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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호 5월 5일

문화속으로 추천 리스트 프린트

김희건 나누리기자 (서울선유초등학교 / 6학년)

추천 : 15 / 조회수 : 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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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전수전의 美 - 창경궁에 다녀왔어요

4월 16일 가족과 함께 창경궁을 다녀왔습니다. 창경궁은 성종이 왕실의 웃어른인 세조 비 정희왕후(성종에게는 정희대왕대비였음), 어머니인 덕종(성종의 아버지로 추존된 분이다)의 아내 소혜왕후(성종에게는 소혜대비), 작은 어머니인 예종 비 안순왕후(성종에게는 안순대비) 세 대비를 모시기 위해 마련한 궁전입니다. 다른 궁궐은 지반을 평평하게 다지고 짓는 반면 이 궁궐은 자연의 지형에 맞추어 지은 것이 특징입니다. 또한 다른 궁궐은 모두 남쪽으로 정문이 나있는 반면 이 궁궐만 동쪽으로 입구가 나있습니다.

이런 창경궁도 큰 위험이 두 번 있었는데 하나는 임진왜란 때 불에 탈 위험에 빠졌던 것입니다. 충격적으로 완전히 다 소실되고 원래의 터에는 재만 남아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두 번째 위기는 훨씬 더 치명적이었는데 바로 일제가 우리나라의 기개를 떨어뜨리기 위해 이곳을 동물원, 놀이공원, 식물원으로 고치고 일본의 상징인 사쿠라 꽃과 벚꽃을 심고 ‘창경궁’이란 명칭까지 ‘창경원’으로 바꾼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점점 예전의 아담한 창경궁을 잊어갔습니다. 또한 많은 보수가 이루어진 지금도 창경원의 흔적 두 가지를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차차 설명하겠습니다.


처음 우리가 이 창경궁에서 볼 수 있는 것이 바로 홍화문, 창경궁의 정문인데 다른 궁궐과 달리 웅장하게 우뚝 서있는 것이 아니라 약간 낮은데 이 이유는 창경궁 자체가 여성들과 왕실의 소박함을 담은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홍화문을 들어가면 바로 다른 궁궐과 다름없이 금천이라는 악귀들을 들어올 수 없게 막는다는 상징적 의미와 일반 사람과 왕의 경계를 나타내는 개천이 하나 나오는데 창경궁의 금천은 옥천입니다.


옥천을 건너는 옥천교를 지나면 창경궁의 중심인 명정문과 명정전이 나옵니다. 명정전의 특이한 점은 근정전뿐만이 아니라 인정전 등의 다른 궁궐의 전각보다 규모가 작고 우진각 지붕으로 되어 있다는 게 특징입니다. 명정전은 덕수궁보다 조금 더 친숙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창경궁에서 집무를 보며 머물고 싶어했던 광해군이 지은 건물입니다. 솔직히 저의 개인적인 생각으로도 단순하고 엄숙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덕수궁보다는 창경궁이 더욱 아름답다는 생각을 합니다. 명정전을 지나면 세자가 공부를 하고 머물던 숭문당 유역을 지나 문정전으로 갔습니다. 이 문정전 앞마당에는 사도세자에 관련된 설 하나가 있는데 사도세자의 뒤주가 처음에는 이 문정전 앞마당에 있었다는 것 이었습니다.

그 다음은 영조의 개인 도서관인 경춘전에 갔습니다. 그 안에는 영조가 독서하면서 살자고 쓴 현판이 하나 있다고 하였는데 아쉽게도 문이 잠겨있어서 볼 수는 없었습니다. 그 다음으로 간 곳은 환경전이었는데 이곳은 왕이 돌아가시면 그 시신을 모셔두던 방입니다. 그 옆으로 통명전이었는데 이곳은 왕의 침실로 사용되고 유일하게 창경궁에서 들어갈 수 있는 고궁 형식 건물입니다. 그리고 왕비가 업무를 보던 집복헌, 궁녀들이 잡일을 하거나 쉬던 영춘헌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영춘헌 옆에 석가탑 형식의 돌탑 하나가 서 있었는데 그 것이 바로 창경원의 흔적입니다. 그 돌탑은 유래를 알 수 없고 조선 왕조 실록 어느 곳에도 나와 있지 않습니다. 일본사람들이 장식으로 가져다 놓지 않았을까하는 추측을 할 뿐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간 곳이 자경전 터였습니다. 여러분은 모두 정조하면 독서, 활쏘기, 효심, 화성, 안경을 생각하실 것입니다. 이곳은 정조를 상징하는 앞에서 말한 다섯 가지 중 하나인 효심의 자리인데 자경전은 정조의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를 위해 정조가 지은 전각입니다. 이 자경전이 계속 존재했다면 아마 창경궁 내에서 가장 큰 건물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창경원 시절 일부는 박물관, 일부는 헐려서 지금은 아예 소실이 된 상태라 정말 아쉽습니다. 그리고 계속 길을 따라 쭉 가니 깃대 옆에 산 모양이 잔뜩 난 이상한 괴석이 있었는데 이것이 바로 창경원 시절의 마지막 흔적입니다. 이것 역시 일본 사람들이 가져다 놓았다고 추측을 하고 있습니다.


다음에는 춘당지라는 큰 연못을 만났습니다. 춘당지는 원래 3개의 큰 연못이었는데 일제때 창경원을 만들면서 춘당지가 한 개의 큰 연못으로 바뀌고 벚꽃이 주변에 심어졌습니다. 그래도 여러 번 보수를 통해 현재 원래의 모습을 많이 찾았다고 하니 다행스럽게 느껴집니다.


궁궐의 전각들은 수많은 역사 사건을 겼으며 허물어지거나 다시 또는 새로이 지어지는 변화를 겪었습니다. 궁궐과 궁궐 내 전각들의 운명도 탄생에서 성장, 죽음의 생로병사 인간사와 다르지 않습니다. 궁궐과 궁궐의 각 전각들이 왕실 사람들의 삶이 깃든 특별한 공간이었음을 기억해봅시다. 그리고 그 안에서 기뻐하고 눈물 흘렸을 이들의 마음을 상상하고 헤아려 본다면, 역사 속에 등장했던 과거의 공간으로서 뿐만이 아니라 현재 우리의 삶 속에서도 깊은 의미를 갖는 현재의 공간으로서 궁궐을 새롭게 만날 수 있습니다. 선조들의 철학과 지혜를 담고 있는 궁궐은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가꾸어 줄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우리가 본받고 과거를 회상하며 현세에 응용할 수 있는 그런 궁궐의 중심에 여기, 창경궁이 있습니다.

김희건 나누리기자 (서울선유초등학교 / 6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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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현우
청심국제중학교 / 1학년
2011-05-10 17:35:42
| 창경궁에 대하여 잘 설명해주셔서 감사해요. 창경궁은 정원이 매우 아름다웠던 것 같습니다. 과학관에서 내려오는 길을 걷다보면 숲길을 걷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아집니다.
김희건
선유중학교 / 1학년
2011-05-13 00:42:55
| 제 기사를 읽어주시는 모든분 감사합니다.^^
손해수
숭신여자중학교 / 1학년
2011-05-16 23:14:56
| 창경궁에 대해 더 많은 정보를 알게 되었어요.푸른누리 기자가 된게 잘 된거 같아요.더 많은 정보와 역사를 알게 되니까요.희건 기자님 잘 읽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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