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준표 독자 (서울원명초등학교 / 6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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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에도 도서관이 있듯이, 옛날에도 왕실 도서관이 있었다. 그 이름은 규장각. 역대 군주의 친필, 저술, 인장, 초상화, 왕실족보 등을 보관했다. 조선시대 제22대 왕 정조가 1776년에 즉위하면서 규장각이 만들어졌다. 문신들이 학문을 연구하여 왕의 자문에 응하고, 국정운영의 참고자료인 각종 서적을 수집, 출판하는 왕실 도서관인 규장각이 학술기관으로까지 발전하였다. 이렇게 찬란했던 규장각, 지금은 어떤 모습일까? 잘 보존되고 있을까?
백문이 불여일견, 2010년 8월 26일 규장각에 한번 가 보았다.
규장각은 현재 서울대학교 안에 위치해 있다. 기백이 넘치는 숙종대왕 어필 현판이 한 눈에 들어왔다. 입구에는 큰 바위돌에 한자로 규장각이라고 새겨져 있었다. 정식명칭인 규장각한국학연구원은 230여 년의 전통을 이어온 규장각 자료에 서울대학교의 연구역량을 더해 종합적인 한국학 연구중심기관이 되어 있었다.
지금은 규장각 소장 자료의 보존 관리와 연구, 출판, 전시, 교육, 보급, 국제교류 등의 사업에 사력을 다하고 있고, 이번에는 ‘100년 전의 기억, 대한제국’이라는 이름의 전시회를 하고 있다. 국립고궁박물관과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공동주최 특별전이고, 강제병합 100년을 맞아 열린 전시회이다. 을사늑약, 병합늑약, 헤이그 특사를 보내면서 쓴 편지 등 많은 자료들이 있었다. 100년전의 아픈 역사를 보니 고종황제의 눈물이 보이는 듯 했다. 다시는 이런 슬픈 역사를 만들지 않아야겠다는 결심을 해 보았다.
책들은 지상 1층과 지하 1층에 보관하고 있었다. 아주 오래된 귀중한 책들은 마이크로필름으로만 볼 수 있었고, 열람할 수 있는 책들도 보존에 만전을 기하기 위해 모두 하얀 장갑을 끼고 봐야 했다. 지하 1층에는 김정호의 대동여지도가 실제 크기(세로 6.7미터 가로 3.3미터로 목판본 22첩)로 걸려 있었다. 근사했다. 교과서에는 축소되어 있어서 그렇게 큰지 몰랐다.
미리 약속된 강문식 학예연구사님과 짧은 인터뷰를 가졌다.
기자 : 규장각은 어떤 곳인가요?
강문식 학예연구사 : 1776년 정조대왕이 왕으로 즉위하신 후 학문연구를 위해 규장각을 만들도록 지시하였고, 거기서 정치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연구를 하도록 했습니다.
기자 : 규장각에는 총 몇 권의 책이 소장되어 있고 어떤 종류의 책이 있나요?
강문식 학예연구사 : 규장각에는 정조 때 만들어진 것부터 17만5천여점의 고도서, 관청 등의 행정관련 고문서 5만여점과 기타 자료를 포함하여 총 24만점의 자료가 보관되어 있어서 규장각은 한국의 역사나 문화와 관련된 자료를 가장 많이 가지고 있답니다.
기자 : 그 중에서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으로 지정된 책은 몇 권인가요?
강문식 학예연구사 : 규장각에 총 3점이 있어요.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조선왕조 의궤랍니다. 그리고 준표학생 알아요? 우리나라의 세계 기록 유산은 총 7개예요. 직지심체요절, 훈민정음, 팔만대장경, 동의보감,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조선왕조의궤이지요.
기자 : 규장각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는 어디에 있었으며, 언제 서울대 안으로 오게 되었나요?
강문식 학예연구사 : 규장각은 처음 창덕궁 안 후원의 주합루 건물에 있었고, 그 주변 일대에 책을 보관하는 건물이 있었고, 관원들은 임금님 직무실 가까운데서 근무하였답니다. 조선말까지 창덕궁에 있다가 고종때 경복궁으로 옮겨졌고, 역사사고가 지방에 4곳 있었는데 일본인이 모두 서울로 가져와 통합했어요. 그리고 조선총독부에서 관리하다가 경성제국으로 책을 옮겼고 1945년 해방 후 모든 책을 서울대학교로 옮겼답니다.
기자 : 학예사란 어떤 일을 하는것이지요 ?
강문식 학예연구사 : 학예사 또는 학예연구사라고 하는데, 박물관에서 근무하는 사람으로 유물 연구, 전시회 기획 등의 일을 합니다. 규장각은 유물이 책이지요. 그래서 책을 연구하고 전시도 한답니다. 그리고 이 곳에는 시험을 봐서 들어왔어요.
기자 : 외규장각이라는 말을 많이 들어봤는데요. 무엇인가요 ?
강문식 학예연구사 : 외규장각이란 왕실의 물품과 서적을 보관한 규장각의 별관이에요. 1782년 정조 때 강화도에 만들어졌어요. 그때 당시에 강화도는 군사적으로 가장 안전한 곳이라고 생각했다는군요. 총 6,000권 정도가 있었고요. 그러나 병인양요 때 프랑스가 강화도에 침입했을 때 거의 불탔습니다. 그 중 의궤는 프랑스인이 가져갔는데 현재는 파리국립도서관에 보관되어 있어요. 의궤는 조선시대 행사의 보고서인데 똑같은 책을 7-8권 만든답니다. 그 중 임금님이 보는 책은 비단으로 만들어 가장 화려했는데 프랑스인들이 그걸 가져간거죠. 그런데 1975년 파리국립도서관에서 근무하던 박병선 박사가 처음 발견해서 알려졌고 현재 반환을 협상하고 있는데 그다지 잘 되고 있지는 않답니다.
인터뷰를 마친 후, 강문식 학예연구사님께서 집필하신 ‘규장각’ 이라는 제목의 책을 주셨다. 규장각에 대한 모든 역사가 들어 있었다. 아직 외국에서 돌려 받지 못한 우리의 문화유산이 너무나도 아쉬운 마음이었다.
서준표 독자 (서울원명초등학교 / 6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