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헌우 독자 (대구동천초등학교 / 6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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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이것은 애국가1절의 한 구절입니다. 우리 나라가 일본에 나라를 빼앗겼을 때, 애국가는 나라 잃은 슬픔을 달래주는 노래였지요.
이 애국가를 작곡한 사람이 바로 안익태 선생님입니다. 안익태는 1906년12월5일, 평양에서 여관집 주인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어릴때부터 음악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는 어릴때 교회에서 흘러나오는 찬송가를 듣고 교회를 다니면서 풍금(건반악기이면서도 파이프나 리드를 진동체로 하는 기명악기)도 배우고 찬송가도 배우게 되었습니다. 안익태가 8살이 되던 해 일본에 공부를 하러 갔던 큰형이 작은 바이올린을 가지고 왔습니다. 안익태는 서툴지만 아름다운 소리를 하루가 지나는 지도 모르고 열심히 연습했습니다. 안익태가 중학생이 되던 해, 그 동안 열심히 연습한 바이올린 연주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학교 음악부에서 바이올린 선생님에게 인정을 받아 매일 바이올린 수업을 받으면 연습벌레처럼 연습을 했습니다.
하지만 안익태의 일상도 매일 편안하고, 조용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가 14 살 때, 3.1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모두 거리로 나와 만세를 불렀습니다. 하지만 안익태가 다니던 학교는 일본에 의해서 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그는 음악 공부가 너무 하고 싶은 나머지 결국 일본에 있는 도쿄 음학학교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는 일본에서 음악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향하는 배에 올랐습니다. 안익태는 미국의 학교에 입학해서 처음으로 신시내티 교향악단의 첼로 연주자로 뽑혔습니다. 열심히 음악 공부를 한 끝에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습니다. 그후 안익태는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노래를 짓기로 결심했습니다. 하지만 안익태가 애국가를 완성했을 당시에도 일본의 지배를 받고 있었던 터라 애국가를 조국에 보낼 수 는 없었습니다. 얼마후 독일에서 올림픽이 열렸을 때, 그는 국민들에게 일장기를 달고 달리는 대한민국 선수들을 위해 애국가 를 나누어주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매일 아침 조회시간마다 듣는 애국가는 힘든 과정을 거쳐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다가오는 3.1절은 우리나라의 독립운동가들이 만세를 외친 날입니다. 지금도 우리는 이 날을 기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애국가가 없었다면 어땠을 까요? 애국가는 우리나라의 음악 중에서 가장 멋지고 애뜻한 노래입니다. 혹시 지금도 최신가요를 듣고 있다면 마음을 바꿔서 애국가를 한번 들어보는 것은 어떨까요? 저도 안익태 선생님에 대해서 조사하면서 저의 애국가에 대한 마음을 한번 되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저도 3.1절에는 다른 휴일보다 소홀한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이번 다가오는 3.1절에는 저도 애국가를 부르면 조상님들의 영혼을 기릴 것입니다. 지금은 우리의 것을 찾자는 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나 많은 사람들이 우리릐 음악을 공부하고 옛것을 찾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서양 음악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외국으로 가서 열심히 공부하여 전세계에 한국인의 자랑스러운 이름을 떨치고 있습니다. 푸른누리기자들도 서양음악과 우리 음악을 조화롭게 갈고 닦아 발전시키는데 함께 앞장서 보는 건 어때요?
5.16 1주년 기념식장에서 지휘하고 있는 안익태 선생님
애국가를 작곡하신 안익태 선생님
출처 : (주)한국허밍웨이 태마위인
하헌우 독자 (대구동천초등학교 / 6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