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리아 기자 (서울길음초등학교 / 5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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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수는 그제야 겁이 나기 시작했어요. 체육선생님이 부른 구급차를 탄 번태는 큰 병원으로 옮겨졌죠. 학교선생님들은 주변을 다 뒤져보았지만 번태를 맞춘 공을 던진 사람을 찾을 수가 없었어요. 그날 밤 영수는 한잠도 이루지 못한 채 밤을 뜬눈으로 새고 말았습니다.
일찍 학교에 온 영수는 계속 번태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렸죠. 하지만 반 아이들 모두가 학교에 온 시간에도 번태의 모습은 나타나지 않았어요. 걱정스런 얼굴로 나타난 담임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했어요.
“어제 번태가 좀 크게 다쳐서 당분간 학교에 못 올 것 같다. 그러니 그렇게 알도록.”
선생님의 말이 끝나자마자 교실은 웅성거렸죠. 그때 한 아이가 물었지요.
“선생님, 번태가 많이 다친 건가요?”
선생님은 괴로운 얼굴로 대답했어요.
“그게 말이다. 아직 의식이 돌아오지 않았다는구나. 그래도 너무 걱정은 마라. 괜찮아질 테니까.”
그날 하루 종일 영수는 제대로 수업에 집중할 수가 없었습니다. 반 아이들은 아무것도 모르지만 영수는 알고 있었죠. 자신 때문에 번태가 그렇게 많이 다쳤다는 사실을요. 사실 그렇게 많이 다칠 거라는 생각은 영수는 하지 못했었죠. 비록 번태의 괴롭힘에 시달리기는 했지만 영수는 그렇게까지 번태를 미워한 것은 아니었으니까요.
학교가 끝나고 우울한 마음으로 집에 가는 길에 영수의 눈에 누군가가 들어왔죠. 등이 굽은 꼬부랑 할머니, 바로 백점빵 할머니였어요. 보따리를 머리에 인 백점빵 할머니는 마치 달팽이처럼 천천히 앞으로 가고 있었어요. 영수는 있는 힘을 다해 할머니 쪽으로 뛰어갔어요.
“할머니, 할머니 맞죠?”
“또 너냐? 자주 보는구나. 그래 내 말대로 됐지. 아주 고소하지.”
“할머니, 그게 아니에요. 그렇게까지 다칠지는 몰랐다고요.”
“무슨 소리야. 네가 원하던 거잖아. 그 덕에 너는 백점을 또 맞았잖니?”
“할머니, 다시 돌려놓으세요.”
“뭘 말이야. 다시 돌려놓다니.”
“번태 그 자식 원래대로 해놓으라고요.”
“그따위 녀석을 동정하는 거니. 널 바보라고 놀리고 괴롭히던 아이잖아.”
“그래도 그건 아니죠. 의식도 없대요.”
“다시 깨어나면 또 널 괴롭힐 텐데, 친구들 앞에서 때리고 약 올리고 바보라고 놀릴 텐데.”
영수는 순간 마음이 흔들렸어요. 번태에게 당했던 괴로움들이 다 떠오른 거죠. 하지만 그렇다고 영원히 번태가 눈도 못 뜨고 쓰러지는 것은 싫었어요. 미웠지만 그렇게까지 독한 마음을 품을 수 없는 영수였으니까요.
“괜찮아요. 그러니 제발 돌려놓으세요. 다시 영수를 제자리에 두시라고요.”
“좋다. 하지만 말이다. 한 가지는 알아두어라. 영수를 원래대로 돌아오게 되면 대신 네가 벌을 받게 될 거야.”
“제가 벌을 받아요?”
“왜 이제야 그런 말을 한 게 후회 되냐? 그러면 관두렴. 너한테는 어떤 일도 생기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영수는 모든 것이 두려워졌어요. 번태를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으려면 영수 자신이 벌을 받아야 한다는 백점빵할머니의 말 앞에 그만 겁을 먹고 만 거죠. 그런 영수를 백점빵 할머니는 아주 무섭게 노려보며 말을 했지요.
“사람은 누구나 이기심을 갖고 살아가지. 자기를 지키는 게 더 중요한 법이거든. 네가 아무리 착한 척을 해도 이 할미는 모든 것을 안단다. 그게 사람이야.”
영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어요. 그저 부들부들 떨기만 할 뿐이었죠.
최리아 기자 (서울길음초등학교 / 5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