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문주 나누리기자 (김포서초등학교 / 1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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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1900년대부터 일본의 탄압을 받았다. 1905년 을사조약(을사보호조약이라고도 함)을 시작으로 일본의 탄압은 더욱 거세졌다. 이번 푸른누리 기자 활동의 마지막 기사기획을 위해 독립기념관에 갔을 때를 기억해봤다.
그때는 6학년 교과서 내용에 역사가 나온다는 것을 알았기에 더욱 관심을 갖게 봤다. 독립기념관을 찾기 전, 아는 것이라고는 안중근 의사의 단지동맹밖에 없었다. 살펴보니, 내가 평소 관심있게 볼 필요가 있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일본이 을사조약을 내밀었고, 매국노 을사오적이 그 조약에 승인했다는 놀랍고도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이에 민영환은 나라를 구하지 못한 책임이 있다며 자결했다. 을사조약이 일어난 후, 정미 7조약, 포츠머츠 조약 등의 일본에게만 유리한 불평등 조약이 일어났다.
1940년대까지 일본의 탄압은 심했고, 일본은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었다. 조선을 ‘조센징’이란 호칭을 쓰며 일본 경찰들은 한국 학교를 항상 감시했으며, 일제시대를 경험한 우리 할머니는 꼭 일본어가 아니면 매를 맞았던 가슴 아픈 일이 늘 일어났다고 하셨다.
안중근 의사는 조선의 독립, 동양의 평화까지 망치는 이토히로부미를 사살했다. 일본에서 재판 후, 감옥에서 사망했다. 그러나 최근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은 새롭게 재조명되고 있다. 우리들이 이 사실을 알았으면 한다.
일본은 조선총독부까지 두며 우리 민족의 행동, 사상을 모두 감시했다. 또한 일본 경찰들은 고춧가루가 섞인 한 주전자를 이자겸 여사의 코에 쏟아부었을 정도로 일본의 탄압은 매우 심했다. 독립운동가 한용운은 시인이자 승려였다. 그는 조선총독부 식량배급을 매우 반대했으며, 팔각정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기도 했다.
많은 독립운동가들은 독립을 위해 몸을 던졌다. 서상돈 선생님은 국채보상운동을 시작했고, 문맹을 없애기 위해 주시경 선생님은 한글을 널리 보급했다. 독립운동가인 김구선생님의 백범 일지에는 김구(본명: 김창수) 선생님이 조국의 독립을 추구하는 삶을 담겨 있다. 여러 동지들의 독립운동을 지원하고, 주도적 역할을 하였다.
독립운동가 33인에는 이승만, 김구 외의 여러 독립에 업적을 남긴 운동가들이 있었다. 나는 이 분들을 보면서 애국심을 다시 한번 확실히 갖게 되었다.
3.1절이란 어떤 기념일일까? 1919년 3월 1일 한민족이 식민통치에 항거하고, 독립선언서를 발표하며 한국의 독립의지를 세계 만방에 알린 날이다. 나는 다른 기념일에 태극기를 달지 못한 적이 있었으나, 우리 가족은 3.1절에 꼭 태극기를 달며 업적을 기리고 있다.
우리 모두 3.1절 정의와 의미를 알고, 우리 모두 태극기를 달아 선열들의 업적을 기리길 바란다. 독립운동가들이 있었기에, 우리나라가 일본의 강점에서도 나라와 문화를 지킬 수 있었다는 점을 잊지말기 바란다.
홍문주 나누리기자 (김포서초등학교 / 1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