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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호 6월 2일

출동1-국립묘지봉사 추천 리스트 프린트

최예린 기자 (살레시오초등학교 / 5학년)

추천 : 32 / 조회수 : 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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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숙함과 경건함이 깃들어 있었던 국립5.18민주묘지 탐방

지금으로부터 31년 전인 1980년,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광주에서 민중항쟁운동이 벌어졌다. 이때, 민주주의를 위하여 뜻깊게 싸우다가 돌아가신 분들이 모셔져 있는 곳, 국립 5.18 민주묘지에 5월 27일 푸른누리 기자단이 출동했다. 이날 참가 기자들은 경건한 마음으로 참배와 견학을 하고 왔다.


이곳에는 현재로 사망자 4,463명이 등록되어 있고 이 가운데 사망자 165명 행방불명 66명 구속연행 및 상이자가 4,232명이나 된다고 한다. 또한 시신의 상태가 너무나도 참혹한 무연고자도 5명 이상 신고되어 있다.


푸른누리 기자들이 처음 지나간 곳은 국립 5.18 민주묘지의 홍살무늬 문이었다. 홍살무늬는 붉고 화살모양의 무늬로 되어 있어서 이곳을 통과할 때는 경건하고 엄숙한 마음으로 지나야 한다고 관리소장님께서 말씀해주셨다. 이때, 5.18민주화운동 때 싸우면서 불렀던 노래가 나오자 모두들 제법 긴장되고 경건해졌다.


이어 민중항쟁추모탑을 거쳤는데 이 탑은 높이가 약 40m나 되고 사람의 손의 모양으로 되어 있는데, 이는 희생자의 영명을 축위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추모탑에 윗부분에 있던 난형환조는 탑탑의 중앙부분에 감싸쥔 손 모양의 내부에 설치된 조형물로 5.18 정신의 부활을 상징한다고 한다. 불이의 문이라는 웅장한 문도 통과했는데 일종에 관문을 거치는 것 같았다. 이 문은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뜻한다.


유영봉안소에는 돌아가신 분들의 사진이 받들어 모셔져 있었다. 이 건물은 석기시대의 고인돌 형태대로 영정을 모셔놓았다. 여기서 소장님이 몇가지를 말씀해 주셨다. 사진대신 무궁화로 채워져 있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분들의 사진조차 만들 수 있는 형편이 되지 못하셨다고 한다. 또한 아예 자리가 비어있는 쪽도 있는데 그 이유는 17년 동안 폭도로 취급을 받자 형제, 아내 곁에 묻히고 싶었다고 한다. 누가 가장 훌륭하냐고 물어보면 이분들이 모두 훌륭하다고 대답하셨다.


비가 오는 관계로 예정보다 빨리 어린이 체험관에 갔다. 그 시절에는 머리길이도 제한했고 짧은 치마도 입지 못하고, 밤 12시가 넘으면 통행 금지를 시켰다고 한다. 또한 반공포스터도 많이 그렸다고 한다. 어린이 체험관에 있는 영상관에서 영상을 본 후에 소장님께 질문할 시간이 있어서 내가 힘껏 손을 들어 질문을 먼저 했다. 소장님께서는 기자와 관련된 일을 해보셨다며 우리에게 필요한 많은 정보도 주셨다.

Q1. 희생자라고 신고를 한사람의 숫자가 매년마다 조금씩 달라진다고 하셨습니다. 바로 인정하지는 않았을 텐데 어떤 과정을 거쳐서 확인하나요?

A. 그 당시 살아있던 분들은 사람들이 죽고 부상을 입는 등 모든 슬픈 광경을 보고 느꼈기 때문에 모두 희생자라고 할 수 있어요. 하지만 눈에 띄게 사망을 하거나 구속이 되어 있는 경우 이곳에 등록이 되어 있어요. 하지만 부상을 당한 정도가 애매해서 장애등급이 나와있지 않았는데 그 다음해에 나와있을 때가 있어요. 때문에 정확하게 규정짓기 헷갈려서 지금 현재 광주에 심사권을 두고 확인하고 있어요.


Q2. 어린이 희생자도 있었나요?

A. 물론 그렇지요. 최고령이 73세이고 최저령이 7세입니다.


Q3. 그 당시 모든 군인들이 시민들을 죽이고 싶었을까요?

A. 군인이 시민이나 학생들에게 발포를 했는데 그 군인의 총지휘관의 명령에 따른 일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습니다.


Q4. 대표적으로 왜 광주 사람들만 심했고 유명해진 까닭이 무엇인가요?

A. 여러분이 취재를 오는 전날 새벽 1시에 5.18 기록물을 문화유산으로 등록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는 소식이 뉴스에 나왔어요. 그 자료를 바탕으로 말씀드리자면, 1980년 그 당시에 5.17 계엄령이 발령됐어요. 도지사나 국회의원들이 행정을 할 때 계엄사령부의 지시를 받아야 하는데 전국 도시에서 집회가 시작 됐어요. 도청광장으로 갈 때 진압방식이 다른 지역과 달리 너무 심해서 가열적으로 일어났지요. 또한 집회의 자유가 박탈 됐는데 해산명령을 했지만 감정 때문에 말을 듣지 않았어요.


소장님은 비가 오는 관계로 봉사활동 대신 5.18전시관을 관람하게 해주셨다. 영상과 곁들여져 그 상황이 얼마나 참혹했는지 짐작이 갔다. 관람을 끝내고도 머리를 한방 맞은 것 같은 그런 멍한 느낌이 들었다. 유공자들이 없었다면 지금까지도 독재정권에 시달려 민주주의를 찾기 위해 힘들었을 텐데.. 감사함을 되새겨준 날이었다.

최예린 기자 (살레시오초등학교 / 5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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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희
일동초등학교 / 5학년
2011-06-02 21:32:31
| 최예림 기자님 정말 훌륭한 곳에 다녀오셨네요^^
기사도 정말 잘 쓰시네요^^
많이 배우고 추천도 하고 갑니다.
정은교
서울창도초등학교 / 5학년
2011-06-03 21:31:26
| 기사를 정말 잘 쓰셨어요. 그리고 좋은 정보 얻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서효정
인천구산초등학교 / 5학년
2011-06-09 13:47:04
| 수고하셨고 좋은 글 정말 잘 읽었습니다.
김혜진
유덕중학교 / 1학년
2011-06-09 15:44:49
| 다녀오신 모든 분들 수고 많으셨고 한 번 다녀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조예원
당산중학교 / 1학년
2011-06-14 17:01:56
|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하신 분들에 명복을 빕니다.이제는 정말 모두 사랑하고 배려하는 마음속에서 민주주의가 이루어졌으면 좋겠어요.비오는 날씨에 고생많으셨네요.수고하셨습니다.^^
김세경
서울백석중학교 / 1학년
2011-06-15 23:36:22
| 최예린기자님 큰 뜻을 받들고 감사의 마음을 가질 수 있었던 엄숙함과 경건함이 깃들어 있었던 국립5.18민주묘지-탐방 기사 잘 읽었습니다. 취재하기 힘든 날씨에 고생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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