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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호 1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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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훈 나누리기자 (덕소초등학교 / 6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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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역사 속의 명동성당과 추기경 할아버지와의 만남!

2010년 12월 15일, 푸른누리 기자들은 정진석 니콜라오 추기경님과의 만남을 가졌다. 유아세례를 받고 6학년에 올라온 직후까지 내 꿈은 신부(천주교 사제를 말함)가 되는 것이었다. 사제가 되어 추기경님이 되고, 더 크게 꿈을 키워 아시아 최초의 교황님이 되는 것이 내 꿈의 마무리였다. 추기경님이나 교황님이 어떤 일을 하시고, 어떻게 될 수 있는 지도 모르고 되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지금은 꿈이 바뀌었지만 그래도 내 꿈 속의 실제 인물이시기에 뵙고 사제에 대해, 추기경님에 대해, 교황님에 대해 여러 가지를 알아보고 싶어서 신청하게 된 취재다. 추기경님과의 만남을 통해 내 꿈을 다시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고 싶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사제이자 단 한 분이신 정진석 니콜라오 추기경님을 뵈러 가는 마음은 설렘과 기대로 꽉 찼다. 솔직하게 가톨릭 신자라 해도 쉽게 만날 수 없는 분이기 때문일 것이다. 추기경님과의 만남 전에 우리는 명동성당에서 성지순례를 하였다. 두 번째로 방문하는 명동성당은 여전히 크고 엄숙한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성당입구에는 벌써 성탄을 준비하는 구유(예수님이 태어나신 곳)가 예쁘게 만들어져 있었다.


명동성당 대성당 내부에서의 성지순례는 양경모(대건안드레아) 신부님께서 안내해 주시고 설명해 주셨다. 사제서품 받으신 지 1년차이신 신부님은 무척 잘 생기시고 키도 크셨다. 신부님 스스로 ‘쫄병 신부’라고 하셨다. 비록 내가 다니는 성당의 신부님은 아니시지만 우리 본당 신부님들처럼 다 인자하시고 다정하게 설명해 주셔서 편안했다. 

명동성당은 우리나라 최초의 성당으로 한국교회의 상징이라고 한다. 역사적으로는 한국 근대 건축사에서 규모가 가장 큰 첫 고딕 양식 견축물(사적 제258호)로 기록된 성당이다. 처음에는 함께 하느님에 대해 공부하고 연구하다가 명례방 종교집회에서 신앙공동체가 시작되었다. 그래서 명동지역을 명례방이라 불리기도 한다. 명동성당은 건축양식이 고딕양식을 사용했다. 이것은 인간의 마음이 하느님께로 좀 더 가까이 가고 싶은 마음이 더해져 뾰족하게 표현되었다고 한다.

 

성당에 들어가면 세 곳에 유리화(스테인드 글라스)가 있다. 이것은 옛날에는 글을 모르는 사람들이어서 스테인드 글라스에 성서내용과 로사리오의 현의를 담아 그림으로 표현해서 교리를 교육하는데 쓰였다고 한다. 제대 오른편엔 예수와 12사도, 제대 중앙엔 로사리오 기도 15단(그리스도와 마리아의 생애), 제대 왼편에는 성탄과 삼왕경배라는 유리화가 있었다. 무척 세밀하고 자세하게 그려져 있었다. 그저 놀랍기만 했다. 제대 오른쪽에는 세례를 위한 세두대 대리석과 건축가의 주보성인 성 베네딕토상이 있었다. 교구장석 강론대는 명동성당 건축을 완성한 프와넬 박 신부님의 고향에 있는 성당 강론대를 모방한 것이라 한다. 제대 왼편으로는 외국성의 모형을 축소하여 만들었다는 닫집이 있고, 그 옆에 1952년 설치했다는 75위 복자 제대와 복자 상본, 그리고 예수성심상이 있었다. 조선시대에는 나라에서 허락하지 않는 종교를 믿는다는 이유로 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죽임을 당했고, 그것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 복자화라고 한다. 복자는 성인이 되기 전, 남들의 모범이 되는 신자를 가리키는 말이라 한다. 유대철 베드로라는 분은 13살에 죽임을 당했다고 한다. 순간 내 마음이 복잡했다. 지금의 내 나이와 같기 때문이다. 이승훈 베드로는 우리나라에서 첫 번째로 세례를 받은 사람이라고 한다. 중간에 신자를 그만 두었지만 첫 번째 세례자라는 것만으로 의미가 있다고 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님은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으로 초기 천주교는 지도자들이 열심이셨다는 설명을 들으며 우리는 2층으로 올라갔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무척 좁고 나무로 되어 있었다. 아래서부터 원형으로 계속 이어진 독특한 계단이었다. 2층으로 통하는 출입구도 너무 좁아서 한 사람이 겨우 들어갈 수 있었다. 2층에는 성가대석이 있었다. 성가대가 아니면 들어올 수 없는 곳이라고 한다. 성가대 뒤에는 한국 최초로 설치되었다는 파이프 오르간이 있었다. 오르간은 악기의 왕이라고 한다. 벽에 부착되어 있는 것처럼 설치가 되어 있었다. 파이프 오르간은 관으로 바람을 공급해서 소리를 내게 하는데 패달을 이용하면 더 다양한 음색이 나온다고 한다. 명동성당에서 사용된 지 벌써 25년이 되었다고 한다. 정말 놀랍고 직접 바라보면서도 신기했다. 밖이나 외부는 서양식의 고딕양식이지만 내부는 한국 천주교를 상징하는 한국식의 건축물이기에 더 큰 의미가 있다는 양신부님의 말씀을 마지막으로 명동성당에서의 성지순례를 마쳤다.

 

100년 전에 이런 건축물이 지어졌다는 것에 놀라워 하며 우리는 자리를 이동했다. 우리를 반겨주신 분은 명동성당 여형구 미카엘 주임신부님(그 성당에서 가장 높은 어른 신부님)이셨다. 사제생활 39년차라고 소개하시며 따뜻하게 반겨주셨다. 무척 인자하시고 자비로워 보이셨다. 어린이 기자단을 위해 명동성당 모형을 만들 수 있는 재료를 선물로 주셨다. 그리고 천주교 신자인 어린이 기자들에게 추기경님의 묵주(천주교에서 기도할 때 사용)를 주셨다. 또 여자 기자들에겐 빨간 십자가가 매달려 있는 목걸이를 선물하셨다. 목걸이의 빨간색 십자가는 만명의 순교자를 의미한다고 하셨다. 추기경님과의 약속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여 미카엘 신부님과의 만남은 계속 할 수가 없었다. 여 미카엘 신부님께서는 공부를 열심히 해야 기자생활도 열심히 할 수 있다고 격려해주시며 손으로 하트를 그리며 기념촬영을 해주셨다. 어린이 기자들이 온다고 선물을 미리 준비해 두셨다는 여 미카엘 신부님의 따뜻한 마음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어린이 기자단은 교구청 건물로 추기경님을 뵈러 갔다. 추기경님은 우리 어린이 기자단 한 사람, 한 사람과 직접 악수를 해주시며 반겨 주셨다. 우리나라 최고의 사제이신 추기경님을 직접 뵐 수 있는 것이 믿기지 않기도 했지만 기분은 최고였다. 그래서 인터뷰도 열심히 임했다. 다음은 추기경님과의 인터뷰 내용이다.


1. 정진석 추기경님께서는 어릴 때 꿈이 무엇이었나요? 그리고 언제부터 종교를 갖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내가 어릴 때는 천주교 신자가 많이 없었다. 국민의 1%정도, 지금은 국민의 10%로 많아졌다.


2. 정진석 추기경님께서는 처음에 서울대 화공과에 입학하셨지만, 한국 전쟁때문에 학업을 중단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다시 학업을 시작하셨을 때, 같은 전공이 아닌 가톨릭 공부를 하시게 되셨나요?

- 사람의 생활을 편리하게 만들어주고자 발명가가 되려고 했다. 그러나 이러한 도구들이 오히려 전쟁무기가 되어 사람들이 목숨을 앗아가기도 했다. 하지만 처음 만들 때는 우리 생활에 필요한 것만 만들었을 것이다. 이렇듯 어떠한 물건이든 쓰는 사람의 마음가짐에 따라 무기도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발명가의 꿈을 접고, 신부가 되기로 했다.


3. 처음 사제 서품을 받으실 때, 그리고 추기경이 되었을 때의 감정은 어떠셨으며,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무엇인가요?

-사제서품 받을 때와 추기경이 되었을 때가 기억에 남는다. 사제는 하느님을 대신하여 사람들을 도와주는 사람이다. 그러나 나는 많이 부족한데 추기경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4. 추기경은 어떠한 일을 하나요? 가톨릭 추기경이 어떠한 존재이며, 무슨 일을 하는지 이를 잘 모르는 어린이들이들에게 쉽게 설명해주세요.

-교황님이 11억 명의 가톨릭 신자를 다 가르칠 수 없기 때문에 추기경이 도와드린다. 교황님의 보좌관이기도 하다. 교황님이 사망하시면 다음 교황을 뽑기 위해 선거에 참여한다. 교황님의 보호자이며 교황님의 질문에 답하는 사람이다.

 

5. 사제로서 그리고 추기경님으로 살아오시면서 힘들었던 순간이나, 사제직을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있으셨나요? 있다면 언제인가요?

-내가 도와주고 싶은데 능력이 되지 못해서 남을 도와주지 못할 때가 가장 힘들었다. 홍수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도와줄 때 다 도와주지 못해서 힘들었다.

 

6. 정진석 추기경님께서 가톨릭 신자로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실천정신은 무엇인지 알고 싶습니다.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서 성실하게 사는 것이다. 하루는 지나면 다시 돌아오지 않기 때문에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해서 성실하게 살아야 한다.


7. 성당에서는 죄를 지으면 고해성사를 보는데, 추기경님은 죄를 지으시면 누구에게 고해성사를 보나요?

-다른 추기경님이나 신부님들한테 본다.


8. 추기경님께서 지금까지 살아오시면서 인생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사람은 누구인가요? 또는 존경하는 분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많은 사람을 위해서 사랑을 베풀어 주는 사람이다. 사랑을 베풀어 주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니고 제일 좋은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가장 좋은 것, 시간을 나누어 주는 사람.(예:자원봉사자)

 

9. 성직자 생활을 하시면서 오지에서 많은 봉사도 하시고 사랑을 나눠주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추기경님께서 봉사하셨던 곳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어디였는지 알고 싶습니다.

-힘이 모자라서 많이 하지 못했다.


10. 2011년은 어떠한 해가 되었으면 하시는지 새해 소망을 말씀해주세요. 또한 추기경님으로서 어린이들에게 새해 인사 말씀도 부탁드립니다
.

-국민 모두가 각자 행복해지기를 빈다. 국민을 위해서, 큰 일을 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실력을 키우고 선을 베풀어라.


비록 짧은 시간의 만남이 아쉽기는 했지만 진심으로 반겨주시고 성심껏 인터뷰를 해주신 정진석 니콜라오 추기경님께 감사드린다. 다른 해와는 다른 의미를 담긴 성탄을 준비한 것 같아 마음이 뿌듯하고 설렜다. 날씨는 너무 춥고 날카로웠지만 추기경님과 여 미카엘, 양 신부님의 따뜻한 마음과 배려로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모두 건강하시고 한국 천주교회를 위해 더 많은 사랑을 실천해 주시기를 기도한다.

이동훈 나누리기자 (덕소초등학교 / 6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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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윤
세화여자중학교 / 1학년
2011-01-06 16:22:49
| 우와~ 정말 기사를 너무 잘 쓰신것 같아요, 제가 마치 그자리에 있었던것 같아요. 명동성당의 역사와 추기경님이 어떤 일을 하시는지 잘 알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전현환
대륜중학교 / 1학년
2011-01-12 22:35:23
| 저도 취재갔습니다.그때 정말 많고 좋은 지식들을 알았습니다. 또 가고 싶습니다.
마수현
덕소초등학교 / 6학년
2011-01-13 22:21:55
| 오우~ 실감이 나네요. 앞으로도 좋은 기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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