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채현 독자 (대구대덕초등학교 / 6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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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버버 어버머..."
우리 엄마 소리다. 우리 엄마는 태어날 때 부터 언어장애를 갖고 있다. 그래서 아직 딸 이름도 불러 보지 못한... 사실 난 우리 엄마가 싫다. 다른 친구들에겐 당연하다고 받아들여지는 엄마가 내이름을 부르는 건 우리 엄마는 할 수 없다. 학교 행사가 있을 때에도 다른 친구들 엄마는 예쁜 정장 차림으로 친구들에게 손 흔들며 "솔희야~", "한울아~" 부르시는 데 우리 엄마만 "어버버버~"하며 내게 손을 흔들면 우리 반 전체는 술렁이고 내 볼은 빨갛게 달아오른다. 내가 무슨 잘못을 했길래... 그래도 우리 엄만데 내 이름 한 번 불러 줬으면 한 적이 없을리가... 나는 혹시나 하며
"엄마, 내 이름이 뭐야?" 한다. 그리고 어김없는 대답은
"어버버.."다.
그래서 내가 한숨을 쉬고 내 방문을 쾅 하고 닫으면 엄마는 내 방 문을 똑똑 두드리고는 나에게 다가와 꼬깃꼬깃한 영수증 뒤에 적힌 ‘미안해... 엄마가 이래서...우리 수정이는 재벌집 외동딸로 태어나도 아까울 아이인데... 엄마가 미안해.. ’라는글씨를 두고 가신다. 엄마가 나갈 때의 구부러진 허리와 쪼그라든 어깨를 보면 내 마음이 너무 아프다. 괜한 후회도 든다. 그리고 그 날 밤이면 어김없이 눈물로 밤을 지새운다. 나를 사랑하는 마음만큼은 어느 엄마에게도 뒤지지 않을 우리 엄마인데...학교에 가도 지난 밤 생각에 눈물이 글썽이고, 점심을 먹으면서도, 수업을 하면서도...... 저녁을 먹을 때에는 더 이상 글썽일 눈물조차 남아 있지 않다. 엄마가 날 누구보다 사랑하는지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세상에서 하나 밖에 없는 ‘김영순’ 엄마 딸이라는 아이가, ‘김영순’이란 사람을 사랑 해 줄 수 있는 한 사람 뿐인 내가, 엄마한테 이렇게 대하는 것과 엄마가 나한테 미안하다고 해야하는 것... 미안하고 또 미안한데 엄마가 싫은 내 마음에게 화가 난다. 엄마를 자꾸만 꼬옥 안아드리고, 미안하다고, 사랑한다고 말 해드리고 싶은데 그럴 수 없는 내 심정이 너무 화가난다. 난 엄마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얼마 뒤 나는 엄마를 위한 일을 시작하고 있었다. 그리 좋지도, 수입이 좋지도 않은 거였지만.. 신문을 나르는 아르바이트였다. 고등학생이라 아르바이트를 구하는 것이 어렵지는 않았지만 잠이 많은 나에게는 벅찬 아르바이트였다. 우리집 낡은 자전거로 여섯 달을 버텼던 것도 기적이었다. 이리 넘어지고 무릎 까지고, 저리 넘어지고 팔꿈치 긁히고 해서 번 돈. 그 돈을 엄마 손에 꼭 쥐어 주었다.
"엄마, 이거 내가 아르바이트 해서 번 얼마 안되는 돈이지만 엄마 물리치료하는데 써."
엄마는 놀란 눈치였다. 그리고 내 손에 다시 그 돈봉투를 쥐어주셨다. 엄마는 고개를 젓고 있었다. 나는 애써 단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엄마가 내 이름 부르는 거 듣고 싶어서 그래. 엄마가 딸이름도 한 번 못 불러 봤다는게 말이 돼? "
그래서 그 날부터 엄마는 물리치료를 받으러 초록병원에 다니게 되었다. 매일 매일 물리치료를 했지만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엄마가 정말 물리치료를 다니고 있는 건지 아닌 건지도 의심이 갈 정도로 말이다. 난 학교를 다녀 와서 내 가방을 좁은 방에 툭 내팽개쳤다. 그리고 한숨을 쉬었다. 열어놓은 창문 사이로 황소바람이 들어와 내 머리를 더욱 내리치는 듯 했다. 그 날도 어두운 일상의 연속이었다. 학교에 다녀 와 대문을 끼이익 열고 집에 들어가면 보이는 것은 구석에 앉아 뭔가를 보며 열심히 알 수 없는 소리를 중얼대는 엄마 뿐이었다. 나는 여느때와 같이 책가방을 방에 툭 던져 놓고 거실로 나가 괜히 엄마한테 성질을 냈다.
"엄만 왜 언어장애인이라 내 이름조차 부르지 못하는 거야?"
아차 싶었다. 엄마의 갈빛 눈동자가 흔들렸다. 엄마에게 미안했다. 그리고 그 순간 내 귀에, 기적같은 소리가 들렸다.
"수...수저이"
난 내 귀를 의심했다. 그리고는 흥분해서 엄마께 물었다.
"엄마, 뭐라고? 수... 수정이? 나 말이야? 엄마 지금 내 이름 부른거야?"
"수.. 정"
나는 기뻐서 엄마를 와락 껴안고 얼굴을 부벼댔다. 엄마... 그동안 엄마의 얼굴에는 주름살이 몇 개 늘어났고 로션 하나 엄마 자신의 것 스스로 사 발라 보지 못한 엄마의 가난한 피부는 거칠거칠 해 져 있었다. 엄마와 나의 눈에 물기가 촉촉히 번져있었다. 그제서야 내 눈에는 보였다. 엄마가 매일 끼고 살던 그 수첩이... 그 수첩에는 ‘수정’이라는 글씨가 적히고 적히고 또 적혀있었다. 눈이 아플 정도로... 엄마는 그 수첩을 들고 매일 혼자 읽었던 것이다. 한 번 더 내 눈가가 뜨거워졌다. 엄마는 내 손에, 내가 저번에 엄마 손에 쥐어 줬던 그 돈 봉투를 다시 쥐어주며 쪽지를 하나 건냈다.
‘수정아... 모자란 엄마 때문에 피곤하게 아르바이트 같은 것 까지 하고.. 엄마가 항상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이 돈, 엄마는 못 쓰겠어. 네가 통장에 넣어, 나중에 네가 꼭 필요할 때 쓰려무나. 수정아, 이런 엄마지만, 다 망가져 네 눈엔 그냥 아파서 어버버대는 장애인에 불과할 지 모르지만, 엄마가 수정이 사랑하는 이 가슴만은 망가지지 않았다는 걸 명심하렴.. 사랑해.’
그 날 밤은, 세 가지의 눈물이 뒤섞여 내 얼굴을 붓게 만들었다. 고마움의 눈물, 미안함의 눈물, 기쁨의 눈물... 그렇게 우리 엄마는 딸이 열 일곱 살 때 처음으로 이름을 불러주었다.
이채현 독자 (대구대덕초등학교 / 6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