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채현 나누리기자 (대구대덕초등학교 / 6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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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 이거 얼마예요?"
"6000원."
"에이, 조금만 깎아 주시지~"
"5000원!"
"고맙습니다, 이거 주세요."
시린 손을 맞잡고 엄마와 아람이, 그리고 아람이의 할머니는 설날 음식을 할 재료를 사기 위해 시장에 왔습니다. 여기저기서 흥정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모두들 할머니의 집에 모여 전을 부치고, 달걀을 풀고, 고추를 썰고... 부엌은 북적였습니다. 5명의 사람들이 모두 부엌 안에서 뭔가를 하고 있었으니까요. 사실, 아람이의 식구들은 27명의 대가족입니다. 아람이에게는 삼촌이 두 명있는데, 한 명은 결혼을 했고, 한 명은 아직 하지 못하셨습니다. 아람이의 엄마를 포함한 자매들은 4명이었고, 큰 이모도 아이가 셋, 둘째 이모도 아이가 셋, 셋째이모는 넷. 그리고 첫째 삼촌은 아이가 셋 씩이나 되었기 때문에 아람이는 아람이의 식구들 중 외동으로 태어난 유일한 아이입니다. 이렇게 식구들이 많아서 설날이 되면 모두 모일 것입니다. 그러면 또 할머니 댁은 27명의 사람으로 발 디딜 틈도 없어질 테고요. 할머니 댁이 조금 넓어서 다행이지, 그러지 않았다면 정말 발 디딜 틈 없었을 지 모릅니다. 그런 생각을 하자, 갑자기 아람이의 머릿속에는 저번에 몇 번 찾아 뵈었던 독거노인 할머니가 생각났습니다. ‘김달순 할머니는 설날에 혼자 추운 날 가족도 없이 혼자 계시겠구나...’
"아람아!"
"네?"
갑자기 엄마께서 아람이를 부르셨습니다.
"이번 설날에, 김달순 할머니 댁 갈까? "
"네?? 그렇지만 우리 할머니댁에 있어야 하는데.. 가족끼리 맞는 새해인데.."
아람이는 고민되는 듯 말 끝을 흐렸습니다.
"이번에는 영국 유학 갔던 할머니 중손녀, 주희언니랑 주희언니 부모님도 오시니까, 더 북적일거야. 그냥 김달순 할머니 댁에 가서 김달순 할머니의 외로움을 달래드리는 것이 어떨까 해서.."
"음.. 네, 그럴래요!!"
아람이는 힘차게 대답했습니다. 눈과 입에는 웃음이 담겼습니다.
-설날 아침-
깍깍깍 까치가 울어댔습니다. 아람이는 평소보다 일찍 일어났습니다. 원래 일찍 일어날 때에는 눈을 부시시 뜨고 힘겹게 세수를 하는 아람이지만 오늘만큼은 철벅철벅 세수도 물이 다 튀게 합니다. 아람이는 평소 설날처럼 할머니가 웃으며 반겨주는 것도 너무 좋고, 이번 설날에 그냥 김달순 할머니 대신 친할머니 댁에 갈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이내 생각을 바꿨습니다.
‘우리할머니도 내가 사랑하는 분이시지만, 명절 때 다른 사람들은 다 같이 누리는 가족간의 행복을 혼자 소외되어 누리지 못하시는 김달순 할머니 같은 독거노인분들께서는 더욱 마음이 아프실 거야. 우리 할머니도 내가 설날에 독거노인 할머니께 간다는 것을 좋아하실지도 몰라.’
"얼른 가자. 아람아, 얼른 나와~!"
"네~ 금방 나갈게요!"
아람이와 엄마는 김달순 할머니 댁까지 걸어서 갔습니다. 김달순 할머니 댁 앞에서, 아람이는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문을 똑똑 두드렸습니다. 한참이 지나자, 천천히 문이 열렸습니다. 할머니의 관절염이 더 심해진 것은 아닐까 걱정도 되었습니다
"아이고~ 아람이 아녀?"
할머니께서는 가장먼저 아람이를 안아 주셨습니다. 할머니의 따님께서는 가난한 집안형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할머니를 혼자 사시게 했고, 지금은 지방 떡공장에서 일을 하고 있다고 했는데, 그런 따님을 맞아주시는 것처럼 반갑게 맞아주시니 아람이도 기분이 좋았습니다. 아람이도 헤헤 웃었습니다. 아람이와 할머니, 그리고 엄마는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방은 차가웠지만, 하하 호호 웃는 소리에 방이 달궈졋습니다. 아람이의 어머니께서는 다같이 명절 음식을 할 때 싸 온 음식들로 상을 차려 오셨습니다. 아람이는 할머니께 노래도 불러드리고 안마도 해 드리고, 재롱도 피우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 때였습니다.
"누구세요?"
아람이의 엄마가 말했습니다.
"어머, 여기 엄마 말고 누가 있나 보네. 그럼 댁이야 말로 누구시죠?"
아람이의 엄마는 문을 열었습니다. 할머니께서 갑자기 놀라서 달려오셨습니다.
"미숙아...!"
할머니께서는 미숙이라는 그 아줌마를 끌어 안고 거친 손으로 자꾸만 미숙이아줌마의 볼을 어루만지셨습니다.
"이게 얼마만이야..."
미숙이라는 아줌마는 할머니의 따님이라고 하십니다. 따님은 5년만에 처음으로 설날에 할머니 댁을 찾아왔다고 했습니다. 할머니는 말없이 미숙이 아줌마를 등을 쓸어내리며 흐느껴울기만 하셨습니다. 미숙이아줌마도 미안한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엄마 죄송해요. 일 때문에 너무 바빴어요.."
어느새 미숙이 아줌마의 두 뺨에도 눈물이 타고 흘러 내렸습니다.
‘5년 전에는 미숙이 아줌마가 아닌 미숙이 누나였겠구나.. 누나에서 아줌마가 될 때까지 할머니께서는 따님을 보지 못하신 거구나..’
미숙이 아줌마 께서는 아람이와 엄마께 연신 고맙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아람이는 그저 할머니 댁에 몇 번 다녀온 것 뿐인데... 할머니가 예뻐 해 주셔서 오히려 감사했는데.. 하는 생각도들었습니다. 미숙이 아줌마가 안쓰럽기도 했습니다. 미숙이 아줌마는 할머니를 바라보고 말씀하셨습니다.
"엄마, 이제는 꼭 추석때는 바빠서 못 오더라도, 설날에는 시간 내서 이렇게 올게요. 엄마, 죄송해요.."
할머니와 미숙이 아줌마는 또 다시 서로를 껴안으셨습니다. 아람이와 엄마는 흐뭇했습니다. 아람이와 아람이 엄마, 미숙이아줌마 그리고 김달순 할머니는 다 같이 조그마한 상에 둘러앉아 송편을 먹고 있었습니다. 먹어야 할 시기가 지나긴 했지만, 어느 떡보다 소중하고 행복한, 그리고 따뜻한 떡이었답니다.
이채현 나누리기자 (대구대덕초등학교 / 6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