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지 기자 (서울강월초등학교 / 4학년)
추천 : 7 / 조회수 : 717
2011년 2월 26일 우리가족이 ‘북악산 서울성곽’을 갔다. 성곽을 개방했을때부터 엄마,아빠께서 줄곧 가시고 싶다고 하셨는데 나와 동생은 지난번에 ‘해피선데이-1박2일’을 보면서 ‘서울성곽’을 알게되었고,날씨가 따뜻한 날을 골라 가게 된 것이다.
북악산 서울성곽은 태조4년때 처음 만들었고,그 후 세종 4년때 대대적인 공사를 했다고 한다.그 다음 숙종 30년에 또 공사를 했다고 한다. 돌 하나의 크기가 내 키의 절반정도 되는것들도 많았는데 그 많은 돌을 어디에서 구했고, 어떻게 옮겨왔는지, 또 어떻게 쌓았는지 궁금해졌다. 오늘날처럼 편리한 기계들이 없었을 텐데 돌들이 쌓인 모양이 마치 퍼즐조각처럼 딱 맞춰져 있는것이 정말 신기했다. 이런 작업을 조선시대에만 3번이나 했다니...정말 우리 조상들이 대단한 것 같다.
성곽길을 따라 걷다보니 중간중간에 높은 돌이 세워져 있었다. 난 처음에 그것이 왜 세워져 있는지 몰랐다. 알고보니 그 돌 위에 올라가서 서울 풍경을 보라고 세워져 있던 것이었다. 어떤 돌은 위에 올라가도 나무에 가려서 안 보이기도 하였다.
길을 걷다가 ‘총알나무’를 발견하였다. 총알이 박혀있던 부분은 총알을 제거하고, 시멘트로 메꿔져 있었다. 그 소나무에만 15발의 총알이 박혀 있었다고 한다. 나는 소나무가 살아있는게 더 신기하였다. 소나무에 박힌 총알은 박정희 전 대통령 때 북한에서 넘어온 간첩단과 우리나라 군인, 경찰과 딱 마주쳐서 그때 총격전을 벌이다가 박힌 총알이라고 한다.
제 1코스를 다 내려와서 마지막으로 ‘창의문’을 보았다. 서울성곽에는 동서남북에 4대문을 두고, 그 사이에 4소문을 두었다. 그 중 창의문은 돈의문과 숙정문 사이에 있는 문으로 ‘북소문’이다. 하지만 북소문이라고 불리지는 않고 이곳 계곡의 이름을 빌려 자하문이라고 불려왔다고 한다. 창의문 성문 위에는 봉황 한 쌍이 새겨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안내문을 읽어 보니 닭 모양을 그린 것으로 창의문 밖 지형이 지네처럼 생겨서 지네의 천적인 닭을 새긴 것이라고 한다. 천적인 닭을 새겨서 지네를 누르려고 한 발상이 재밌고 대단한 것 같았다. 창의문은 유일하게 옛모습을 간직하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북악산 서울성곽을 둘러보니 좀 길어서 다리가 아프기도 하였지만 서울의 풍경도 둘러보고 여러가지 유적도 둘러보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이혜지 기자 (서울강월초등학교 / 4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