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연정 독자 (서울개일초등학교 / 6학년)
추천 : 91 / 조회수 : 1572
푸른누리 안녕? 나 연정이야. 어느새 가을도 다 지나간 듯 날씨가 추워지고 있네. 따뜻한 어묵 국물과 따끈따끈한 찐빵이 떠오르는 겨울이야. 내가 푸른누리를 처음 알게 되었을 때도, 날씨가 추운 겨울이었어. 우연히 학교 홈페이지에 올라온 글을 보게 되었는데, 그 때가 푸른누리와의 첫 만남이었지.
설렘 반, 걱정 반으로 시작한 기자 활동.
설렘과 기대로 부푼 내 마음을 알아준 걸까? 2월 23일, 드디어 푸른누리 2기 기자로 선정되었어. 그런데 한 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었어. 이명박 대통령 할아버지로부터 임명장도 받았는데,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여태까지 남이 쓴 기사를 읽었는데 내가 직접 쓰려니까 쉽지 않더라.
처음 한 글자를 쓰고 나니 정말 막막해서 한동안 가만히 앉아 있다가 우여곡절 끝에 기사 한 편을 작성했지. 그런데 경험도 부족하고 사진도 없는 내 기사는 채택이 되지 않았어. 첫 기사인데 채택이 안 돼서 조금 실망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도 하나의 경험이라는 생각이 들어. 난 다시 마음을 다잡고 열심히 기사를 썼는데 정말 내가 쓴 기사가 우리 학교 이야기에 실려 있었어.
메인은 아니었지만, 열심히 한 보람에 너무나도 뿌듯했지. 더욱 놀란 것은 그 다음 일이야. 학교가 끝나고 집에 돌아와서 컴퓨터를 켜고, 영어숙제를 하고 있었어. 그렇게 30분 정도 지났을까? 엄마께서 32호가 아직 발행 안 되었냐고 물어보셔서 푸른누리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았는데 32호는 발행이 되어 있었고, 영어숙제 중이었던 나는 다시 책을 보려고 하는데 글쎄 내가 지은 시가 메인에 있는 거야. 깜짝 놀란 난 눈을 비비고 다시 한 번 봤지. 그런데 정말 ‘산수유 꽃망울의 비밀’ 시가 메인에 있었어. 그 이후로 더 많은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어.
실패의 3연속. 그리고 내가 느낀 것.
오직 자신감만으로 동행취재도 신청을 했는데, 선정되지 않았어. 동행취재를 3번 신청했는데, 3번 모두 떨어졌지. 마지막으로 신청한 것도 떨어지자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어. 기사도 채택이 안 되고 동행 취재도 떨어지고 나름대로 열심히 썼는데, 선정이 되지 않아 나의 부족한 점은 찾아보지 않고 속상해 했어. 그 때부터 점점 푸른누리를 들어오는 횟수도 줄어들고, 기사도 쓰려 하지 않았지. 그렇게 푸른누리 기사 쓰는 것도 점점 잊는 듯 했어. 하루는 숙제를 끝내고 푸른누리에 들어가 봤는데 편집회의실에 올라온 글들을 보니 다른 기자들도 많이 힘들 텐데 열심히 기사를 작성해주고 있었어.
그 때부터 마음을 잡고 기사를 쓰기 시작해서 모르는 것은 아빠께 여쭈어 보면서 사진도 스스로 편집해보고 글도 다듬으면서 나만의 방법을 많이 터득해 나갔어. 공부와 숙제에 많이 힘들 때는 우수기자가 나를 일으켜 주었지. 기사 쓸 때는 정말 힘들었는데, 우수기자로 선정되면 그 기쁨이 얼마나 큰지! 그래서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이 있는 것 같아.
동행취재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
나의 첫 동행취재는 ‘어르신 구연대회 심사위원’이었어. 취재의 목적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심사위원이 되어 보는 것이 뜻깊은 취재였지. 이 취재를 하면서 어르신들의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고, 어린이들에게 꿈을 키워주고 싶으신 어르신들의 바람이 꼭 이루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두 번째 취재는 대통령기록관 탐방이었는데, 취재를 하기 전에는 몰랐는데 설명하시는 것을 받아 적기도 힘들고 정리하고 요약하는 것도 힘들다는 것을 느꼈어. 진정한 기자의 정신을 배울 수 있는 기회였지. 대통령 기록관에 대해 처음 알게 되었는데 우리의 기록을 보존하는 정말 중요한 곳이라는 것을 깨달았고 더욱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어. 동행취재를 통해 느낀 것은 교과서 밖의 세상을 바라볼 수 있었다는 거야. 여러 곳을 취재하면서 따뜻함, 소중함을 배울 수 있었던 시간이었어.
푸른누리가 있어 더욱 더 성장된 나의 모습.
푸른누리를 시작하면서 내가 세운 목표는 메인채택, 우수기자가 아닌 기자 활동을 열심히 하자는 것이었어. 솔직히 상 욕심도 많이 생겼었지만 상만 바라보고 기사를 쓰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야. 기사를 얼마나 성실히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작성하느냐가 나의 목표였지. 그런데 노력의 결과일까? 지난 9월에 열렸던 ‘한글날 기념 4행시 짓기 대회’에서는 몇 번의 고민 끝에 지은 사행시로 홍상표 홍보수석 상을 받았어. 동행취재도 떨어지고 기사도 채택이 안 되던 내가 그만큼 성장해서 상까지 받았다는 것이 믿기지가 않았어. 그리고 12월 6일 상반기 우수기자상을 받았을 때에는 힘들었던 기억이 많이 떠올랐어. 기사가 잘 안 써지면 짜증도 부리고 많이 울었는데 2010년의 마지막 달, 이렇게 성장한 나의 모습이 너무나도 놀라웠어. 아마 푸른누리가 없었더라면 나에게 이런 많은 변화가 생기지 않았을 거야.
“죄송하지만 다시 한 번, 뭐라고요?” 취재 중 생긴 에피소드.
내가 가장 기억에 남는 취재는 바로 ‘세종이야기’에서 한 외국인 인터뷰야. 사실 처음에는 세종이야기에 대해서만 기사를 쓰려고 했는데, 쭉 둘러보니 뭔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 외국인을 인터뷰하려고 하는데 처음이라 그런지 조금 긴장이 됐어. 겨우 그 마음을 진정시키고 “Excuse me?" 라고 질문하자 "Yes." 라는 답변이 돌아왔어.
그래서 청와대 푸른누리 기자임을 밝히고 몇 가지 질문을 하자 그 외국인은 나에게 친절하게 답변해주었어. 중간 중간 “pardon?" 이라는 말도 많이 했지만, 무사히 끝낼 수 있었지. "Thank you." 라는 감사인사를 끝으로 마무리를 하고 세종이야기를 떠나려는 순간, 엄마께서 “그런데 그 외국인 이름이 뭐니?” 라고 물어보셨어. 나는 이름을 묻기 위해 그 외국인을 찾아 나섰는데 다행히 세종이야기 옆 충무공 이야기에 계셔서 이름을 여쭈어 볼 수 있었어. 그 때 그 외국인이 만약 없었더라면 난 기사에 ‘Dianne’이라는 이름 대신 ‘외국인’이라고 써야 했을 것이야. 미리 질문을 준비해 갔더라면 편했을 텐데, 라는 후회감이 밀려 왔지. 나의 첫 외국인 인터뷰는 성공적으로 끝냈지만, 인터뷰 내내 식은땀만 흘렸어.
푸른누리와 함께해서 행복했던 2010년!
처음에 푸른누리를 만났을 때는 부담감도 크고 걱정도 많았는데, 이렇게 발전된 나의 모습이 너무나 놀랍고 푸른누리에게 고마워. 이제 중학생이 되면 푸른누리와 이별해야 할텐데 많이 아쉬워. 그래도 나누리 기자로서 다시 만날 수 있어 다행이야. 이제 임기도 얼마 안 남았는데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할게.
마지막으로 그 동안 내 기사를 읽어준 푸른누리 가족이 있었기에 내가 더 발전하고 노력한 것이라고 생각해. 푸른누리가 있어 너무나 행복했던 2010년. 푸른누리는 나의 최고의 선생님이었어. 교훈과 지혜를 가르쳐준 훌륭한 선생님. 2011년에는 나누리 기자로 함께 할게. 푸른누리야, 정말 고마워!
노연정 독자 (서울개일초등학교 / 6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