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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연웅 독자 (인천양지초등학교 / 6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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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양지초등학교, 경주로 수학여행 다녀왔습니다.

인천양지초등학교의 5학년과 6학년 학생들은 2009년 4월 6일부터 8일까지 2박3일동안 경주시로 수학여행을 다녀왔다.
아이들은 학원을 가지 않아서 좋다며 빨리 가서 놀고 싶은 마음, 집을 떠나니 두려운 마음, 경주시에 대한 공부를 제대로 하자!고 결심하는 마음 등 아주 다양했다.
작년 5학년 때 학교의 사정으로 수학여행을 가지 못해 이번이 처음 수학여행인 6학년들은 더욱 더 설레였다. 2박 3일간의 코스를 위해 6학년 6학급과 5학년 5학급은 11대의 버스를 타고 나란히 경주로 이동하였다. 버스안에서는 게임도 하고 그 동안 못 말했던 이야기들을 실컷 떠들며 재미있게 놀았다.


6시간정도 지난 후 우리는 경주엑스포공원에 도착했다. 타워와 여러 공연장이 설치되어있는 엑스포공원은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50M가 훌쩍넘는 타워 위로 올라가서 본 경주의 풍경은 아름다웠다. 석굴암의 모형도 보고, 사회책에 나온 그대로 깨진 벽걸이도 있었고, 신라시대의 칼이나 곡옥 등을 보았다. 극장에서는 ‘기마전사토토와 천마의 꿈’이라는 영화를 보았는데, 이 영화는 신라시대의 화랑이나 무사들의 투혼을 보여주었다. 엑스포공원의 관람을 마치고 숙소를 보러갔다.


푸른산유스텔이라는 숙소에서 먼저 짐을 풀고 저녁식사 때까지 자유시간을 가졌다. TV도 보고 카드게임도 하고, 게임기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우리 6학년 1반이 쓴 방은 215호로 방은 조금 작았지만 바로 앞에 매점이 있어서 만족할 수 있었다. 저녁을 먹은 후에 탁본실습을 했다. 신라의 고대인과 꽃무늬 등으로 물을 뿌려 조각을 찍은 후 먹으로 현대로 말한면 스크래치건법으로 그림을 그렸다. 이렇게 하루가 지났다.

이튿날에는 일찍 일어나 씻고 들뜬 마음으로 무열왕릉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어떤 건물안에 돌로 만든 큰거북이가 있었다.
무덤을 만드는 법은 3단계로 분류되었다. 1단계는 흙만 쌓아 짓는 무덤이고, 두번째는 돌을 꽂아서 잘 안 떠내려가게 하는 것, 세번째는 십이진상과 돌난간을 무덤에 설치하는 것이다. 단계가 점점 올라갈 수록 높은 사람의 무덤을 뜻한다.


무덤의 이름은 세가지로 릉, 묘, 총이 있는데 릉은 왕의 무덤이고 묘는 옛날의 평민사람들(귀족도 묘에 묻힌다.) 총은 무덤이 누구의 무덤인지 알 수 없을 때 붙여지는 것이다.

그런데 누구의 무덤인지 알 수 없는데 어떻게 무덤에 이름을 붙일까? 그것은 간단하다. 무덤을 파보았을 때 나온 물건의 이름을 따서 무덤 이름을 짓는 것이다. 필통이 나왔으면 필통총, 연필이 나왔으면 연필총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왕은 모두 3단계 무덤을 짓고 산다 했다. 그런데 신라의 왕 중 삼국통일을 해서 제일 훌륭한 무열왕의 릉이 2단계인 돌만 박아논 무덤이였다. 왜 그런지 선생님께 이유를 물어보았더니 태종무열왕께서는 돌아가실때 유언을 "지금과 같이 나라가 힘들 때 백성들이 짐의 무덤 하나 만들려고 돌을 나르며 힘들게 생활하는 것은 내 스스로 나라를 위한 일이아니요, 그러니 내가 죽거든 나를 화장(시체를 태워 가루를 만드는 것)해서 토함산에 뿌리면 내가 신라를 지키는 산신령이 되겠소."라고 깊은 뜻을 남겼다고 대답해주셨다..


역시 옛날의 왕들은 모두 다는 아니지만 백성을 생각하는 마음이 많았던 것 같다. 태종무열왕이 돌아가시자, 신하들은 그의 뜻을 받들고 화장한 후, 토함산에 뿌리고 또 다시 그를 기리기 위해 묘를 만든 것이다. 그런데 아까 본 거북이가 생각나서 거북이에 대해 물어보았더니 거북이는 오래 살기 때문에 무열왕님의 영혼도 오래 오래가시라고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씀하셨다.


그 후 우리는 김유신장군묘로 가보았다. 그런데 아까보다 우리를 더 놀라게 한 것이 있었다. 바로 왕이 한번도 된적이 없으신 김유신 장군님의 릉에 십이진상과 돌난간이 있던 것이다!
너무나도 이상했다. 김유신 장군님께서 왕이 된적이 있었던 걸까? 하며 호기심의 눈초리로 유심히 살펴 보았다.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김유신장군님께서 왕이 되었다고 하셨다. 바로 김유신장군님이 돌아가시고 약 100년 후에 갑자기 김유신장군님의 혼령이 무덤에서 나와 무령왕릉의 무덤 속으로 속들어갔는데, 깜짝 놀란 왕이 귀를 무령왕릉에 데어보니 김유신 장군이 우시며 "나는 원래 가야의 김씨라서 다른 경주의 김씨가 우리의 세력이 커지는 걸 방지하기 위해 우리 자식들을 죽이고 있다오."라고 하며 울었다고 한다. 그 말을 들은 왕은 김유신장군의 묘를 다시 공사를 해서 릉으로 바꾸고 십이진상도 새겼다고 한다.

그런데! 신기한 것이 있었다. 분명히 김유신장군릉이라 써져있는 비석에 물을 부으면 김유신장군묘라고 글자가 바뀌는 것이다. 누가 그렇게 만들었는지, 아니면 자연적인 현상인지는 아무도 모르는 미스터리라 하셨다.

그 후 우리는 푸른산유스텔로 가서 짐을 꾸리고 자유시간을 가졌다. 점심시간이 끝나고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불국사를 보러 갔다. 제일 두근거리는 시간이였다. 불국사의 단풍은 아름다웠고 우리는 기대에 부풀어서 불국사안으로 들어갔다. 우리가 제일 보고 싶었던 것은 흔히 무영탑이라고도 불리는 석가탑이었다. 그림자가 없어서 무영탑인데 진짜 그림자가 없을까? 궁금했다.그러나 우린 급 실망을 했다. 바로 무영탑에 그림자가 있엇던 것이다. 전설이 헛소문이였다고 생각하니 조금 실망이 됐고, 다보탑도 공사 중이라 볼 수 없어서 안타까웠다. 그래도 불국사의 풍경은 아름다웠다.


그 후 불국사에서 졸업앨범에 실을 사진을 촬영하고 우리는 급히 안압지로 이동했다. 안압지는 신라에서 잔치를 벌이던 곳이며 아름다운 강과 연못이 있다. 그런데 우리는 흔히 이 연못의 이름을 안압지라 알고 있지만 원래이름은 월지이다. 안압지라는 이름의 유래는 월지의 이름을 몰랐을 때, 그곳에 오리와 기러기가 있어서 기러기 안(雁), 오리 압(鴨), 지(池)를 써서 안압지가 된 것이다. 그러니 이제 안압지라 부르지 말고 월지라 불러야 한다. 그런데 이 월지에서 중요한걸 알았다. 왕자나 태자는 주로 동쪽에 있는궁인 동궁에서 생활한다는데, 그 이유는 동쪽에서 해가 뜨기때문이라 한다. 이 동궁 원칙은 세계 어느 곳이나 가도 지켜지고 있다고 한다.

그 후 천마총을 가보았다. 천마총의 크기는 아파트 3층의 높이만 했고 정말로 컸다. 천마총의 이름역시 말이 하늘로 올라가는 그림이 발견되서 천마총이라고 한다. 가까이 있는 괘릉도 보았다. 괘릉은 천마총보다 훨씬 컸다. 마치 아파트 5층 높이 같았다. 그곳은 아직은 파보지 않았다고 한다. 그 이유는 바로 천마총을 팠을 때 공기가 너무 많이 들어와서 유물들이 모두 훼손이 되서 그렇다고 말씀해 주셨다.


괘릉에서 버스를 타고 오늘의 마지막 순서인 국립경주박물관에 들어갔다. 천마총을 팠을 때 나온 많은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어느새 수학여행의 마지막 밤이 되었다. 마지막 밤은 더더욱 화끈했다. 우리 어린이들은 레크리에이션을 하며 춤을 추고, 달인 등 친구들의 장기자랑을 보았다. 마지막 밤은 잠이 오지 않았다. 집에 간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이제 정든 것 같은 이 호텔을 떠나는 것도 아쉬웠다.

스스로 별과 함께 잠이 든채, 아침이 다가오자 석굴암을 보러갔다. 석굴암은 생각보다 컸고 우리 신라 사람들의 정교함을 알 수 있었다. 사진촬영은 문화재가 훼손될까봐 금지해서 아쉬웠지만, 우리나라 문화재의 보호를 정부에서 잘 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니 기분이 좋았다. 이로써 경주와는 이별을 하였다. 점심식사를 끝으로 우리는 모두 집으로 돌아갔다. 다시 오고 싶은 경주를 끝으로, 2학기 때의 현장학습을 우리는 모두 기다리고 있다.

류연웅 독자 (인천양지초등학교 / 6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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