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문화재연구소 무형문화재연구실장 송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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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떡국 대신 밥과 국을 올리게 되면 탕, 국수, 나물 등을 함께 차리기도 합니다. 지금은 집집마다 사정이 달라서 떡국 차례상에 탕이나 나물을 차리는 집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을 예법(禮法 : 예의로써 지켜야 할 규범)에 ‘맞네, 어긋나네.’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남의 제사상에 감 놔라, 대추 놔라 하지 말라”는 말처럼 집집마다 전해 내려오는 예법이 달라서 “가가례(家家禮 : 각 집안에 따라 달리 행하는 예법, 풍속)”라고 하거든요.
설날 아침 여러분들이 설빔으로 갈아입고 나타날 즈음 부모님들께서는 차례상에 제물(祭物 : 제사에 쓰는 음식물)을 올리고 계실 겁니다. 어른들은 몇 가지 법칙을 가지고 차례상을 차리지요. 어른들 곁에 귀를 기울여 보세요. 혹 “홍동백서(紅東白西)”, “좌포우해(左脯右醢)”, “조율이시(棗栗梨枾)”라는 말이 들리지 않던가요? “홍동백서”란 붉은 과실은 동쪽에, 흰 과실은 서쪽에 놓는 일을 말합니다. 그리고 “좌포우해”는 왼쪽에 포, 오른쪽에 젓갈류를 놓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디가 동쪽이고 어디가 서쪽일까요? 차례상을 마주보고 서서 우리나라 지도를 상상해 보세요. 그렇다면 왼쪽은 서해바다가 있는 서쪽, 오른쪽은 동해바다가 있는 동쪽, 신위가 있는 쪽은 북쪽이 되겠지요? 그렇게 자기 자리를 찾아주는 겁니다.
우리 조상들은 과일 중 “조율이시” 즉, 대추ㆍ밤ㆍ배ㆍ감을 중요하게 생각하셨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여기에는 나무의 특성에 따른 재미난 이유가 있어요. 대추는 암수한몸으로 열매가 무척 많이 달립니다. 그래서 자손의 번창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대추를 놓습니다. 밤은 씨 밤에서 싹이 나와 꽤 자랄 때까지 씨 밤 껍질이 어린나무 뿌리에 계속 달라붙어 있기 때문에 자신의 근본[조상]을 잊지 말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감은 고욤나무에 감나무를 접붙여야 감을 딸 수 있는 것처럼 사람으로 태어났다고 다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배우고 가르침을 잘 받아야 비로소 사람다운 사람이 된다는 것을 상징한다고 해요.
또 씨앗수와 조선시대 관직(官職)을 빗대어 해석하는 경우도 있어요. 대추는 열매에 비해 큰 씨 한 개가 들어있어 임금을 상징하고, 밤은 밤송이 한 개에 밤톨 세 알이 들어있다고 해서 3정승을, 씨가 6개인 감은 6판서를, 배의 씨앗 8개는 8도 관찰사를 의미한다고도 합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조율이시” 말고도 돌아가신 어른들께서 생전에 맛나게 드셨던 과일들, 예를 들면 자두나 포도, 딸기, 바나나, 파인애플 등을 올리기도 합니다. 오랜 시간이 흘러 여러분들이 직접 차례를 지낼 때에는 어떤 음식들을 올리게 될까요? 저도 참 궁금하답니다.
이렇게 차례가 끝나면 온 가족이 세찬(歲饌 : 설에 차리는 음식. 이것으로 차례를 지내거나, 세배하러 온 사람들을 대접한다.)을 먹는데 대표적인 것이 떡국입니다. 흰 떡국에는 깨끗하고 정결한 마음으로 새해 첫 날을 준비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또, 떡국을 “첨세병(添歲餠)”이라고 해서 한 살 더 먹는 상징으로 여기기도 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나이 한 살 더 먹으려면 꼭 떡국을 드세요.
우리나라의 오랜 전통은 이렇듯이 세대에서 세대로 계속 이어져 오면서도 한편으로는 시대에 따라 변화하고 있답니다. 여러분들도 우리의 전통을 이어 나가는 멋진 주인공이 될 것입니다. 우리 친구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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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형문화재연구실장
송민선
국립문화재연구소 무형문화재연구실장 송민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