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지인 기자 (서울원명초등학교 /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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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7일, 푸른누리 기자단은 국립서울현충원으로 취재 및 봉사활동을 갔다. 먼저 현충문을 지나 현충탑에서 참배를 했다. 그 다음, 현충탑 지하로 가서 유해를 찾지 못한 사람들의 이름을 돌에 새긴 것을 보았다. 유해를 찾지 못한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다니! 너무 슬펐다. 버스를 타고 가면서 애국지사 묘역도 보았다. 그리고 그 묘역에는 214명의 애국지사들이 안장되어 있었고, 무후선열제단도 갔는데 이곳은 독립운동 중 순국하였으나 유해도 찾지 못하고 후손이 없는 사람들이 모셔져 있다고 한다. 이어 역대 대통령 묘역을 갔다. 이곳 안장된 박정희 대통령, 이승만 대통령, 김대중 대통령 묘역에 참배를 했다.
그리고, 이날 탐방의 핵심인 묘역청소 봉사를 하였다. 우리나라와 우리민족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신 분들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정성스럽게 그분들의 비석을 닦아드렸다. 그 봉사활동을 할 때는 나라를 위해 아주 작지만, 자랑스러운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비록 우리와 직접적으로 관계된 분은 아니지만 이분들이 목숨 바쳐 나라를 지켜 현재 우리가 대한민국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하니 묘비를 닦는 마음에 정성이 더해졌다.
현충원은 독립 운동을 했던 순국선열과 애국지사, 6.25 전쟁 때 전사한 분들을 안장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그러나 전사자의 수가 점차 증가함에 따라 육군에서 묘지 설치문제가 논의되어 1949년 말 육군본부 인사참모부에서 서울근교에 묘지 후보지를 물색하던 중 6.25전쟁으로 묘지 설치문제는 중단되었고, 각 지구 전선에서 전사한 전몰장병의 영현은 부산의 금정사와 범어사에 순국 전몰장병 영현 안치소를 설치, 봉안하여 육군병참단 묘지등록중대에서 관리하였다. 1952. 5. 6. 국방부 국장급 회의에서 육군묘지 설치문제에 대하여 논의한 결과, 육군묘지를 설치하게 되면 타군에서도 각기 군 묘지를 만들어 관리상 많은 예산과 인원이 소요되고, 영현관리의 통일성을 기할 수 없는 등 여러 가지 폐단이 생길 것을 우려하여 육군묘지 설치문제는 일단 보류하도록 지시하고, 3군 종합묘지 설치를 추진하되, 묘지의 명칭은 국군묘지로 칭할 것을 결의하였다.
국립서울현충원은 한강과 과천 사이 넓은 벌판에 우뚝 솟은 관악산 공작봉 기슭에 위치해 있다. 공작봉은 관악산을 중심으로 양쪽으로 뻗어내려 불끈 솟아올랐다가는 엎드리는 듯 줄기와 봉우리가 만나고 헤어지면서 늠름한 군사들이 여러 겹으로 호위하는 모양으로 기운이 뭉쳐 있다. 국립서울현충원은 61년 동안 돌아가신 분들의 이름을 알기 위해서 연구하고 있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신 분들이 얼마나 계시며 현충원에는 몇 분의 비석과 묘역이는지에 대한 질문에 최병수 행정사무관님이 답변을 해주셨다. 현충원에는 8군데의 묘역이 있는데 16만 9000 명이나 된다.
충열대에는 마신상 한 쌍이 있고, 마신상 한 쌍은 묘지를 지키는 수호신들이다. 우리는 현충탑 지하에 가서 돌아가신 분들의 성함이 적힌 곳을 보았다. 우리나라와 우리 민족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신 분들이 이렇게나 많다니, 놀라기도 하였고, 매우 슬펐다. 그리고 애국지사 묘역에는 214명의 애국지사들이 안장되어 있었다. 그리고 무후선열제단에는 후손이 없는 분들이 모셔졌다. 그 중 유관순 열사도 있었다.
박정희 대통령 묘역에서 참배하기도 했다. 나도 향을 피우고 싶었다. 기회가 된다면, 가족과 함께 와서 해야겠다. 또 노벨평화상을 수상하신 김대중 대통령 묘역에서도 참배를 했다.
봉사활동으로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신 분들의 비석을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깨끗이 닦아내어 조금이나마 나라사랑을 실천하였다. 푸른누리 기자단은 현충원 방문 및 봉사로 작지만 소중한 경험과 애국심을 마음속 깊이 새겼다.
허지인 기자 (서울원명초등학교 / 4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