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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호 3월 3일

테마기획1 추천 리스트 프린트

김현교 기자 (당동초등학교 / 5학년)

추천 : 75 / 조회수 :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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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암리의 슬픈 역사를 아시나요?

봄내음이 가득한 지난 2월 20일, 3.1운동의 흔적을 알아보기 위해 경기도 화성시 향남읍 제암리에 위치한 3.1운동 순국기념관을 방문하였습니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자 참혹한 만행이 저질러진 마을이라고는 생각도 못할 정도로 아름다웠습니다.


우선 시청각실에 들어가 제암리 사건을 목격한 증언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제작된 동영상을 17분가량 보았습니다. 동영상 "두렁바위의 타오르는 불꽃"은 화성시 3.1 독립운동과 제암리 사건을 한눈에 알 수 있었습니다. 1919년 3월 28일 송산리에서 일어난 독립운동시위, 3월 하순 고산리, 우장면, 장안면 만세 운동, 4월 1일에 일어난 봉화시위, 4월 15일, 일본군보병인 아리따시오 중위가 이끈 군인들이 제암리 주민 23인을 교회에 가두고 총살, 방화로 끔찍한 만행을 저지른 사건을 담고 있었습니다. 그 사건의 산 증인이자 애국지사인 안진순 열사의 미망인 전동례 할머니의 증언을 듣고서 일본국들이 저지른 만행에 울분을 참을 수 없었고 내 몸이 떨리는 것을 느꼈습니다.

 

한 세기가 지난 현재, 과거를 거슬러 올라 경기도 화성시 향남면에 위치한 고요한 마을 제암리는 속칭 "두렁바위" 로 불리우는 조선 후기 전형적인 씨족 중심의 농촌 마을이었습니다. 당시 전체 33가구 가운데 2가구를 제외하고는 순흥안씨들이 모여 사는 집성촌이었으며 주민 대부분이 농업에 종사하는 평화로운 마을이었습니다. 그런 이곳이 일본인의 만행으로 "죽음의 마을"로 바꾸어 놓은 사건인 제암리 학살사건은 제암리 주민의 대부분이 천도교와 감리교 신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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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운동이 일어나자 제암리교회 설립자인 안종후는 장안, 우정읍, 시위운동을 총 주도한 백낙열 선생님, 고주리의 김흥렬 선생님, 동생 김성렬과 함께 이 지역 대표로서 서울에 올라가 탑골(파고다)공원에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습니다. 이어 3월 30일의 발안 장날을 이용한 독립만세시위가 이루워졌고, 그날 정오, 이정근 선생님의 "대한독립만세"선창으로 시작된 장날시위는 삽시간에 800명으로 불어난 군중들의 독립만세 물결로 퍼져 나갔습니다. 일본 순사들은 사격을 가하였고 군중들은 돌을 던지며 투쟁했습니다. 또한 4월 1일 발안 인근 마을 주민들은 발안장 주병의 산에 봉화를 올리고 시위를 하였습니다. 발안장날 시위 당시 군중들의 주재소 습격사건은 4월 15일 향남읍, 제암리와 팔달면 고주리에서 일제가 자행한 보복학살의 배경이 되었습니다.

제암리에 도착한 일본 군사들은 조희창과 사사카를 내세워 마을 청년 21명과 여인 2명, 모두 23명을 교회에 감금하고 출입문을 폐쇠한 뒤 불을 질렀습니다. 마을도 모두 불태워 버렸습니다. 그 후 이웃마을 고주리로 가서 천도교인 김흥렬 선생님 일가 6명이 몰살당하였습니다. 그때 흘린 피가 땅에 스며들어 그 자리에 땅을 파보면 붉은 흙이 나왔었다고 합니다. 그날의 처참함을 보여주는 것 같았습니다.


제암리에서 일제가 저지른 만행이 사건 이튿날 신속하게 외부에 알려지게 된 것은 언더우드, 테일러 일행이 자동차로 수촌리 현장을 확인하러 가던 도중 우연히 제암리의 참상을 목격한 것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또한 스코필드 선교사는 4월 18일 제암리와 수촌리를 방문하여 사후수습을 돕는 한편 사건 보고서를 캐나다와 미국의 친지들에게 전달하여 "끌 수 없는 불꽃"이란 책을 펴서 일제의 만행을 세계에 알리는 데 크게 기여하였습니다. 이 만행을 부끄럽게 여긴 일본인들은 지금도 이곳을 찾아 참회한다고 합니다.


전시관을 꼼꼼하게 관람하고 있던 아버지와 아들로 보이는 두 분을 인터뷰해보았습니다.

 

Q:전시관을 둘러본 느낌은 어떤가요?

A:옛 어른들의 삶을 엿볼 수 있었다


Q:평소 3.1 운동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계셨나요?

A:흔히 우리가 알고 있던 유관순 열사에 대해는 알고 있었지만 제암리 3.1운동에 대해는 처음 알았다.


Q:전시관을 둘러보면 기억에 가장 남았던 것은 무엇인가요?

A:일본군들이 우리 사람들에게 끔찍한 만행을 저지른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Q:동영상을 보고 난 느낌은 어떠하였나요?

A:이 지역에 일본군들이 저지른 잔인한 행동에 마음이 아팠다.

전시관을 나와 태국기의 물결에 이끌려 돌계단을 올라가 보았습니다. 그곳에는 3.1 독립운동을 한 기독교인 및 천도교인을 포함한 주민 23명이 묻혀 있는 묘지가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잠시 동안 묵념을 하고서 그날의 참상을 상상해 보았습니다. 이 자리에 서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함이 밀려왔습니다. 전시관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문구인 "용서는 하되 잊지는 말자"는 말이 머릿속에서 계속 메아리쳤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매년 3.1절마다 화해와 용서를 하며 좀 더 역사를 바로 아는 성숙한 국민이 되어야겠습니다.


--제암 29 선열의 명단--
안정욱 안종린 안종락 안종환 안종후 안진순 안봉순 안유순 안종화 안필순 안명순 안관순 안상용 조경칠 강태성 강태성부인김은희 홍원식 동부인 김씨 홍순진 김정헌 김덕용 김흥렬 김성렬 김세열 김주남 김주업 김흥복 안경순 안무순

순국29분들의 명복을 빕니다.


김현교 기자 (당동초등학교 / 5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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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건
삼봉초등학교 / 6학년
2011-03-03 16:55:22
| 제암리 마을에 대해 많이 알고갑니다 좋은 기사보고 추천합니다
전현환
대륜중학교 / 1학년
2011-03-03 22:14:02
| 제암리의 참상이 이렇게 심할줄은 몰랐습ㄴ다. 아무리 돈과 땅에 눈이 멀었다고 해도 그렇게 잔인한 일은 안되지요.
고민욱
서울보광초등학교 / 5학년
2011-03-05 18:24:13
| 일본인들이 여기에 와서 참회할 만 하네요.
저도 이 기사를 추천합니다.
윤하진
서울난우초등학교 / 6학년
2011-03-06 20:43:45
| ‘용서는 하되, 잊지는 말자’ 마음속에 새겨두고 싶네요.
좋은기사 보고 추천하고가요~!
장이화
용지초등학교 / 5학년
2011-03-07 21:30:49
| 처음듣는 제암리마을이야기 잘 읽고 갑니다 다시는 이런 비참한 일이 없었으면 좋겠어요^^
채승훈
서울불암초등학교 / 5학년
2011-03-08 15:37:32
| 오늘부터 방과후에 역사 공부를 하는데, 좀더 열심히 해야겠다.
제암리에 대해 좋은 기사를 봤습니다.
이동민
신탄진초등학교 / 6학년
2011-03-09 17:43:42
| 저도 제암리에 가보고싶습니다.!!!!!!!!!!!!!!!!!!!!!!
손해수
숭신여자중학교 / 1학년
2011-03-11 15:52:18
| 일본인들의 만행은 내가 지금까지 알던거와는 비교가 되지 않게 참혹하고 잔인했습니다.오늘 김현교기자의 기사를 보고 또 많이 배우고 갑니다
이호정
서울서강초등학교 / 6학년
2011-03-11 16:33:04
| ......너무 참혹합니다...
제암리에 가서 참혹하게 당한 영혼들을 위로하러 가고 싶네요.
제암리에 대해 잘 알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신지현
성동초등학교 / 6학년
2011-03-14 09:47:09
| 다시는 이런 아픔이 없어야 되겠습니다 좋은 가사 잘 읽었습니다
최수민
탐라중학교 / 1학년
2011-03-15 23:47:06
| 와...부럽습니다!!!그런 뜻깊은 곳에 가보다니!!
김수정
LA KEC Korean School / 5학년
2011-04-06 13:52:31
| 되게 잘썼군요...나는 그렇게 못 쓰는데....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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