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사과 빨간사과, 겉은 달라도 속은 똑같아요!
1월 26일 아침, 선발된 15명의 나누리 기자들이 승가원장애아동시설에 봉사하러 갔다. 승가원장애아동시설은 1996년 2월에 만들어진 곳으로 뇌병변, 지적장애, 지체장애 등 중증장애인들을 받고 보호해주는 시설이다. 정원제한은 팔십 명이지만, 지금은 칠십여 명이 이 곳에 있다.
내가 시설 곳곳을 모두 보지 못한 탓일 수도 있지만, 규모는 별로 크지 않은 시설이었다. 시설 안으로 들어가는 가파른 돌계단 옆에는 휠체어가 갈 수 있는 길도 없었고, 들어가서도 엘리베이터도 없어서 많이 걱정되었다. ‘아직은 많은 도움이 필요하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가장 먼저 원하정 사회복지사님의 ‘장애 바로 알기’ 교육이 진행되었다. 장애는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신체적이나 정신적 결함으로 인하여 일상의 개인 혹은 사회생활에 필요한 것을 스스로 혹은 부분적으로 수행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많이 말하는 장애者, 여기서 ‘자’는 놈 者자라서 나쁜 것이 아니라, 여기서 ‘자’는 기자, 소비자처럼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에게 붙이는 ‘~하는 사람’이란 기능을 한다. 어느 낱말이 알맞을지 선택하는 것에서 가장 많이 선택 받은 장애友, 친근해 보여서 많이 선택을 받은 것 같지만, 장애인과의 친구 사이도 아닌데 쓴다는 것은 별로 좋지 않다. 또 장애인의 친구라는 의미까지 부가돼서 잘못된 표현이라고 지적 받았다. 마지막으로, 맞은 표현으로는 장애人이 선택 됐다. 이 말이야 말로 가장 무난하고 나쁜 뜻이 없었다고 말씀해주셨다.
평상시에 별 의미 없이 무의식적으로 사용했던 단어들에 대해서 참뜻을 알고 나니, 내 자신이 조금 부끄러웠다.
두 번째 시간은 장애 체험을 했다. 이 체험을 하면서 나는 많은 것을 느꼈다. 먼저, 거울보고 도형 그리고 글자쓰기를 했다. 우선 동그라미와 직사각형을 보통 그리는 것처럼 그려봤다. 참 이보다 쉬운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고비는 그 뒤였다. 가로로 눕힌 거울을 통해 그 다음 도형들, 하트와 별을 보면서 그리는 것이었다. 별로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한동안 미술 수업도 듣던 나도 헤매며 계속 이상한 쪽으로 그어갔다. 하트를 그릴 때에는 사회복지사님께서 10초의 시간만 주고, 재촉하고, 못 그린다고 꾸중도 해서 기분이 별로 안 좋았다. 그러나 별을 그릴 때에는 1분이란 긴 시간을 주고, 못 그려도 잘 그린다 칭찬해 주셔서 더욱 더 편하게 그릴 수 있었던 것 같다. 사회복지사님께서도 이를 말하며, 우리도 장애인들에게 조금만 더 시간을 주고, 조금만 더 배려를 해주면 그들도 무엇이든지 훨씬 편하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음으로 한 것은 거울 속의 글씨가 정상적으로 보이도록 내 이름을 쓰는 것이었다. 방향감각과 길이감각이 모두 갑자기 사라지더니, 한참을 쓰고 지우고 쓰고 지우고를 반복하다가 겨우 성공했다. 마지막 소녀시대를 쓸 때에는 시옷을 삿갓모양이 아니게 한 획이 더 나오게 쓰라 했는데, 가장 어려웠다. 그냥 그릴 때에는 마치 어두컴컴한 머릿속에 수많은 전등들이 쪼르르르 켜진 것처럼 내게 길을 만들어줘 온전하게 끝마칠 수 있었다. 반면 거울을 통해 그릴 때에는 전등들이 띄엄띄엄 켜져 있어, 길도 아닌 아무도 알아 볼 수 없는 무작위의 지도를 만드는 것 같아서 많이 혼란스러웠다.
점자 찍기와 왼손만으로 종이 접기도 장애인들의 삶을, 우회적으로 실감할 수 있었다. 예비장애인인 나는 쉽게 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이렇게 어렵다면, 진짜 장애인들은 얼마나 더 어려울까라는 생각에 앞으로는 조금 더 그들을 기다려 줄 수 있는 인내심을 기를 수 있을 것 같다.
세 번째 시간은 우리가 그토록 기다리고 기다리던 승가원 친구들을 만나는 시간이었다. 내 짝꿍은 13살 남자아이인데, 수줍고 부끄럼을 많이 타는 친구였지만 초롱초롱한 눈망울 속에선 진심 어린 눈빛을 가진 아이였다. 우리는 같이 꼬마김밥도 만들고, 과일꼬치도 만들었다. 처음에는 김밥도 잘 안 말려졌지만 우리는 수없이 하이파이브를 하고, 한 마음으로 열심히 만들어 세 줄을 만들고 맛있게 먹었다. 말도 없고 해서 잘 안 먹을 줄 알았는데, 먹다가 접시 위에 떨어진 것까지 잘 먹는 모습을 보고 흡사 나의 동생과 같이 천진난만스러워 보였다. 과일꼬치를 만들 때도 하나하나 정성스레 꽂는 모습을 보고 대견스러웠다. 그 전에 본 짧은 동영상에 나왔던 ‘초록사과 빨간사과 겉의 색만 다를 뿐이지 껍질을 깎아놓으면 다 맛있는 것’처럼 우리 모두 다 똑같다는 것을 느꼈다.
만든 음식을 맛있게 먹은 뒤, 나와 내 짝꿍은 사진을 찍었다. 내 핸드폰이 신기해 보였는지, 셀카 찍는 것을 좋아했다. 사진을 찍을 때 성진이가 좋아하는 포즈는 턱에 대고 브이자를 하는 모습인데, 나도 똑같은 포즈를 취하고 셀카를 찍었다. 다음 사진에는 하트도 만들어줬다. 귀여운 모습에 괜시리 웃음이 나왔다
시간이 다 되어 다시 돌아갈 때에는 씩씩하고 요즘말로 COOL하게 ‘안녕’하고 문 앞에 가서 줄 서는 모습에 눈물이 찔끔 났다. 힘든 상황에도 불구하고, 멋지게 걸어나가는 그들을 보니 마음이 가볍고 나도 같이 힘이 솟았다. 그들은 많은 사람을 만나고 헤어지고, 이것에 익숙해져서 그런지 눈길 한번 더 주지 않고 갔지만, 나는 그들의 가는 뒷모습을 쭈욱 지켜보고 있었다. 너무 사랑스럽고 당당한 아이들이었다. 이것도 참 슬픈 일이었다.
이번 봉사활동 덕분에 우리 아빠도 승가원에 매달 후원을 하게 되었다. 이에 대해 너무 감사하다. 이번 기회에 내 새해 소망 리스트 한가지가 더 추가됐다. 승가원에서 준 휠체어 저금통에 한푼, 두푼 모아서 다 채우고 보내주는 것이다. 자주 편지도 쓰고 싶다. 그리고 더 중요한 사실은 내가 지금 얼마나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는지, 얼마나 행복한 아이인지를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작은 일에 불만을 갖고 살았던 나의 하루하루가 부끄러웠고, 나에게 이러한 반성의 기회를 갖게 해준 승가원 친구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고개 숙여 하고 싶다.
이선우 나누리기자 (중국 광저우 한글학교 / 1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