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리아 기자 (서울길음초등학교 / 5학년)
추천 : 91 / 조회수 : 907
“자주 보는 구나.”
“아, 할머니.”
“근데, 그거 혹시 코피 자국이냐?”
“아, 아니에요.”
영수가 분명히 화장실에서 코피 자국을 닦아냈는데도 할머니 눈에는 보이는 모양이에요. 영수는 손으로 코 주변을 슬쩍 가렸지요.
“가릴 것 없다. 나한테는 아무 것도 숨길게 없어. 그나저나 말이다.”
“네?”
“내일 체육시간에 아마 시험을 보겠지?”
“시험요, 그런 말 안들었는데요.”
“아니야. 내일 너는 분명 시험을 볼 거야. 혹시 그거 백점 맞고 싶지 않니?”
“백점요?”
“뭐 백점일수도 있고, 매우 잘함일 수도 있고, A+일수도 있겠지. 어떠냐?”
“하지만 그러면 또 누군가 다쳐야 되잖아요.”
“보기보다 정말 한심한 아이구나. 어차피 널 괴롭히는 애들이 다칠 텐데, 뭘 그리 걱정이냐? 싫음 말거라.”
할머니는 몸을 휙 돌렸지요. 그때였어요. 영수의 머리에는 온통 자기를 괴롭히는 번태의 모습으로 가득 찼지요. 더 이상 영수는 번태한테 당하고 싶지 않았어요. 번태한테 복수를 하고 싶었어요.
“저, 할머니.”
“왜 불렀냐? 가려는데.”
“저, 백점 맞을래요. 백점요.”
“그래, 잘 생각했다. 그런데 말이다. 내가 물었을 때 바로 대답하지 않았었지. 그래서 이번에는 좀 세질 거야.”
“뭐가요?”
“음음. 알고 있지 않냐. 네가 더 잘 알거 아니야. 네가 미워하는 그 누구 말이다. 음음.”
“괜찮아요. 그딴 녀석 괜찮다고요.”
“그래, 그래야지. 그게 사내야. 당하고 살면 안 된다. 흐음음.”
할머니는 뭐가 그리 기분 좋은지 웃으며 다시 돌아서 갔지요. 영수는 불현듯 겁이 났어요. 하지만 될 때로 되라는 마음이었죠. 어차피 잘못은 번태에게 있으니까요. 다음날 학교에 갑자기 담임선생님이 오전에 회의가 잡혀서 늦게 오시기 때문에 체육선생님이 대신 1, 2교시 수업을 맡는다는 소식이 전해졌어요. 생각지도 않게 체육시간이 생긴 거예요.
“자, 다음 주에 보려고 했던 건데 그냥 오늘 골대에 공 넣기 시험 보도록 하자.”
“에이, 선생님, 연습 더 하고 시험 봐야죠.”
“그러게 평소에 연습 좀 해두지 그랬냐. 자 다들 번호순대로 서서 짝 맞춰 앞으로 나와.”
체육선생님은 아이들의 투덜거림은 신경도 쓰지 않고 공 넣기 수행평가를 시작했어요. 영수는 속이 두근거렸어요. 운동신경이 별로 없는 영수였으니까요. 걱정 때문에 백점빵 할머니 이야기는 아예 잊어먹고 말았죠. 마침내 영수의 차례, 영수는 평소 때처럼 힘없이 농구공을 던졌어요.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죠. 영수가 던진 공이 아주 정확하게 골대로 깨끗하게 들어간 거예요. 아이들의 환호성이 쏟아졌죠.
“오, 영수 대단한데. A++."
영수는 그제서야 백점빵 할머니의 말을 떠올렸어요. 그다음은 바로 번태의 차례였죠. 번태는 운동이라면 학교에서 제일가는 아이였으니 농구골대에 공 넣기 정도는 식은 죽 먹기였죠. 그런데 번태가 폼을 잡고 공을 던지려는 순간 아주 빠른 뭔가가 날아왔어요. 야구공이었죠. 번태는 그대로 쓰러졌죠. 공이 정확히 영수의 머리를 맞추고 말았던 거예요. 모두가 난리가 났죠. 체육선생님도 어쩔 줄 몰라 했지요.
대체 어디서 날아온 공인지도 알 수 없었어요. 운동장에는 영수네 반 아이들 말고는 아무도 없었으니까요. 운동장에 그대로 쓰러진 영수는 꼼짝도 하지 않은 채 마치 죽은 사람처럼 누워만 있었죠. 영수는 그때 백점빵 할머니의 말을 다시 떠올렸죠.
“이번에는 좀 세질 거야.”
그때서야 영수는 할머니의 말을 정확히 알 수 있었어요.
-다음 편에 계속 됩니다.
최리아 기자 (서울길음초등학교 / 5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