되던 해 3.1만세운동에 참여하셨다고 해서 명정학교를 기억했는데 그 명정학교가 바로 금정중학교였던 것이다. 역사를 찾아가는 기분이 들어 왠지 뿌듯함이 느껴졌다.


마지막으로 간 탐방 지는 청룡동에 있는 범어사 앞 문화의 거리에 있는 3.1운동 유공비였다. 1919년 범어사 내 불교학교의 학생 41명이 전개한 만세운동을 기념하기 위해 건립한 비라고 한다. 이렇게 동래 지역에 있는 대부분의 항일 유적은 당시 항쟁의 뜻을 기리는 탑이나 비석의 형태로 남아 있었다. 그 시절 나라를 되찾겠다는 마음에는 남녀노소, 신분 같은 차별 없이 모두가 한 마음, 한 뜻이 아니었나 싶다.


나는 탐방을 마치고 항일 운동은 우리 민족 전체의 항쟁이었음을 다시 한 번 느꼈다. 거대한 기념비나 기념관은 아니지만 곳곳에 있는 독립운동의 발자취에서 대한민국은 나라를 되찾으려는 온 국민의 노력으로 세워졌음을 깨달았다. 조금 있으면 3.1절이다. 3.1절 기념식을 열고 참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곳곳에 있는 알려지지 않은 선열들의 발자취를 찾아보고 그 정신을 되새겨 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 92주년 3.1절을 맞아 선조들이 독립을 꿈꾸던 아픈 역사를 딛고 이제 G20을 개최한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더 발전시키고 빛내기 위해 지금의 우리를 위해 희생한 분들의 3.1정신의 의미를 되새겨 보아야겠다.

홍리빈 기자 (상당초등학교 / 5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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