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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호 4월 15일

문화속으로 추천 리스트 프린트

신윤지 독자 (서울교육대학교부설초등학교 / 6학년)

추천 : 8 / 조회수 : 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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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 신라의 왕릉을 돌아보다

경주에 막상 와보니 온통 무덤만이 눈에 들어왔다. 경주에 무덤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정말 몰랐다. 그냥 어쩌다가 한번 있는 줄 알았다. 나중에서야 나는 그 곳에 무덤이 많은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 곳이 대릉원이라는 곳이였던 것이다. 솔직히, 난 대릉원에 첫발을 들여놓았을 때 겁이 덜컥 났었다. 무덤이라는 말 자체가 나를 악몽 속으로 밀어넣을 것 같았다. 게다가 천마총은 들어가기까지 해야 한다니 아주 죽을 것 같았다. 본래 나는 조금이라도 무서운 이야기를 들어도 밤잠을 설치는 성격이다. 막상 천마총에 도착해서 들어가보니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관이 없었기 때문이다. 뭔가 죽은 것 보는 것을 싫어하는 나이다. 무섭기도 했지만 거기에 안에 있을 시신이 더 무서웠다. 다행히 없으니 안도의 한숨을 내쉴 만하지 않은가! 다음 날의 일정도 반이 왕릉 순례였다.

그 순례 얘기를 하기 전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무덤에는 여러 가지 이름이 있다는 것이다. 먼저, ‘릉’은 왕의 무덤에만 쓰일 수 있는 이름이다. 그래서 화랑인 김유신의 무덤에 ‘릉’ 자를 안 붙였던 것이다. ‘묘’는 왕이 아닌 다른 사람들의 무덤을 일컫는다. ‘김유신 장군묘’는 묘가 붙은 무덤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무덤이다. ‘묘’와’릉’ 모두 묻혀있는 사람의 이름을 따서 이름을 짓는다. ‘총’은 무덤의 주인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귀중한 유물이 나온 무덤을 말한다. 보통, 나온 유물에 따라서 이름을 붙인다. 신라의 대표적인 ‘총’으로는 ‘천마총’과 ‘금관총’이 있다. 마지막으로,’고분’은 ‘총’과 마찬가지로 무덤의 주인은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총’과 달리 귀중한 유물이 나오지 않은 무덤이다.

가장 먼저, 오릉을 갔다. 오릉은 혁거세, 알영부인등 왕족 5명이 묻혀있는 곳이다. 오릉의 전설에는 5개 다 혁거세 것이라고 해서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가서 설명을 읽어보니 아니였다. 5개가 한 곳에 모여있는 것을 보니 꼭 어제의 대릉원 같았다.

나는 다음으로 화랑으로 잘 알려져 있는 김유신 장군의 묘를 갔다. 여기는 마치 절의 일주문처럼 문이 있었다. 올라가니 오히려 왕릉보다 더 나은 것 같았다. 비석도 있었고, 무덤을 둘러싸고 있는 돌은 각각 십이지신이 새겨져 있었다. 글자가 많이 바래긴 했어도 김유신 장군묘라고 새겨진 웅장한 비석도 있었다. 역시 훌륭한 장군의 묘다웠다.

바로 태종무열왕릉을 갔다. 태종 무열왕은 신라 최초의 진골 왕으로써 김유신 장군과 함께 백제를 멸망시켰다. 물론 당나라의 도움을 받기는 했지만, 요즘도 약한 나라라고 알려져 있는 것이 옳지 않다고 증명해주는 사건이었다. 그러나 그의 무덤은 훌륭한 업적을 이룬 왕의 무덤 치고 너무 평범했다.

다음 목적지는 선덕여왕릉이었다. 선덕여왕은 우리 나라 최초의 여왕이다. 훗날 태종무열왕이 되는 김춘추의 이모이며 진평왕의 딸인 선덕여왕은 이루어낸 업적이 무척 많았다. 말기에, 여왕은 말도 안 된다는 비담의 반란으로 충격받아 돌아가신 선덕여왕의 무덤에 와보니 눈물이 나왔다. 선덕여왕릉은 최근 드라마의 영향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받기 시작한 것 같다. 아직 주차장도 입구도 제대로 정비되어 있지 않았다. 게다가 길도 제대로 나 있지 않은 산길! 비록 산을 올라가야 하는 것이 힘들긴 했어도 선덕여왕이 직접 정하셨다는 무덤의 자리가 궁금해서 계속 발걸음을 재촉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거기 올라갈 때는 무척 섬뜩했다. 그도 그럴 것이 고개 돌리는 곳마다 일반 사람들의 무덤이 있었다. 앞서 말했듯이, 나는 무덤이라는 말을 무척 싫어하고 무서워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여왕이 묻힌 명당 근처에 자리를 잡고 싶어했을 것이라는 것도 이해할 만 했다. 여왕님이 후세 사람들의 이 마음을 아실라나!

그 곳에서 나온 후 간 곳은 문무대왕릉이였다. 문무대왕은 태종 무열왕의 아들로 삼국통일을 완벽히 마무리했다. 이때 문무대왕의 유언은 ”나는 죽어서 바다의 용이 될 것이다.그러니 내 몸을 바다에 장사하도록 하여라.”였다. 이 유언은 그를 바다 속에 장사하게 된 큰 이유가 되었다. 그를 장사 지낸 바위는 대왕암이라고 불렸다. 무덤이 바다 속에 있다는 말은 무척 믿기 힘들었다. 가서도 마찬가지였다. 무덤이 정말 특이한 것 같았다. 더군다나 거기에 깊은 뜻도 있으니 내가 와본 무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이다.

1000년 고도의 경주에는 절만 잔뜩 있을 줄 알았는데 그보다 무덤이 몇 곱절이 되는 것 같다. 내일을 위해서 잠을 푹 자야겠다. 꿈 속에서 신라의 위대한 왕들을 만날지도 모르겠다.


신윤지 독자 (서울교육대학교부설초등학교 / 6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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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홍규
서울언북초등학교 / 6학년
2010-04-15 20:03:02
| 역시 경주! 도시 가득 산만한 무덤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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