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세현 독자 (서울위례초등학교 / 5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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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홍화진 전투와 귀주대첩에 대해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는 것들 중엔 잘못된 부분이 많다. 그래서 이번에 귀주대첩과 홍화진 전투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려 한다.
거란(요)은 발해를 멸망시킨 후 많은 힘을 키웠다. 그래서 결국 고려까지 쳐들어오게 됐다. 거란은 세 차례에 나눠 고려에 쳐들어 왔는데 1번째(거란의 제 1차 침략)는 993년에 일어났다. 이 전투에서 고려는 서희의 담판외교 덕분에 강동 6주를 얻으며 승리하게 됐다.
거란은 1810년, 제 2차 침략을 강행했다. 강조의 죄를 물어 쳐들어 온 것이다. 결국 임금이었던 현종은 나주로 피난을 가게 됐다. 그러나 지난 시절, 임금이 피난가는 일은 의외로 자주 있었다. 임진왜란 때 선조, 병자호란 때 인조, 6.25전쟁 때의 이승만 등 왕이나 임금들은 위험한 일이 있을 때 피난을 갔으니 말이다. 후에 거란은 양규와 김숙홍의 공격을 받아 피해를 입고 자신의 나라로 되돌아갔다.
거란의 제 3차 침략은 1018년에 벌어진 일이다. 소손녕의 형인 소배압이 쳐들어 온 것이었다. 바로 그때 홍화진 전투와 귀주대첩이 일어났다.
우리는 흔히 귀주대첩에 대해 ‘강감찬이 강에 물을 저장했다가 거란 군사가 건널 때 풀어서 거란 군사를 전멸 시킨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귀주대첩이 아니라 홍화진 전투다. 사실상 귀주는 들판이라 강처럼 물이 흐르는 곳은 없기 때문이다. 때문에 귀주에서 일어날 수가 없는 것이다.
어찌됐든 이 전투로 인해 거란은 많은 피해를 입었고,그 후 귀주대첩이 일어났다. 처음에는 승부가 가려지지 않았던 이 사건은 바람의 도움 때문에 고려군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흘러가게 됐다. 갑자기 거란 쪽으로 불어닥친 바람 덕분에 고려가 화살을 날리기 좋은 환경이 조성된 것이었다. 그 때 고려군은 최선을 다해 공격했고, 거란은 돌아갔다. 그 후 약 100년 후에 거란은 멸망하고 만다.
이처럼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역사 중에는 의외로 잘못 알려진 것들이 종종 있다. 홍화진 전투와 귀주대첩뿐만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제부터 역사에 좀 더 많은 관심을 가져서 우리 역사를 더욱 정확하게 알기 위해 노력해야겠다.
천세현 독자 (서울위례초등학교 / 5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