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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호 3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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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라연 나누리기자 (여수한려초등학교 / 6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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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나요? 독립운동가 김상익

자랑스런 독립운동가, 김상익

3.1절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일제로부터 독립하여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던 3.1운동을 기억하고, 독립 운동가들을 기리기 위해 만든 우리나라의 국경일입니다. 이러한 국경일에는 어김없이 항상 정해놓은 듯 누구나 알고 있을 만큼 이름이 알려진 유명한 독립 운동가들의 업적을 기리고 추모하는 행사를 지역마다 개최합니다. 물론 큰 업적을 남기고 진정으로 나라를 위해 헌신한 누가 봐도 훌륭한 애국자들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이번 기사를 준비하면서 해마다 기억되는 유명한 독립운동가의 뒤에는 알려지지 못한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계셨다는 걸 알게 되었고, 나라를 위해 목숨까지 바치며 희생했지만 그 이름조차 후손들에게 불려지지 못한 그분들을 자세히 알아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조사하게 된 ‘창원의 독립운동가 김상익’도 역시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정말 존경받아 마땅한 독립 운동가이고 애국자이십니다.

다음은 지금은 고인인 되신 독립운동가 김상익의 업적을 자료에 근거하여 요약한 내용입니다.

-업적

1919년 3월 23일 창원읍내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

이곳의 독립만세운동은 3월 중순에 들어 경남 각지에서 독립만세시위가 전개되자 이 곳의 애국인사들이 비밀리에 계획, 주도하여 일어났다. 이들은 3월 23일을 독립만세운동의 거사일로 정하고 만반의 준비를 갖추어 갔다. 거사 당일인 3월 23일, 장날 비밀조직 확대와 연락을 통하여 다른 장날과는 달리 이른 아침부터 장꾼들이 모이기 시작하였다. 오후 2시 30분경, 많은 장꾼들이 모이자 주도자들은 창원보통학교에 있는 대수정 앞에서 선언서를 낭독한 뒤 거사의 취지를 설명하고 대한독립만세를 선창하자 7,000여 명의 군중들이 일제히 여기에 호응하여 독립만세를 외치며 장터를 행진하였다. 이 때 김상익은 ‘대한국 독립만세’라고 쓴 기를 들고 시위군중의 선두에 서서 시위를 주도하여 나갔다.

이같이 만세시위가 고조되자 이곳의 헌병과 일경 인력만으로 역부족이라 생각한 일제는 마산 중포병 대대 일본군과 진해의 일본군 병력을 동원하였다. 이들은 시위군중에 대해 총검으로 탄압하며 시위 주도자들을 체포하는 한편, 시위 군중들을 해산시켰다.

김상익은 이 일로 잡혀 5월 29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6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뤘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6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나라를 위해 하나뿐인 소중한 목숨을 온전히 바칠 수 있는 용기와 결심은 진정한 애국심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김상익을 시작으로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진 않았지만 우리나라 방방곡곡에서 진정한 애국심을 불태운 수많은 독립운동가들도 더욱 관심을 가지고 찾아보는 노력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이 기사가 부디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알려지지 못한 숨은 애국자들에게 관심을 가지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참고 사이트 http://narasarang.mpva.go.kr/

김라연 나누리기자 (여수한려초등학교 / 6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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