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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호 1월 20일

문화 속으로 추천 리스트 프린트

이예은 나누리기자 (동학초등학교 / 6학년)

추천 : 60 / 조회수 : 13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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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사이유 궁전의 아름다움

예술의 전당에서 ‘프랑스 국립 베르사이유 특별전-루이 14세에서 마리 앙투아네트까지’ 전이 2010년 11월 5일부터 2011년 3월 6일까지 열린다. 1월 2일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프랑스 국립 베르사이유 특별전-루이 14세에서 마리 앙투아네트까지’를 관람하였다.


‘프랑스 국립 베르사이유 특별전’은 프랑스 국립 베르사이유 궁과 협력하여 아시아 최대규모로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열리는 전시로 루이 14세부터 마리 앙투아네트에 이르기까지 프랑스 왕실을 만날 수 있었다.


루이 14세는 태양왕으로 불리는데 프랑스 절대왕정 시기의 왕이었다. 루이 15세는 루이 14세가 만든 권력을 바탕으로 강력하게 통치하였으며 화려한 왕실 문화를 만들었다.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 시대에는 프랑스식 세련미가 만들어졌는데 현재 베르사이유를 역사와 문화가 꽃핀 문화의 중심에 자리잡게 하였다.
1624년 루이 13세는 베르사이유에 사냥 모임을 위한 작은 별장을 짓도록 하였다. 1631년 작은 궁으로 개축되었는데 루이 14세에 의해 대대적인 증개축이 이루어졌다. 베르사이유궁은 1661년부터 오늘날의 모습으로 완성되기까지 100년 이상이 걸렸는데 내부에 226개의 거처와 450여개에 달하는 방이 있으며 최대 5000여명이 거주했다고 한다. 베르사이유 궁은 규모만으로도 세계 최대의 궁전이라고 할 수 있으며 프랑스 양식의 탄생과 절대 왕권의 전성기를 보여준다. 그리고 프랑스 왕실과 귀족 문화의 중심지로, 웅장함과 화려함으로 대표되는 바로크 양식과 로코코 양식으로 완성되었다. 1979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베르사이유 궁전은 전세계에서 수많은 관광객이 찾는 명소로 루이 14세부터 혁명기 전까지 프랑스 왕가가 사용하였던 유물과 6000여 점의 회화 작품, 2100여 점의 조각 작품, 15000여 점의 판화 및 5000여 점의 가구와 유물 등을 소장하고 있는 세계적 박물관이다.
 
베르사이유 궁의 주요 시설물에는 루이 14세 통치 말기에 왕비의 공식 처소로 편입된 후 루이 15세 때 왕비 마리 레슈친스카가 매주 일요일 음악회를 열었던 ‘평화의 방’이 있다. 그리고 헤라클레스의 영광을 나타내는 천장벽화가 있는 ‘헤라클레스의 방’이 있고 베르사이유 궁의 중심부를 차지하는 ‘왕의 침실’, 루이 14세가 거두었던 전쟁에서의 승리를 찬미하는 내용을 담는 ‘전쟁의 방’이 있다. 베르사이유 궁 내의 여러 장소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곳 중 하나는 루이 14세 때 프랑스가 거둔 정치적, 경제적, 예술적 성과를 찬미하는 공간으로 대형 거울이 긴 회랑을 따라 각각의 창문과 마주하여 대칭을 이루고 있는 ‘거울의 방’이다.


전시장은 루이 14세, 루이 15세, 마리 앙투와네트 왕비와 루이 16세로 나누어져 있어 프랑스 왕실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만나 볼 수 있다. 피에르 미냐르의 ‘루이즈 마리 안 느 부르봉 일명 마드무아젤 드 투르’는 루이 14세와 몽테스팡 부인 사이에서 태어난 루이즈 마리 드 부르봉이 죽은 후 그린 초상화인데 6살의 소녀가 비눗방울을 만들며 놀고 있다. 그림 속의 소녀는 비누방울을 들고 재미있게 놀았을 것 같은데 비누방울은 삶의 허무함을 나타내므로 그림 속의 소녀가 어려서 죽었음을 나타낸다고 한다. 그림을 볼 때 상징의 의미를 알고 봐야 작품이 표현하고자 하는 것들을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고블랭 왕립 제조소 제작의 ‘명예의 휘장’은 커다란 태피스트리 작품으로 루이 14세의 왕실에서 최초로 사용한 휘장으로 왕실의 영광을 상징한다. 왕실 휘장이라서 굉장히 크기가 큰데 작품 속에 두 명의 여인이 있다. 갑옷을 입은 여인은 승리를, 나팔을 불고 있는 여인은 명예를 상징한다고 한다. 원래 작품의 하단에는 충성과 용맹을 상징하는 개와 사자가 표현되어 있었는데 충성과 용맹은 신하가 갖추어야 할 덕목이었기 때문에 이를 삭제하고 무기를 형상화한 문양으로 대체되었다고 하는데 프랑스 규모와 표현 등 모든 면에서 왕실의 휘장임이 느껴졌다.


샤를 푀르송의 ‘주피터의 모습으로 표현된 루이 14세의 초상’은 태양왕 루이 14세를 주피터 즉 제우스에 빗대어 표현한 신화적 초상의 대표적 작품이다. 당시 최초의 귀족의 반란이었던 프롱드의 난을 제압한 루이 14세가 최고의 신 제우스의 모습으로 그려져 있으며 작품의 아래에는 ‘이 젊은 군주는 바로 새로운 제우스이다’라고 적혀 있다. 왕을 신으로까지 그릴 정도로 루이 14세의 권력이 강했음을 보여주는 작품 같았다.

장 바티스트 드 상페뉴의 ‘메르쿠리우스의 전차’는 베르사이유 궁 메르쿠리우스의 방 중앙 천장화를 제작하기 위해 그려진 초벌화이다. 작품의 중앙에는 그리스 신화 속 전령의 신 메르쿠리우스가 자리하고 있는데 자신을 태양에 비유했던 루이 14세는 방에 태양의 주위를 도는 행성의 이름을 지었는데 이 그림은 그 중 하나인 수성을 의인화한 그림이다. 한동안 왕의 공식 침실로도 사용되었을 만큼 중요한 방이었던 이곳에는 현재 이 초벌화를 바탕으로 완성된 초벌화가 남아 당시의 영광을 보여주고 있다. 이 작품을 보면서 유럽 문화를 이해하려면 그리스 로마 신화를 알아야 겠다는 생각을 하며 그림 속의 인물들을 보면서 신화 속 인물들을 알게 해 주는 상징물들을 찾아보았다.
 
루이 빅토르 나블레의 ‘베르사이유 궁 내 루이 14세의 침실’은 베르사이유 궁 루이 14세의 침실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왕의 침실은 왕의 공식적인 아침 일과가 시작되는 중요한 장소로 궁전의 어느 방보다 화려하게 꾸며져 있다. 작품 속에서 벽의 중심에는 침대가 놓여 있고 금색으로 수를 놓은 천을 씌운 가구와 회화 작품으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으며 침대 위쪽으로는 ‘잠들어 있는 왕을 살피는 프랑스’라는 장식이 붙어 있다. 이 장식은 왕의 침실에만 달 수 있는 상징물인데 이 작품 옆에 놓인 루이 14세 침실 모형에서도 찾아 볼 수 있었다. 이 침실 모형을 그림과 비교해 보며 루이 14세가 이 침실에서 잠이 들고 아침 일과를 시작하는 모습을 상상하여 보았다.

고블랭 왕립 제조소의 ‘프랑스 왕실 문장이 들어 있는 새로운 휘장’은 최초의 왕실 휘장이 70년 동안 사용된 뒤에 새로운 디자인으로 제작된 프랑스 왕실의 두 번째 휘장이다. 최초의 휘장보다 단순한 디자인이지만 왕실의 공식 초상화에서 볼 수 있는 왕의 상징물들이 모두 그려져 있다. 왕관, 왕권을 상징하는 지팡이인 왕홀, 사법권을 의미하는 정의의 손, 군사 통솔권을 의미하는 투구 등이 왕의 상징물이다. 꼭대기에는 태양의 신 아폴론의 얼굴이 있는데 이것은 태양왕 루이 14세의 영광을 지속적으로 잇는다는 왕실의 정통성을 상징한다. 최초의 왕실 휘장과 약간 다른 느낌이지만 프랑스 왕실의 위엄을 잘 보여주고 있었다.
 
왕실의 공식 초상화는 단순한 초상화의 의미를 넘어 왕실의 지닌 권력의 상징이며 그 자체가 국가의 이미지를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고 하는데 이러한 초상화 속에는 왕실의 상징물들이 함께 그려져 있었다. 앙투완 브누아의 ‘루이 14세’는 67세가 된 루이 14세의 옆모습을 담고 있는 작품으로 사실적으로 표현하였다. 작품 속 루이 14세의 얼굴에는 늙은 흔적이 보인다. 루이 14세는 통치 초반부터 탈모증을 감추기 위해 가발을 썼는데 이 가발이 점차 그의 왕권을 상징하게 되었다. 루이 14세를 표현한 공식 초상화들은 이 가발을 더 크고 풍성하게 묘사하였다. 이 작품이 제작될 당시 루이 14세는 손자인 스페인의 펠리페 5세의 왕좌를 지켜주기 위해 유럽을 상대로 하는 힘겨운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고 한다. 나이 든 왕의 모습이 태양왕의 권력을 지녔지만 유럽을 상대로 하는 전쟁의 힘듦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이야생트 리고의 ‘대관식 복장을 입은 어린 루이 15세’는 루이 15세가 아주 어렸을 때 모습을 담은 최초의 공식 초상화이다. 초상화에는 왕을 상징하는 백합꽃 무늬의 망토, 성령 기사단의 목걸이, 왕홀이 보인다. 다른 공식 초상화와 달리 어린 루이 15세가 큰 망토에 눌리는 것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 앉아 있는 모습이다. 리고가 그린 루이 14세 초상과 비슷한 느낌으로 그려져 왕실의 영속성이 유지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공식 초상화 속의 왕들은 왜 비슷해 보일까 생각했었는데 왕실의 영속성을 보여주기 위한 의도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알레시 시몽 벨의 ‘루이 15세에게 약혼녀의 초상화를 보여주는 큐피드’는 큐피드가 여섯 살의 스페인 공주 마리아나 빅토리아를 열네 살의 루이 15세에게 선보이고 있다. 혼인이 결정되면 서로 초상화를 주고 받았던 당시 왕실의 관습을 알게 해 준다. 루이 15세는 1725년에 이 작품 속의 마리아나 빅토리아 공주가 아닌 7살 연상의 폴란드 공주 마리 레슈친스카와 결혼하였다. 왕의 결혼은 보통 사람들의 결혼과 다르게 여러 가지를 고려해야 하는 중요한 국가적 결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장 바티스트 마리 피에르의 ‘포도 수확, 또는 바쿠스 신의 승리’는 프티 트리아농의 식당을 장식하기 위해 그려진 것인데, 술의 신 바쿠스와 포도주 발명 과정을 담고 있다. 이 작품은 루이 15세 시기의 프티 트리아농 장식화 중 유일하게 남은 작품이다. 프랑스 와인이 유명한데 이 그림을 보니 프랑스의 포도밭이 연상되었다.

전시장에는 거울의 방을 연출한 곳이 있는데 거울의 방은 길이가 73미터이고 총 357개의 거울로 장식된 아치 형태를 띠고 있는 17개의 대형 거울이 긴 회랑을 따라 각각의 창문과 마주하여 대칭을 이루고 있다. 연출된 거울의 방을 보면서 실제 거울의 방은 굉장히 화려할 것 같았다.

장 마르크 나티에의 ‘퐁트브로 수도원의 루이즈 공주’에는 안타까운 이야기가 있다. 루이 15세는 마리 레슈친스카와의 사이에서 여덟 명의 공주와 두 명의 왕자를 두었는데, 왕위 계승과 거리가 먼 공주들이 왕궁에 있어 왕실의 지출이 많아졌다. 그래서 제일 어린 네 명의 공주인 루이즈 공주와 다른 세 명의 공주들은 궁을 떠나 퐁트브로 수도원으로 보내졌다. 딸들을 그리워했지만 한 번도 만나러 가지 못했던 루이 15세는 왕비를 기쁘게 해 주기 위해 왕비 몰래 어린 공주의 초상화를 그리게 하여 이 작품이 만들어졌다. 이 작품 속의 루이즈 공주는 첫돌도 지나니 않아 언니들과 퐁트브로 수도원으로 갔는데 열두살이 되어서 부모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고 한다.공주 네 명이 왕궁에 있는데 많은 경비가 든다고 수도원으로 보내는 것이 이해하기 어려웠고 왕족으로서의 삶이 행복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장 마르크 나티에의 ‘마리 레슈친스카 왕비의 1748년 초상’에서 마리 레슈친스카 왕비는 왕실 대례복이 아닌 평범한 복장을 한 여인으로 수수한 모습이다. 이 초상화는 당시의 사람들에게 충격적이었다고 하는데 이러한 복장은 왕비의 요청에 의한 것이었다. 왕비임을 보여주는 것은 의자 위의 몇 송이의 백합 문양 뿐인데 궁중을 벗어나 조용한 곳에서 개인적인 시간을 갖고 싶어했던 마음을 드러낸 것이라고 한다.

장 마르크 나티에의 ‘루이 조제프 자비에 드 프랑스, 부르고뉴 공작’은 루이 15세의 손자였던 루이 조제프 자비에 드 프랑스를 그린 것이다. 남자 아이에게 7살이 될 때까지 여자 아이의 옷을 입혔던 관례에 따라 담비 털로 장식된 푸른 색 벨벳 드레스를 입고 있다. 아홉 살 때에 나무로 만든 장난감 말에서 떨어져 죽어서 왕위는 그의 동생 베리 공작이 계승하여 루이 16세가 되었다. 남자 아이에게 여자 아이의 옷을 입힌 재미있는 관례를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프랑스 왕실의 호화로움을 보여주는 식기세트가 전시되어 흥미로웠다. 베르세이유 궁은 세브르 왕립 제조소에서 장인들이 만든 신제품을 자기들을 구경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장소 중 하나였다. 전시된 도자기 세트는 뒤바리 부인의 식기 세트와 마리 앙트와네트 왕비가 직접 주문한 식기 세트이다. 하늘색 리본이 그려져 있는 뒤바리 부인의 식기 세트도 아름답지만 마리 앙트와네트 왕비의 식기 세트는 더욱 화려하고 아름답다. 마리 앙트와네트의 식기 세트는 아낌없이 사용한 금장식으로 더욱 화려한데 특히 진주를 좋아했던 마리 앙트와네트는 진주 모양으로 장식해 달라고 했으며 이 장식은 실제 진주모로 채색되었다.
 
루이 16세와 마리 앙트와네트의 위엄있고 화려한 초상화들을 보며 루이 14세에서 이어진 왕실의 권위를 보았다. 그러나 프랑스 혁명의 역사 속에 있는 루이 16세와 마리 앙트와네트를 곧 만나게 된다. 알리 피에르 당루의 ‘탕플 탑에 유폐된 루이 16세’ 작품 속의 루이 16세는 프랑스 혁명 중에 혁명군들에게 체포되어 사형을 선고받고 1792년 12월 25일 성탄절에 유언을 작성하고 있다. 공식 초상화 속의 루이 16세와 탕플 탑에서 유언을 작성하는 루이 16세를 보면서 프랑스 혁명의 역사적 장면을 보는 것 같았다. 찰스 베나제크의 ‘1793년 1월 20일, 가족들에게 작별을 고하는 루이 16세’는 1793년 1월 20일 사형 집행일 전날 밤 가족들에게 작별 인사를 할 시간을 허락받게 되었다. 이 순간을 왕의 시중을 들었던 클레리는 회고록에서 ‘왕이 가족들에게 작별을 고하고 떠나려 하는 순간 왕의 장녀인 마담 루아얄은 정신을 잃고 왕의 발치에 쓰러졌다.’고 묘사했는데 이 작품은 바로 그 순간을 보여준다. 베르사이유 궁을 떠나 비극적 운명을 맞은 루이 16세 가족의 슬픔을 보여주는 그림으로 프랑스 혁명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을 해 보게 하는 작품이었다.
 
전시의 마지막은 프티 트리아농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프티 트리아농은 원래 퐁파두르 부인을 위해 지어졌으나 그녀는 공사가 끝나기 전에 죽음을 맞았고, 그 후 루이 15세가 뒤바리 부인에게 주었다. 루이 16세가 1774년에 즉위하고 이 별궁을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주었다. 프티 트리아농에 있는 ‘왕비의 극장’은 왕실 일가나 그 주변 사람들이 직접 작은 연극과 같은 공연을 주최하고 즐길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베르사이유 궁의 왕립 오페라의 형태와 장식을 본 따 만들었으나 크기는 그보다 훨씬 작다. 앙투아네트 아셀리노의 작품 속에 있는 ‘왕비의 극장’은 극장 안에 하프가 놓여져 있는데 이 하프를 마리 앙트와네트가 연주하였을 것 같다. 이 극장에서 루이 16세와 앙트와네트 왕비는 가까운 사람들끼리 즐거운 시간을 보냈을 것이란 상상을 하며 ‘마리 앙트와네트 마을’ 전경을 살펴보고 전시장을 나왔다.


이번 전시를 통해서 그동안 알지 못했던 프랑스 왕실의 역사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리고 아름다운 궁전인 베르사이유 궁에 꼭 한 번 가 보고 싶어졌다.

이예은 나누리기자 (동학초등학교 / 6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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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경
신목중학교 / 1학년
2011-01-20 23:17:33
| 우와! 너무 길지만 추천 누를게요.
저도 거기 꼭 가보고 싶어요.
이정훈
서울도곡초등학교 / 5학년
2011-01-21 16:41:16
| 저도 봤는데 재밌었던 전시회 였어요. 세계사를 알고 보면 더 재밌는 전시회죠.
추천 하고 갑니다.
오하나
성남동중학교 / 1학년
2011-01-23 17:19:18
| 프랑스 왕실의 역사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겠네요^^ 꼼꼼하고 재밌는 기사 감사합니다. 기회가 된다면 꼭 가보고 싶네요~!
하헌우
대구동천초등학교 / 6학년
2011-01-24 10:19:54
| 정말 화려하고 아름다울 것 같아요!! 책으로만 봤는데.....이렇게 전시회를 통해서 만나면 프랑스를 직접 가보고 싶어 질 것 같습니다.
원유빈
선유중학교 / 1학년
2011-01-28 21:02:33
| 멋잇을 것 같아요. 다음에 한 번 가봐야 겠어요.
최희
청심국제중학교 / 1학년
2011-01-31 19:32:20
| 전시도감을 먼저 사서 읽었습니다. 표도 구해놨는데 미리 기사로 보니 도움이 많이 되었어요. 좋은 기사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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