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승협 기자 (중부초등학교 / 5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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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여름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폭우가 쏟아지는 날 남한산성에 위치한 만해 한용운 기념관을 찾아갔던 적이 있습니다. 만해 한용운 선생은 민족 33인 한 사람으로서 독립선언서에 서명을 하여 체포되어 3년간 복역을 하셨습니다.
만해 한용운 선생이 살았던 성북동 심우장으로 아빠와 함께 길을 나섰습니다. 성북동222-1번지 심우장은 찾아가기가 매우 어려웠습니다. 아주 좁은 골목길에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어서 찾기가 힘들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거의 없어서 물어 보기도 힘들었습니다. 번지를 보고 겨우 찾은 심우장은 아주 자그마한 한옥 한 채가 쓸쓸하게 우리를 맞아 주었습니다.
한옥은 보통 남향으로 짓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심우장은 북동쪽을 향하고 있었는데 그 이유가 남행으로 지었을 때는 조선총독부가 보이기 때문에 지었다고 합니다. 마당 한구석에는 90년이나 된 큰 소나무가 문지기처럼 집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심우’란 소를 사람의 마음에 비유하여 잃어버린 나를 찾자는 뜻으로 지어진 것이라고 합니다. 이 곳 심우장에서 1944년 중풍으로 쓸쓸하게 돌아가셨는데 세월이 지난 지금도 심우장은 쓸쓸해 보였습니다. 나라의 독립을 지키기 위해 소신을 굽히지 않았던 한용운 선생님의 집을 둘러보며 내 마음은 무거웠습니다.
심우장은 서울시 기념물로 지정되어 보호를 하고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이곳 심우장을 기억해 주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시인이자 독립지사였던 한용운 선생님을 우리는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백승협 기자 (중부초등학교 / 5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