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희 기자 (Burnside Primary School / 5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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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은 2010년 12월 25,26일자 뉴질랜드 신문 ‘The Press’ 의 첫 면이다. 이 기사는 이 사진에 나온 분들을 2010년의 영웅들로 뽑고 있다. 이 사진에 있는 분들은 크라이스트처치 시장, 그레이마우스 시장, 올블랙 국가 대표 럭비선수, 지진 위로 공연 기획자, 자신의 아들을 죽게한 사람를 용서한 엄마, 그리고 한 분, 사진중 제일 크게 나오고 환하게 웃으시는 동양인, 이 분이 바로 우리 아빠다.
우리 아빠 성함은 정신기, 이곳 뉴질랜드에선 ‘다니엘 정(Daniel Chung)’으로 불러진다. 아빠는 18년전에 이곳 뉴질랜드에 홀로 이민을 오셨다. 그리고 일 년정도 계시다가 한국에서 뉴질랜드로 떠나오시기전 한 번 만났던 엄마와 한국에서 결혼을 하셨다. 그리고 엄마도 아빠를 따라 이곳으로 이민을 오셔서 오빠 세 명과 저를 낳으셔서, 우리 가족은 모두 6 명이다.
아빠께서는 공부도 더 하고 싶고 색다른 나라에서 한 번 살아보고 싶은 마음에 오셨다고 하신다. 그러나 공부도 중요하였지만 하나 둘 식구가 늘어나니까 가족들 돌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 생각하시고 한국에서의 경력과 전공으로 취직을 하실려고 했지만 잘 되지 않아 택시 운전을 시작하셨다. 시작하신지 벌써 12년이 되었다고 하신다.
3년 몇 개월전, 택시 운전을 하던 중 어떤 공원을 지나갈 때 보기에 불쌍히 보이는 분들이 힘없이 계시는 것을 여러 번 보고, 또 듣기에 겨울에 추워서 공원에서 죽은 분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되어 아빠께서는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아빠가 불쌍한 사람들에게 관심을 보인 것은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의 영향이다. 16-17년 전부터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연세가 많으신데도 경상북도 청도 산골에 있는 한센병 환자들이 계시는 곳에서 그분들과 생활하고 계신다. 지금은 할아버지께선 하늘 나라에 가셨지만, 생명 다할 때까지 그 분들을 섬기겠다는 사랑으로 할머니께서는 지금도 연세가 팔순(80세)이지만 그분들과 함께 지내면서 전도사로서 생활하며 남은 여생을 남을 위하여 섬기는 삶을 살고 계신다. 이렇듯 다른 사람과 함께하는 삶을 아름답게 여기었던 우리 아빠도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의 아들답게 살고 싶었던 것이다.
3년 몇 개월전 어느 일요일 점심, 조그마한 나무판에 ‘Free Meal’ 이라는 글을 새겨 햄버그 몇 개를 가지고 그 공원으로 갔는데 어떤 한분이 다가 오셔서 먹고 싶다고 하셔서 드렸던 것으로 시작하셨다. 그 분이 지금은 이 활동에 많은 협조를 하고 계신다. 지금은 거의 100 명 정도 오신다. 대부분 집이 없이 사시는 분들이다. 아빠께서는 그 분들이 너무 불쌍하시다고 하시면서 우리도 돈이 많거나 부자가 아니지만 조금더 열심히 일해서 그분들이 배고프지 않도록 하고 싶다고 하셨다. 아빠는 2009년까지 5년동안 이 곳 교도소에도 가셔서 봉사활동을 열심히 하여 뉴질랜드 정부 교정부로부터 봉사자 상도 받으셨다. 이 봉사활동도 2년정도는 집없는 분들께 대접하는 것과 같이 하셨다 그러나 사람 수가 많아저 교도소 봉사활동은 잠시 쉬기로 하셨다. 택시 하시는 일도 아빠는 일요일 빼고는 거의 매일 우리가 잠에서 일어나기 전에 일을 하시러 가신다 그리고 밤 늦게야 집으로 오신다. 어린 내가 봐도 아빠는 일을 너무 많이 하시는 것 같다.
처음은 몇 명으로 시작 됐지만 지금은 약 100명되는 분들을 대접하는데 이젠 우리 식구만 준비하는 것이 아니고 한국 교민들, 이 곳 사람들 그리고 다른 나라 사람들도 후원금으로, 음식으로 시간으로 음악으로 많은 도움을 주고 계신다.
이 활동을 목격한 지역 텔레비젼 방송사에서 방송을 하게 되었고, 얼마 있지 않아 전국 방송사인 TV3에서 바로 저녁 뉴스뒤에 진행되는 ‘캠벨 라이브(Campbell Live)’ 프로그램에서 방송을 했다. 그리고 이곳 신문인 ‘The Press’지에서 2010년 5월 10일자 제1면에 톱 기사로 아빠께서 봉사하시는 일들을 소개했다. 그 기사엔 우리 아빠를 ‘한국인 사마리아인’이라고 말했다. 그 뿐만 아니라 연일 4일 동안 아빠의 기사가 그 신문에 기사로 실렸다. 또 크라이스트처치 시장께서 우리 가족을 시의회 회의장에 초청하여 꽃다발과 금일봉($1,000)을 주셨다. 아빠께서는 그 돈도 맥도날드 상품권으로 바꾸어 그 다음 주 공원에서 그 분들께 모두 드리고 도리어 그 돈이 모자라, 돈을 보태어서 모든 사람들이 빠짐없이 갖게 했다. 신문 기사들을 보고 많은 분들이 격려해 주시고 도움을 주셨다. 뉴질랜드 이땅에서 한국인의 사기를 높혔다고 많은 분들이 정말 고맙다는 글들과 인사를 해 주셨다. 이곳 한인회에서도 감사장까지 주셨다.
그 뿐만 아니라 이곳에 작년 9월 4일 규모 7.1이라는 큰 지진이 발생했는데 사망자는 없었지만 많은 집들과 큰 건물들이 부서졌다. 그래서 시내가 군데 군데 차단되면서 갑작스럽게 당한 지진때문에 식사를 할 수 없는 분들도 오셔서 드시고는 감사하다고 라디오 방송에서도 아빠가 소개 되었다. 또 지난해에 한국방송통신공사(KBS)의 ‘월드 한넷트’라는 프로그램에 아빠의 활동이 소개된 적도 있다.
이 사진이 연말 특집 2010년 12월 25,26일자 ‘The Press"의 제 1 면 2010년의 영웅들이다. 나는 이 분들중 우리 아빠가 제일 멋있어 보였다. 많은 한국분들은 참 뉴질랜드 멋있다고 했다. 왜냐하면 그 무엇보다도 선한 일 한 사람을 또 동양인 얼굴을 가진 한국인을 제일 큰 사진으로 나오게 한데 대하여 정말 기분 좋다고 하셨다. 이젠 어디를 가던지 이 곳 사람들도 웬만큼 아빠를 알아 볼 정도로 되었다. 이 곳분들도 아빠를 만나면 우리가 못한 아름다운 일을 용기있게 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말씀하시곤 한다.
우리 가족의 일요일은 정말 바쁘다. 모두 일찍 일어나 토요일 시장 봐 놓았던 채소 , 소세지, 감자등을 가지고 음식을 만들어 따뜻한 마일로와 함께 약속된 정오 12시에 공원으로 가서 그 분들께 대접을 하고 바로 교회에 예배드리려 간다. 지금은 우리 식구만 오는 것이 아니라 교회 가족들, 여기 사람들께서 요리도 직접 해 오시고 어떤분들은 과일로 케익으로 주스로 베풀고 계신다. 나는 우리 아빠가 정말로 자랑스럽다. 나도 아름답게 섬기는 사람으로 자라고 싶다.
정주희 기자 (Burnside Primary School / 5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