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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호 8월 18일

문화속으로 추천 리스트 프린트

이진은 기자 (인천효성초등학교 / 5학년)

추천 : 27 / 조회수 : 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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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에 다녀와서

방학을 맞이하여 강화도의 여행을 하게 되었다. 이번에도 예전과 같이 즐겁게 나설 생각이었다. 그 전에 고향이 강화도인 옆집아저씨와 강화도에 대해서 대화를 나누었다. 아저씨께서는 강화도의 내력과 전쟁사에 휩싸인 삶을 말씀해 주셨다. 순간 나는 여행이란 느낌이 없어지고 전쟁에 대해서 생각하며 다녀오게 되었다.


가) 초지진 : 조선은 예로부터 외침을 많이 받았다. 그리하여 수도인 한양이 뚫리면 조선은 풍전등화의 위기에 놓이게 된다. (풍전등화란 바람 앞에 촛불처럼 위태로운 상태를 말한다.) 수도인 한양을 정복 하려면 한강을 타고 올라가야 하는데 이 때 한강의 길목에 있는 것이 강화도인 것이다. 그리하여 강화도는 온갖 역사의 평지풍파를 다 겪어 우리나라의 지붕 없는 박물관으로 불리게 된 것이다. 강화도에는 나라를 방어하기 위한 여러 시설이 많이 있는데 이 방어시설이 바로 5진7보53돈대이다. 여기서 진은 지금의 1사단이고 보는 중대 그리고 돈대는 소대개념이다.(사실 지금의 초지진은 초지진이 아니라 그 옆의 초지 돈대이다. 실제 초지진은 신미양요 때 파괴되었다.)그래서 이 초지진으로 조선 사람들의 국방 의식과 자주 의지를 알아 볼 수 있다.(신미양요때는 이곳에서 큰 전 투가 벌어졌는데 그 전투로 초지진 바로 앞에 있는 염하강이 피로 붉게 물들었다고 한다.)


나) 광성보 : 신미양요때 미국과 우리군의 격전이 있었던 곳이다. 광성보는 강화해협을 지키는 중요한 요새로 고려가 몽골의 침략에 대항하기 위해 강화로 천도한 후에 돌과 흙을 섞어 해헙을 따라 길게 쌓은 성이다. 고려의 외성을 보수하여 쌓은 광성보는 1871년 신미양요 때 가장 치열했던 격전지이다.


다) 광성돈대 ; 돈대란 주변 관측이 용이하도록 평지보다 높은 평평한 땅에 설치한 소규모 군사 기지로 광성돈대는 광성보에 딸린 원형의 돈대로 돈 안에는 당시에 사용했던 대포, 소포, 불랑기가 복원되어 있고, 그 주변으로 성축을 쌓았다. 신미양요 때 파괴되었다가 1977년에 복원하였다.


라) 신미순의총 : 지금에는 광성보 대신 신미순의총이 남아있다. 신미순의총에는 51명의 사졸들이 모셔져 있다. 우리나라는 조준이 되지 않는 포로 700m가 최대 거리였다. 또 포가 터지지 않는 경우도 많고 외국의 철선에 포가 맞았다 해도 튕겨져 다시 우리 쪽으로 돌아와 우리에게 피해를 주었다고 한다. 병사들은 열악한 무기에도 열심히 싸웠고 싸움에 져서 포로가 된 분들도 포로가 되느니 죽는 것이 낫다는 정신으로 갑판에서 뛰어내렸다고 한다. 묘는 1봉분에 7-8명씩 안장했다. 어재연 장군은 상투를 자주색으로 묶어 시체를 알아 볼 수 있었고, 어재연 장군의 동생 어재순은 버선을 뒤집어 신어서 신원을 알 수 있었다고 한다. 우리도 그 정신을 호국 보훈의 마음으로 이어받아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다. 예를 들면 국가 기념일에는 그 뜻과 의미를 정확히 알고 참여하고 태극기를 게양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그리고 역사에 대해 바로 아는 것이다.


마) 쌍충비각 : 쌍충비각은 신미양요 때 광성보 전투에서 순직한 어재연과 동생 어재순의 충절을 기리기 어씨 문중에서 세운 비이다. 미국의 신무기에 패 할 것을 알면서도 뻔히 죽을 것을 알면서도 싸움을 하신 선조들의 마음을 알 것 같다. 우리나라가 충신들에 의해 오늘날까지 유지되었다는 생각할 때 마음에 비장한 각오를 하게 되었다. 나도 나라에 꼭 필요한 사람으로 성장해야겠다.


바) 손돌목 돈대 : 손돌목 돈대는 용두돈대에 못 미쳐 정상에 둥그렇게 쌓은 돈대이다. 강화 일대가 훤희 내려다보이는 중요한 곳이다. 손돌은 고려시대의 뱃사공인데, 몽고가 침입하여 고려왕이 강화도로 피난할 때 손돌의 배를 타게 되었다. 그 당시 손돌이 강화의 물길을 잘 아는 사람으로 선택되었다. 물길이 좁아 앞이 보이지 않고 세찬 물살에 배가 심하게 요동치자, 왕은 자신을 죽이려는 줄 알고 손돌의 목을 베라고 명령하였다. 그러자 손돌은 물 위에 작은 바가지를 띄우고 그 바가지를 따라가면 강화도에 무사히 도착할 것이라고 말한 뒤 죽음을 받아들였다. 그 바가지는 점점 물살이 센 곳으로 가더니 마침내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한 왕은 자신이 경솔하였음을 깨닫고 후하게 장사를 치른 뒤 사당을 세워 억울하게 죽은 손돌의 넋을 위로한다고 안내 선생님께서 말씀해 주셨다. 손돌이라는 사람은 정말 나라를 위하고 충성심이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죽으면서 까지도 위급한 나라의 임금님의 목숨을 살리고자 자기의 목숨을 버리는 훌륭한 사람이다. 뱃사공이라도 나라를 위해 충성을 할 수 있다는 마음에 작은 일이라도 최선을 다해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사) 용두돈대 : 강화해협을 따라 용머리처럼 돌출한 자연 암반위에 설치된 천연 돈대이다. 병인양요와 신미양요때 치열한 초격전이 펼쳐졌던 곳이라고 말씀해 주셨다. 지도의 위치만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용두돈대는 중요한 임무와 책임이 있었을 것이다. 용두돈대로 가는 길은 바닷바람과 산바람이 어우러져 더웠던 몸이 상쾌하게 씻어지는 것 같았다. 참 아름다운 길이다. 한쪽은 산이, 다른 쪽은 바다가 있다. 이곳에서는 쓰라린 전쟁터였는데 나는 날씨가 덥고 시원한 바람이 상쾌하게 느껴지는것이 죄송하기도 하며 쑥스러웠다.


강화도야 말로 진정한 격전지란 것을 알았다. 우리가 평소에 자주 드나들고 많이 들었던 강화도지만 이 강화도가 우리나라 역사의 축소판인 것은 몰랐다. 정말 우리가 가깝게 접했던 섬인데 그 격전지였던 곳을 다녀오니 강화도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강화의 역사를 알고 나니 강화도는 다름아닌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진은 기자 (인천효성초등학교 / 5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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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지
이매초등학교 / 5학년
2011-08-18 17:52:29
| 저도 강화도 여행을 자주 갔었는데, 이진은 기자님이 제가 가보지 못하고 남겨둔 곳을 주로 다녀오셨네요. 덕분에 많이 배웠습니다. 감사합니다~
유은빈
호성중학교 / 1학년
2011-08-23 20:50:07
| 저도 석모도에 자주 가는데 지붕없는 박물관은 한번도 못 가봤어요.
조용우
부산감천초등학교 / 5학년
2011-08-24 15:19:14
| 저는 아직 강화도에 못 가봤어요..기사를 읽으면서 꼭 한번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기사 잘 읽었습니다.
위청비
순천북초등학교 / 6학년
2011-08-31 12:21:33
| 이진은 기자님 저는 강화도를 가지 못했어요. 기사를 읽으니 꼭 가고 싶어요.^^기사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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