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준형 독자 (연산초등학교 / 5학년)
추천 : 66 / 조회수 : 929
12월 11일 부산 서면으로 구세군 봉사활동을 하기 위해 푸른누리 기자단이 모였다. 오래간만에 참여하는 취재라 긴장도 되었고, 늘 겨울철이 되면 일상적으로 느껴졌던 구세군을 만나고, 내가 직접 그 모금활동에 참여한다고 생각하니 떨리기도 했다. 작년 이 맘 때 1기 선배 기자님의 구세군 참여기사를 보며 부럽기도 하고 내년엔 나도 꼭 기자가 되어 체험해 보리라 다짐의 기회도 되었던 취재활동이라 정말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기자단은 오늘 우리의 구세군 체험에 함께할 오병환 사관님에게 우리가 궁금하게 여겼던 것들에 대해 질문을 드렸다.
Q. 구세군이 어떤 단체인가요?
A. 목사였던 윌리엄 부스가 1865년 런던의 슬럼가에서 구세군을 창립하였어요. 기독교 교단 중 하나이고, 군대와 같은 명칭으로 불리고, 사관학교를 나와서 사관이 되어요. 교회의 목사와 같은 것이지요.
종교가 군대조직과 같은 명칭으로 불리우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재미나기도 했다.
Q. 구세군 자선냄비가 생기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A. 1891년 성탄이 가까워 오던 미국의 샌프란시스코에서 자선냄비는 그 첫 종소리를 울리게 되었어요. 갑작스런 재난을 당하여 슬픈 성탄을 맞이하게 된 천여 명의 사람들을 먹여야 했던 한 구세군 사관은 오클랜드 부두로 나아가 주방에서 사용하던 큰 쇠솥을 다리를 놓아 거리에 내걸고, 그 위에 이렇게 써 붙였어요. “이 국솥을 끓게 합시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성탄절에 불우한 이들에게 따뜻한 식사를 제공할 만큼의 충분한 기금을 마련하게 되었어요. 한국에서는 1919년 한국 구세군 사령관이었던 박 준섭 사관님이 서울의 도심에 자선냄비를 설치하고 불우이웃돕기를 시작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구세군 냄비가 빨간 이유는 ‘처음 시작한 이후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라고 웃으며 말씀해 주셨다.
잠깐의 시간이 지나고 드디어 직접 구세군 활동에 나섰다. 우리는 2개 조로 나누어 두 곳에서 활동을 하게 되었다. 사관님과 다른 봉사자분들의 설명을 듣고 우리는 땡그랑땡그랑 종소리를 울리며 큰 목소리로 “어려운 이웃을 도와주세요!”를 외쳤다. 처음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길가에 서니 부끄럽기도 하고 머쓱해 말소리도 크게 낼 수 없었다.
시간이 조금 더 흐르고 자선냄비에 담기는 작은 고사리 손, 주름진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손, 바쁘게 지나치시던 어른들의 시선과 손길이 우리들의 가슴을 뛰게 하였다. 열심히 한다고 머리를 쓰다듬어주던 할아버지, 엄마 품에 안겨 손만 내밀던 꼬마 아이도 모두가 자랑스러운 우리의 이웃이었다. 모른 척하고 모두들 지나쳐 버리면 어떻게 할까 고민했던 내가 창피했다.
그 뒤 우리의 목소리는 지하상가를 울릴 만큼 우렁차졌다. “어려운 이웃을 도와주세요!” 짧은 한 시간의 활동이었지만 정말 가슴 뿌듯하고 무언가를 얻은 시간이었다. 그리고 다른 봉사자분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고작 한 시간 봉사를 하며 세상을 얻은 것 같기도 했지만 다리도 아프고, 목도 아팠다. 바깥이 아닌 지하상가라 괜찮았지만, 바깥에서 겨울철마다 이 일을 매일매일 남을 위해 한결같이 노력하는 봉사자분들과 사관님, 정말 존경스러웠다. 매년 성탄이 가까워지면 실시하게 되는 구세군 자선냄비는 아, 겨울이 왔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이 겨울을 지내야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웃사랑의 필요성을 알려주고, 쉽게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알려주는 것 같다.
구세군 자선냄비를 통해 조그만 정성이 모여 마음이 추운 이웃들에게 조그만 열기라도 전할 수 있다면 추운 겨울 봉사활동이 춥게만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올해는 우리나라에 힘든 일들도 많았고 가슴 아픈 일들도 많았었는데 얼마 남지 않은 시간들을 서로 생각하고 따뜻함을 나누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요즘은 다양한 기부방법들이 있어서 좀 더 쉽게 마음을 표현할 수 있으니 자신에게 맞는 방법들을 찾아보는 멋진 기자가 되어 보자. 나도 오늘 1년 동안 열심히 모은 내 빨간 저금통을 아주 기쁜 마음으로 기부했다.
손준형 독자 (연산초등학교 / 5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