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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호 5월 6일

문화속으로 추천 리스트 프린트

김유빈 독자 (의왕초등학교 / 6학년)

추천 : 33 / 조회수 : 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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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 영릉을 찾아서

2010년 4월 10일 토요일에 군포의왕 영재교육원에서 경기도 여주 영릉을 탐방하였다. 영릉이란 조선조 제4대 세종대왕(재위 1418~1450)과 소헌왕후 심씨의 합장릉이다. 왕릉은 조선왕조의 능제를 가장 잘 나타내고 있는 능의 하나로서 합장릉임을 알 수 있는 두 개의 혼유석이 있고 봉분 둘레에 돌난간을 둘렀으며 12개의 석주에는 12간지를 문자로 새겨놓았다.


영릉전경은 세종28년에 소헌왕후가 승하하자 광주 헌릉의 서쪽에 쌍실의 능을 만들고 오른쪽 석실은 세종을 위해 미리 만들어 놓았다가 세종이 승하하자 합장되었다.


홍살문은 능의 정문 격에 해당되는 곳으로 능역에 들어섰을 때 제일 먼저 만나게 된다. 이것은 신성한 장소임을 뜻하며 2개의 둥근 기둥 위에 화살모양의 나무를 나란히 세운 가로대를 올려놓았고, 그 중간에 태극 문양을 그려 넣었다. 정자각은 왕릉이나 원 등의 앞에 두는 제전으로 정자모양의 맞배집 형태를 하고 있다.


세종대왕은 집현전 학자들로 하여금 1443년 훈민정음28자를 연구, 창제하고 3년 동안 다듬고 실제로 써본 연후인 1446년 9월 (음력)에 이를 반포함으로써 민족적 주체성을 통한 우리 민족문화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대왕은 국민을 위하여 농업을 진흥하려는 데 뜻을 두고 천문, 지리 등 과학기술을 연구, 보급하는데 전력을 쏟았다. 장영실, 이천 등 젊은 과학자들을 격려하여 천체관측기구인 (대)소간의, 일성정시의, 혼천의, 시간을 재는 기구인 앙부일구, 자격루 등을 만들었다.


이런 문화유산들을 보니 세종대왕님의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과 천문학적 관심이 뛰어나다는 사실을 알았다. 또한 신사상과 신기술의 통로였던 중국의 명나라와의 교류정책을 적극 펼치는 한편 바다 건너 왜구를 응징하여 이종무로 하여금 대마도를 정벌했다. 또 김종서를 함경도에 4군6진을 설치하여 국력을 강화하였다. 이를 통해 세종대왕은 문화, 외교, 과학적 학문만 아니라 국력을 강화하는 데에도 힘을 썼다는 사실에 놀라울 뿐이다.


이번 영릉을 탐방하였는데 정말 이 모든 것이 세종대왕이 계획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이글을 쓰면서도 감탄하고 있다. 특히 세종대왕은 이런 훌륭한 일을 하셨는데도 겸손하였다.


이런 점은 세종대왕릉에서 발견하였는데 세종대왕은 다른 분들보다 한 업적이 대부분 많은데 능을 지키는 석상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적다. 이것은 세종대왕이 자신은 별로 한 일이 없다라고 말해주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우리들도 세종대왕처럼 겸손할 줄 아는 큰 인물이 되길 바란다.

김유빈 독자 (의왕초등학교 / 6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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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빈
의왕초등학교 / 6학년
2010-05-06 23:54:24
| 제 글이 처음으로 실렸습니다. 어찌나 기쁜지 모르겠습니다.
다음에도 열심히 쓸것을 미리 다짐해 봅니다.
강희지
동덕여자중학교 / 2학년
2010-05-07 13:56:01
| 우와,좋은 경험 하셨네요!잘 읽고 갑니다^^
김태은
2010-05-12 11:07:12
| 좋은 기사 잘 읽었습니다.
전현환
대륜중학교 / 1학년
2010-05-14 22:02:53
| 기자님의 말씀대로 늘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 겠어요. 좋은 기사 잘읽었습니다
유상아
서울금북초등학교 / 6학년
2010-05-16 08:45:42
| 잘읽었습니다. 저도 영릉 다녀왔었어요.
조승아
청심국제중학교 / 1학년
2010-05-19 19:39:46
| 좋은기사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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