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기록관 홈페이지로 이동합니다
44호 10월07일

문화 속으로 추천 리스트 프린트

김영경 독자 (중대부속초등학교 / 5학년)

추천 : 2 / 조회수 : 370

뉴스 공유하기 C
					로그 미투데이 트위터 Facebook

교과서 여행, 수원 화성에 가다.

한바탕 물난리를 치르고 추석을 보낸 뒤인 9월 23일 아침, 하늘은 거짓말처럼 개어있었다. 나는 연휴 중 교과서 여행 취재장소로 계획했던 정조 할아버지의 효성이 낳은 세계문화유산 수원 화성으로 향했다.


떠나기 전 수원 화성에 대한 책을 읽어보니, 그곳은 아름답고 역사적 의미가 풍부하여 교과서에 등장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이미 4학년 교과서에도 등장하고 중학교에서도 자주 나온다고 하니 의미 있는 걸음이 될 것 같아 마음이 설레었다. 수원은 서울에서 가까운 도시인데도 가 볼 기회가 없었다. 거리는 깨끗했고 화성 근처에는 가벼운 운동복 차림으로 산책하는 사람들이 많아 유적지를 가까이 대하고 사는 수원 사람들의 여유가 느껴졌다.


나는 성을 돌면서 아름다운 경치와 신기한 건축물을 마음껏 살펴보았다. 적을 위협하고 공격하기 위한 포루, 치성, 공심돈 등을 보니 조선시대 우리조상들의 군사력이 강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또, 화홍루, 각루 같은 아름다운 건축물들은 그 예술성에 감탄하게 되었다. 화성은 둘레가 5km에 가까운데, 장안문에서 시작하여 동장대까지 성곽을 따라 걷다보니 제법 힘들었다. 그런데 때마침 수원 화성을 따라 도는 화성열차를 타게 되어 오던 길을 다시 돌아 공심돈, 화서문을 지나 화성행궁과 서장대 사이까지 힘들이지 않고 올 수 있었다. 화성열차는 힘을 나타내기 위해 용머리 형상을 하고 있고, 관광객들이 앉는 객차는 임금이 권위를 나타내면서 관람하기 쉽도록 임금이 타던 가마를 형상화 하였다. 이런 이유로 화성열차를 탔을 때 나는 임금이 된 느낌이었다. 주요 건물마다 방송으로 설명도 참 꼼꼼하게 해 주어서 좋았다. (월요일과 비오는 날은 운행하지 않음)


화성은 정조대왕이 자신의 아버지인 사도세자의 능을 옮기면서 그곳에 살던 백성들이 옮겨 살 수 있도록 지은 성이다. 1794년에 화성을 착공하여 2년 9개월만인 1796년에 완공하였다. 본래는 10년 동안 짓도록 계획되었으나, 정약용을 비롯한 실학자들의 훌륭한 과학기술 덕분에 아주 빠르게 지어졌다고 한다. 또, 화성을 짓는데 참여하고 도운 백성들에게는 정조대왕의 뜻으로 임금을 지급했다. 이런 모든 것들은 <화성성역의괘>라는 책에 모두 기록되어 있어서 지금도 모두 알 수 있다. 이 책에는 화성을 짓는데 돌과 벽돌이 얼마나 사용되었는지, 심지어 못이 몇 개 사용되었는지까지 적어놓았다니 기록이야말로 역사의 시작이라는 생각이 든다.(나도 기록을 열심히 해야겠다.)


정조대왕은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을 옮기고 화성을 지은 후 자주 참배하러 오셨고, 오실 때는 화성행궁에 머무셨다. 사도세자는 임금에 오르지 못하고 아버지인 영조에 의해 뒤주에 열흘 동안 갇혀 돌아가셨는데, 정조대왕은 이를 매우 슬퍼하셨고 화성에 와서 아버지를 그리면서 지내기를 좋아하셨다고 한다. 그래서 정조대왕은 나중에 왕위를 세자에게 물려주고 화성 행궁에서 사시는 꿈을 꾸며 행궁 안에 ‘늙은 후에 돌아올 집’이라는 뜻의 노래당(老來堂)이라는 건물을 세우기도 하셨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소원은 이루지 못한 채 영정을 모신 ‘화령전’이라는 건물로 그 정신을 알리고 있다.

화성행궁 정문인 신풍루 앞에서는 무예24기 공연이 벌어지고 있었다. 우리의 전통 무예 24가지를 시범을 보여주는 공연이었는데, 무사들 중에는 여자도 있어서 신기했고 우리 조상들이 얼마나 무예 기술이 뛰어났는지 알게 되었다. 화성행궁에 들어가서는 행궁 안의 여러 건물과 함께 상설 체험한마당도 구경 했다. 한자 스티커 붙이기, 스탬프 찍고 코팅하기, 사도세자 뒤주 들어가 보기, 민속놀이 등 재미있는 체험이 많았다. 화성행궁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도 많이 눈에 띄고 체험을 참여하려는 외국인에게 통역도 해주니 참 뿌듯했다. 나중에 이런 자원봉사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조선 왕릉의 하나인 융건릉으로 가서 사도세자와 정조대왕의 무덤을 보았다. 정조대왕은 그토록 그리던 아버지와 매우 가까운 곳에 누워계셨다. 홍살문을 넘어 돌길을 따라가면 정자각이 나오고 그 너머 언덕위로 거대한 무덤이 보였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서인지 무덤에 가까이 접근할 수 없는 것이 아쉬웠다. 두 분의 무덤은 천천히 걸어서 약 10분 거리에 떨어져있는데, 그 사이로 난 산책길이 참 아름답고 소나무와 수풀로 우거져있었다. 정조대왕은 효자였으며 돌아가신 뒤에도 이렇게 가족이 모여 있으니 참 좋아보였다.

산책길을 돌아 나오며 나는 정조대왕의 효심이 낳은 수원 화성의 어제와 오늘을 생각해 보았다. 수원 화성은 엄청난 역사적 의미에도 불구하고 일제 강점기와 6·25전쟁을 겪으며 많은 것이 훼손되고 파괴되어 어떤 곳은 주춧돌만 남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역사를 복원하고자 하는 우리의 노력으로 이제 수원 화성은 과거의 모습을 되찾고 자랑스럽게 우뚝 서있다. 이런 노력이 인정되어 수원화성은 마침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되기에 이르렀다. 앞으로도 우리의 과거 역사유적을 찾고 되살리려는 노력이 이어진다면 우리는 더 많은 세계문화유산을 가지게 될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김영경 독자 (중대부속초등학교 / 5학년)

추천 리스트 프린트

 
홍리빈
상당초등학교 / 6학년
2010-10-18 16:53:52
| 저는 아직 화성에 가보질 못했어요. 꼭 가보고 싶어요.화성에 가면 김영경기자님의 기사가 도움이 될 거 같아요. 잘봤습니다.추천합니다!
 

 

렌즈속세상

놀이터

[책 읽는 세상]10월 1주 교보추천도서


Template_ Compiler Error #10: cannot write compiled file "/web/webapp/data/ipress/iprdata7/e3/school.president.go.kr_paper/template/kr/_compile/group/57/1/bottom.htm.ph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