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예지 독자 (서울오륜초등학교 / 6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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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초등학교. 혜영이는 어느덧 **초에 다닌 지 6년이 지나 6학년이 되었다. 그런데 혜영이는 6년간 쭈욱 이 학교에 다녔는데도 불구하고 친구가 그다지 많지 않았다. 바로 혜영이의 소극적이고 조용한 성격 때문이었다. 이런 성격 때문에 친구들은 혜영이를 재미없는 아이로 여기고 잘 놀지 않았다. 하지만 혜영이는 불만 없이 여전히 평범하게 조용히 학교를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혜영이는 그 날도 학교에서 조용히 수업을 하고 있었지만 눈길은 영희에게 가 있었다. 영희는 정말 예쁜 아역 배우였고, 남자아이들은 물론이고 여자아이들까지 영희와 친하게 지내는 것을 최고의 영광으로 여기고 영희를 무척 좋아했다. 그도 그럴 것이 영희는 성격도 좋고 외모도 빼어나게 예쁜 편이었다. 그래서 늘 영희 곁에는 친구들이 바글바글했고, 혜영이는 언제나 영희와 친구가 되어 영희의 친구 일부를 자신의 친구로도 만들 수 있다는 상상을 하곤 했다. 그 때, 하늘이 갑자기 어두워지더니 먹구름이 ‘우르릉, 콰쾅!’ 하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천둥번개와 함께 소나기를 뿜기 시작했다. 친구들은 깜짝 놀라 비명을 지르며 걱정했다.
"어, 뭐야! 소나기잖아? 어떡해, 나 우산 안 가져 왔는데! 야, 너 우산 있어? 나랑 같이 쓰자!"
"이럴 줄 알았으면 갖고 올 걸! 미안, 나도 없어. 어쩌지?"
"어째 오늘 오슬오슬 춥고 하늘이 조금 어둡더만, 이럴 줄 알았어!"
하늘이 침침하고 평소보다 서늘하긴 했지만 별 의심하지 않던 친구들은 소나기를 예상치 못하고 모두 우산을 챙겨오지 못했던 것이었다. 혜영이도 우산이 없어서 걱정이 태산이었다. 혜영이는 더구나 친구들이 별로 없어서 우산이 있어도 안 빌려줄 아이들이 대다수여서 더욱 그랬다. 그런데 영희가 자신만만하게 우산을 꺼냈다. 영희는 촬영 중 갑자기 비가 올 때를 대비해 늘 들고 다닌다고 하였다. 그러자 아이들은 모두 영희에게 잘 보이려고 애를 쓰며 어떻게든 영희와 우산을 같이 쓰려고 하였다. 하지만 영희는 탐탁지 않는지 주위를 둘러보다 혜영이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뭐, 뭐야... 왜 나를 똑바로 쳐다보는거지? 이거 무서운걸? 혹시 나한테 할 말이 있나?’
혜영이가 손가락으로 자기를 가리키며 눈빛으로 묻자, 영희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그리고 마지막 교시 쉬는 시간, 혜영이에게 아이들 눈에 띄지 말고 아무도 없는 후문으로 오라고 했다.
‘뭐지? 날 왜 한적한 그 곳으로 부르는 거야? 더구나 나는 우산도 없어서 허겁지겁 뛰어서 가야하는데, 왜 나를 붙잡아 두려는거야?’
곧 수업이 끝나고, 약속대로 혜영이는 떨리는 마음으로 후문으로 갔다. 영희는 그 많은 인기를 어떻게 뿌리쳤는지 벌써 나와있었는데, 뜻밖에도 웃고 있었다. 혜영이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왜 자신을 불렀는지...
"영, 영희야, 나 불렀었지? 빨리 나왔네... 늦었다면 미안해."
"아니, 미안해할 필요 없어. 단지 너가 우산 없는 것 같아서..."
혜영이는 깜짝 놀랐다. 이 말을 꺼낸다는 것은 자신과 우산을 같이 쓰고 가겠다는 뜻인데... 어떻게 그 많은 친구 중에서 제일 소외당하는 자신을 고를 수 있단 말인가?
"영희야, 그 말은 나랑 우산을 같이 쓰고 가겠다는 뜻이니? 그것도 나랑?"
"뭐 어때, 우리는 친구잖아. 같은 반이고, 난 그 많은 아이들 중에서 내색은 못했지만 가장 사귀고 싶었던 건 너였어. 바로 너, 제일 소외당하고 제일 소극적이고 조용한 사람."
내가 친구? 혜영이가 지금까지 그렇게 따뜻한 말을 들어본 적은 거의 처음이었다. 그것도 자기 반 친구에게서. 혜영이는 조용히 뜨거운 눈물만 볼을 미끄럼틀 삼아 놀게 할 뿐이었다.
"혜영아, 너... 넌 참 좋은 애야. 그래서 널 고른 거구. 자, 집에 가자. 내 우산 쓰고..."
혜영이는 얼떨결에 영희의 그 빨간 우산을 같이 썼고, 영희의 눈치를 보느라 정신없었다. 그 순간, 영희가 조용히 혜영이의 손을 잡았다. 혜영이는 움찔했지만, 이내 자신도 영희의 손을 꼬옥 잡았다. 둘은 말없이 걸어가다가 혜영이의 집 앞에서 멈추었다.
"혜영아... 할 말이 있어."
"으응? 그래, 영희야 뭔데?"
"이 일, 우리가 할머니 되어서도, 내가 배우에서 퇴임한 뒤에도 절대 까먹지 말아줬으면 해."
"그러엄, 이 사건은 내가 영원히 잊지 못해. 영원........."
혜영이는 말을 끝내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영희는 그런 혜영이를 토닥여주고 혜영이에게 한마디 던져주었다.
"너는 참 좋은 친구야, 혜영아. 죽은 뒤에도, 마음에 남을 그런 친구..."
그리고 영희는 가버렸다. 하지만 그것이 영희를 본 마지막 기억이 되버렸다. 영희가 아예 학교를 끊어버리고 배우에만 충실하게 된 것이다. 가끔 텔레비전에서만 볼 수 있을 뿐이었다.
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 혜영이도 영희도 할머니가 되었을 지금, 둘은 그 때 그 일을 서로의 마음 속에 묻어두었다. 이제 기억은 가물가물해졌지만, 둘은 그 때의 그 빨간 우산을 잊지 못하고 있다. 혜영이와 영희에게 처음으로 진정한 선물을 준 영희의 가장 낡았던 그 빨간 우산을...
김예지 독자 (서울오륜초등학교 / 6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