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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호 6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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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영 나누리기자 (인천연안초등학교 / 6학년)

추천 : 86 / 조회수 :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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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에게서 잊혀진 여인, 그녀는 한 나라의 옹주였다.

작가 권비영은 이렇게 말했다.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이야기였습니다." 덕혜옹주는 1912년 2월 25일 덕수궁에서 고종의 막내딸로 태어났다. 이름이 없어 ‘마마’ 라고만 불리던 옹주는 1921년 히노데 소학교에 입학할 무렵, ‘덕혜’라는 호를 내려받았다. 1919년 고종이 승하하고 옹주가 꽃다운 15살이 되는 1925년, 그녀는 조선 땅에서 사라졌다. 일본 학습원으로 강제 연행된 것이다. 37년 동안 일본에 있는 동안, 옹주는 단 세번 밖에 조선에 오지 못했다. 순종황제의 병세가 악화되었을 때, 순종황제가 승하했을 때, 어머니(양 귀인)가 영면했을 때......

정말 어이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단지 식민지의 황족이라는 이유 때문에 고곡 땅에 돌아가지 못하고 수십년 동안 타국생활을 해야 했다니.

일본 학습원에서도 그녀는 왕따를 당했다. 그들은 그녀가 단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는 ‘조센징’ 이란 말까지 서슴없이 내뱉었다. 그녀를 골탕먹이기 위해 온갖 장난을 쳤다. 하지만 그녀가 아무 반응도 미동도 없자 결국 덕혜는 화장실에서 집단구타를 당했다. 덕혜의 시련은 끝나지 않았다. 1929년 늦은 봄, 양 귀인이 영면했다는 소식이 날아든 것이다. 그녀는 그 말을 듣는 즉시 쓰러졌고, 깨어난 후에도 흐느낌은 멈출 줄 몰랐다. 조선에 온 옹주는 전혀 기쁘지 않았다. 일본측에서는 양 귀인이 황족이 아니라며 상복마저 입지 못하게 했다. 정말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되는 억지이다. 부모가 죽었는데 자식이 상복을 입지 못하다니. 그건 대체 어느 나라에 있는 법인가? 상복을 입든 입지 않든 일본으로 가야 하고, 상복을 입어서 덕혜가 사라지는 것도 아닌데......

일본으로 돌아온 덕혜는 말을 하지 않았다. 밤에는 잠들지 못했고 음식을 입에 대지 않아 몹시수척해졌다. 그 무렵, 일본은 옹주의 결혼을 계획했고, 1931년 5월 덕혜를 대마도 백작 소 다케유키와 강제로 결혼시켰다. 결혼을 한 후에도 그녀는 그에게 끊임없이 저항했고, 절대 경계를 풀지 않았다. 그런데 그 무렵, 갑자기 그녀가 가장 의지하는 복순이가 사라졌다. 얼마 후 딸이 태어났고, 정혜(마사에)라고 이름지었다. 자라면서 완벽한 일본인이 되어가는 딸을 볼 때면 덕혜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정혜는 호기심이 많고, 활달하고 똑똑했지만 덕혜를 닮아 몸이 무척 약했다. 다케유키는 그런 딸을 볼 때마다 마치 덕혜를 탓하듯 그녀를 노려보았다. 정혜가 자라면서 둘의 사이는 점점 갈라졌다. 정혜를 조센징이라며 놀리기 때문이었다. 일본이 전쟁에서 패망하고 다케유키는 돈이 궁해졌다. 그는 어쩔 수 없이 저택을 팔고 하녀들을 모두 내보냈다. 결국 1956년 초여름, 덕혜마저 정신병원에 입원시키고, 그녀와 이혼했다. 정혜는 결혼 후 자살하겠다는 유서를 남기고 종적을 감추었다. 1962년 1월, 구국청년단이 덕혜를 탈출시키고, 병원 청소부로 들어와 있던 복순이 덕혜 대신 총에 맞아 죽는다. 꿈에 그리던 조선땅으로 돌아온 덕혜옹주는 1989년 4월 21일, 조용히 숨을 거뒀다.

덕혜옹주.

앞의 내용을 조금만 훑어봐도 전체 내용을 짐작 할 수 있었다. 이렇게 세밀하게 쓰느라 작가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열정을 얼마만큼 쏟아부었을지 짐작이 간다. 옹주의 성격은 책의 내용으로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아직 열 살도 채 안된 옹주는 고종이 독살당한 걸 정확히 알아챌 만큼 예리하고 날카로웠고, 학교 식수를 마시다 독살 당할 위험을 느껴, 보온병에 팔팔 끓인 물을 직접 감시하면서 담아간다. 일본 순사에게 끌려가던 아이를 구해주고, 그 앞을 막는 기마경찰들에게 물러서라고 말하는 걸 보면 또래 아이들 답지않게 대담하고 당당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아이를 구해준 후, 뒷일은 자신이 감당하겠노라고 하고, 자신을 보호하려다가 다친 유모의 상처를 직접 손수건으로 감싸주는 따뜻함과 섬세함도 갖추고 있는 아이였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대담하고 당차다고 해서 어리광을 부리지 않는 것도 아니었고, 모든 걸 다 알아채는 것도 아니었다. 여느 외동딸처럼 고종에게 업어달라고 어리광을 부리고, 어머니의 머리에 꽂혀있는 나비떨잠을 부러워 하기도 했다. 그리고 자신에게 아름이 없는 이유도 알지 못했다.

그런데 덕혜옹주에게 의문이 드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자신에게 아낄 것 없이 모두 내준 남자와 그냥 행복하게 살면 안되는 거였을까? 꼭 그렇게 자신의 인생과 남의 인생을 망쳐야만 했을까? 덕혜 나름 자신을 위해 노력한 것이었겠지만 이해가 안된다. 하지만, 그 어려움 속에서도 그녀가 평생 보여준 조국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 그리고 헌신은 정말 우리가 본받아야 할 자세 아닐까?

우리가 항상 외치는 나라사랑. 덕혜옹주에 비한다면 그저 속이 빈 껍데기에 지나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최윤영 나누리기자 (인천연안초등학교 / 6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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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현식
중부초등학교 / 5학년
2011-04-18 22:26:59
| 아~엄마가 보시던 책이네요.. 엄마가 재미있다고 하셨는데...저도 한번 일어봐야겠어요.
전인혜
대구대청초등학교 / 5학년
2011-05-03 19:07:10
| 저 이책 엄마가 좋아하셔서 읽어봤는데 덕혜옹주의 절실한 나라사랑을 알게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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