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채현 나누리기자 (대구대덕초등학교 / 6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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왁자지껄한 쉬는시간에 갑자기 앙칼진 유라의 목소리가 교실을 꽉 메웠다.
"어! 내 곰돌이 머리핀이 어디 갔지? 아 맞다! 우리반 상습범이 있었지.."
마치 친구들 더러 다 들으라는 듯한 커다란 목소리였다. 유라는 서윤이의 자리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리고 당연하다는 듯이 오른손을 쫙 펴 얼른 달라는 시늉을 하였다. 서윤이의 큰 눈망울은 그저 유라를 올려다 보기만 했다. 사실, 유라와 서윤이는 친한 친구 사이였다. 하루는 사소한 것으로 싸우게 됐는데, 자기가 서윤이에게 빌려줬던 물건을 보고 유라는 아이들에게 서윤이가 자신의 물건을 훔쳐갔다고 소문을 퍼뜨린 것이다.
그 후로 아이들은 유라의 힘과 말솜씨에 휘둘려 일방적으로 서윤이에게 ‘왕따’를 시키고 있었다. 웬만하면 큰 일을 내고 싶지 않아 욕을 들어도 가만히 앉아잇는 서윤이었지만, 오늘. 사건이 터지고야 말았다. 서윤이가 유일하게 못참는 말을 유라가 해 버린 것이다.
"역시 엄마 없는 애들은... 쳇"
어떤 심한 욕을 들어도 꿋꿋하던 서윤이의 표정이 일그러지며, 눈시울이 붉어졌다. 콧구멍도 벌름거리기 시작했다.
"우리 엄마가 왜 없어! 우리엄마가 우리 집에 떡하니 버티고 계시는데! 네가 뭘 안다고 그래? 네가! "
작은 모욕에도 참지 못하는 유라가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뭐라고? 말 다했어? 곧 돌아가실 텐데 곧 부르는 호칭 미리 불렀다고 왜 열을 올리셔? 흥!"
서윤이는 소리를 지르며 유라를 때렸다.
"네가 뭘 아는데? 우리 엄마 건강하셔. 너네 엄마 보다 건강하고, 누구보다도 밝은 분이셔. 멀쩡한 우리 엄말 두고 네가 왜그러냐고. 너 다시 한 번 더 내 앞에서 그런 소리 하면 정말로 가만 안 둘 꺼야."
곧이어 유라와 서윤이는 서로 엉겨서 머리채를 잡아뜯고 있었다. 금세 유라는 몇 대 맞지도 않고 되려 큰 소리를 내어 울었다. 그 소리에 놀란 선생님은 유라 곁으로 갔다. 결국, 둘은 선생님게 손바닥 열 대 씩을 맞았다. 서윤이의 약한 피부가 벌겋게부어올라 있었다. 방과 후, 갑자기 유라의 엄마가 번쩍거리는 옷을 입고 교실에 나타났다.
"서윤이가 누구니? 우리 귀한 딸 얼굴을 이렇게 만든 애가!!"
"엄마, 쟤예요. 으앙~"
사실은 서윤이의 얼굴이 더욱 엉망진창이고, 서윤이의 마음이 더 아팠건만, 서윤이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서윤이는 유라 엄마의 ‘흥’. ‘쳇’, ‘기가 막혀.’, ‘니깟게’라는 말을 지겹도록 듣고 나서야 학교를 나올 수 있었다. 오늘따라 엄마 얼굴이 보고팠던 서윤이는 엄마가 계신 병원으로 갔다. 엄마는 병실에 안계셨다. 아마도 병원 앞 솔잎공원에 가신 듯 했다. 서윤이는 책가방을 엄마 침대에 두고 공원을 향해 뛰었다. 유라엄마와 채은이 엄마가 이야기 하시는 것이 보였다. 유라 엄마 표정을 보아하니 서윤이 얘기인 듯 했다.
서윤이는 반대쪽으로 걸어갔다. 환자복을 입고 천천히 걸어가는 사람. 엄마였다. 서윤이가 엄마를 향해 뛰어가려고 했을 찰나, 갑자기 서윤이 엄마가 링거를 뽑고 유라 엄마 쪽으로 달려 가 머리채를 쥐어 잡으셨다. 그러자 놀란 유라 엄마는 서윤이 엄마를 핸드백으로 때리기 시작했다. 서윤이 엄마는 땅에 철퍼덕 쓰러지셨다. 서윤이의 동공이 커졌다.
"어머, 이 아줌만 뭐야? 이젠 웬 정신병걸린 아줌마가 달려드네."
유라 엄마는 자신의 머리를 매만지며 말했다.
서윤이는 달리고 또 달렸다. 유라 엄마를 향해 달렸다. 달리는 내내 눈물이 흘렀다. 서윤이는 길가의 모래를 한 줌 주워 유라 엄마에게 뿌렸다. 유라엄마는 매우 놀란 얼굴로 말했다.
"이 계집애가?"
유라 엄마도 서윤이에게 모래를 한 움큼 뿌렸다. 그 때 유라 엄마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악!"
서윤이 엄마가 유라 엄마를 깨문 것이다. 유라 엄마는 분을 참지 못하고 서윤이 엄마를 밀쳐 내고는 소리쳤다.
"아악! 정말 내가 이런 것들 때문에 못 살아!!!"
그리고는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어, 김비서. 지금 당장 입을 옷하고, 차 몰고 와."
곧이어 검은 옷을 입고 머리를 묶은 아줌마들이 유라 엄마를 차로 데려 갔다. 바닥에 주저 앉은 서윤이와 엄마의 눈에는 다시 한 번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서윤이 엄마는 서윤이의 볼을 더듬더듬 어루만졌다... 사실 서윤이의 엄마는 췌장암에 걸리셨는데, 충격으로 가끔씩 약한 정신분열 증세가 있으셨다. 서윤이는 엄마의 눈물을 손으로 쓰윽 닦아 드렸다. 서윤이 엄마는 그저 서윤이의 손을 꼬옥 잡고 병원으로 들어 갔다.
서윤이는 그 날 일찍 잠들었다. 서윤이 엄마는 서윤이의 천사같은 자는 얼굴을 어루 만졌다. 서윤이의 곤히 자는 얼굴 위에 따뜻한 물방울 두어방울이 떨어졌다. 서윤이는 엄마가 췌장암 말기가 아닌 줄 안다. 하지만 서윤이 엄마는 기적이 아니라면 며칠도 견디지못했다.. 서윤이는 그 두어 방울의 따뜻한 물방울 때문이었는지 원래 깨어 있던 것인지 눈을 부시시 떴다.
"엄마....."
"우리.. 여행 갈까? 내일 아침 당장!"
서윤이 엄마는 웃는 건지 우는 건지 모를 얼굴로 소리치셨다. 갑자기 여행을 가자고 해서 서윤이는 당황했지만 엄마와 할 날이 얼마 일 지 모르기 때문에 너무도 기뻤다.
"응.. 엄마. 꼭 가자. 내일, 꼭 놀러 가자.. 응? 약속!"
엄마와 서윤이는 새끼 손가락을 걸어 잠궜다. 짹짹짹, 아침을 알리는 참새가 울자, 서윤이 엄마는 옷을 갈아 입기 시작했다. 사실 일주일 전부터 아빠와 엄마는 여행 준비를 해왔다고 했다.
"서윤아, 먼저 차에 가 있어. 엄마 준비 하고 나갈께."
"응.. 꼭 나와.."
뭔가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서윤이는 미소를 띄우며 아빠 차에 올라 탔다.. 아빠는 차에서 내려 담배를 피우셨다. 뿌연 담배 연기가 어디로 가야 할 지 모르는 서윤이 가족 같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엄마는 오시지 않았다. 한 30분쯤 기다렸을까.. 엄마가 나오셨다. 엄마께 왜 이렇게 늦으셨냐고 여쭤보고 싶었지만 엄마의 퉁퉁 부은 눈을 보고는 물어 볼 필요도, 물어 볼 용기가 없었다. 곧 이어 만약의 사태를 대비 해서 간호사 언니도 타셨다.
부릉부릉, 차가 출발 하고, 서윤이네 가족은 주변에 있는 사랑산으로 향했다. 덜컹덜컹 산길을 지나 오늘 하루 서윤이네 가족이 머물 숙소가 나왔다. 먼저 아빠는 아빠표 참치찌개를 만드셨다. 엄마는 담요를 덮고 방문을 열고 아빠와 서윤이를 지켜보고 계셨고, 아빠와 서윤이는 연신 앗 뜨거! 를 연발하며 참치찌개를 만들었다. 드디어 참치찌개가 다 만들어 지고, 한 숟가락을 먹어 보았지만 맛은 좋지 않았다. 하지만 달콤한 사랑이 담긴 찌개라 그런지 우리 가족 모두 아무 소리 없이 행복한 아침식사를 했다.
우리 가족은 사랑산의 명물, 하트 보양으로 구부러져 있는 우정 나무를 찾아갔다. 우정나무에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적은 종이를 매달면 우정나무가 그 사람을 지켜준다는 전설이 있는데, 서윤이도 종이에 ‘우리 엄마♥’라고 또박또박 적어 정성스레 나무에 매달았다. 엄마는 서윤이에게 빙그레 헬쓱한 웃음을 지어 보이셨고 서윤이 아빠는 장난스레 토라진 표정을 지으셨다. 숙소로 돌아가자, 갑자기 아빠께서 케잌을 꺼내셨다.
"아빠, 웬 케잌이야?"
"우리 가족 여행 온 기념 케잌."
우리 가족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우리는 허겁지겁 케잌을 먹기 시작했다.
"엄마.. 엄만 왜 안먹어?"
"엄만 너 먹고 있는 거 보기만 해도 배불러.."
"쳇, 아니면서.."
서윤이는 짖궂게 싱긋 웃고는 케이크를 한 움큼 떠서 엄마 얼굴에 크림이 묻도록 입 안으로 넣어 드렸다. 엄마도 이내 싱긋 웃으셨다.
"아 맞다. 아까 차 타고 올라 올 때 봤는데, 이 주변에 눈 덜녹은 곳 있다고 하던데 거기서 놀까?"
"응! 응! 내가 눈을 얼마나 좋아하는데!"
서윤이가 그렇게 대답하자, 엄마도 아이처럼 밝게 웃으셨다.
사부작 사부작.. 눈길 위에 서윤이 가족들의 발자국들이 찍혔다.
퍽!
퍽!
아빠는 장난꾸러기처럼 씨익 웃으시며 윤이와 엄마에게 눈덩이를 던졌다. 이어 그 미소는 엄마와 서윤이에게도 번지고, 아빠의 그 행동까지 옮았다. 얼마나 눈싸움을 했을까... 갑자기 엄마가 기침을 하셨다.
"엄마, 다시 숙소로 들어갈까요?"
"더 못놀아도 되겠니?"
"그럼요! 저도 지금 추워서 들어가고 싶은 참이었어요."
어느새 날이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서윤이와 서윤이 엄마는 오랜만에 같이 목욕을 했다.
"아, 아, 엄마, 살살 밀어 주세요, 아파요! 헤헤.."
"알았어. 그런데 나중에 엄마가 세게 문질렀다고 복수하면 안됀다~!"
"헤헤.."
욕실에서는 행복한 대화만이 울려퍼졌다. 샤워를 끝낸 후, 서윤이 가족은 개그프로그램을 보고 있었다. 산 속이라 가끔 지지직 되긴 했지만 어느 시간 보다 행복했다.
"서윤아, 여보, 우리 이제 잘까? 이상하게 나 너무 피곤해서.."
"벌써? 음. 당신이 피곤하다니까 얼른 자야지. 서윤아, TV 끄렴."
서윤이의 가족은 이불을 깔고 편하게 누웠다. 얼마 쯤 자고 있을 때였나... 갑자기 엄마의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다. 서윤이는 깜짝 놀라서 깼다. 엄마가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위급한 듯 했다. 서윤이는 얼른 불을 켜고 아빠를 깨웠다.
"아빠, 아빠, 일어나 봐. 엄마가 위급하다고요!!!"
서윤이는 당장 옆 숙소에 있는 의사선생님과 간호사 언니들께 말했다. 간호사 언니들과 의사선생님은 급하게 치료 장비를 챙겨 엄마의 방으로 들어갔다. 얼마 뒤, 의사선생님께서 방 밖으로 나오셔서 서윤이에게 말했다.
"서윤아.. 일단 긴급 상황 조치는 잘 되었단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오늘 내일을 못넘을... 수..도...있....."
의사선생님께서는 어린 서윤이에게 충격적인 말을 전하면서 말을 주저하셨다. 어느 새 서윤이는 방안으로 들어갔다. 서윤이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다 못해 폭포수처럼 흘러내렸다.
"엄마, 왜 얘기 안했어? 나한테 왜 제일 먼저 얘기 안했어? 그렇게 아프다고, 시간 없다고.. 왜 얘기 안했어?"
엄마는 대답 없이 지그시 서윤이를 쳐다보기만 했다. 그리고 따스한 눈물이 또 떨어졌다. 그런데 갑자기, 서윤이 엄마의 동공이 커지면서 다시 숨을 껄떡거리셨다. 서윤이는 너무 놀라 의사선생님을 불렀다. 아까보다도 더 심한 것 같았다. 서윤이는 마음이 심란하고 무서워서 심장이 터질것만 같았다. 의사선생님께서도 급한 얼굴로 장비들이 있는 병원으로 빨리 모셔야 할 것 같다고 하셨다.
지금은 앰뷸런스로 병원에 빨리 엄마를 데려가는 수 밖에 없었다. 앰뷸런스가 올 수 있는 곳 까지 엄마를 데리고 내려 가야 했다. 서윤이 아빠는 서윤이 엄마를 안고 거친 가시나무에 옷이 찢기면서 까지 산을 뛰어내려갔다. 엄마를 앰뷸런스 안에 태우고, 서윤이는 손을 꼬옥 잡았다. 눈물인지 땀인지 모를 만큼의 엄청난 액체가 손을 타고 내렸다. 급하게 삐용대며 달리는 앰뷸런스 안에서.. 서윤이의 눈물샘은 마를 줄을 몰랐다.
‘엄마, 안 이럴 거잖아. 영화에서 보면 기적은 꼭 일어나잖아.. 이럴 땐 꼭 기적이 일어나서 거짓말 처럼.. 정말 거짓말처럼 주인공이 다 나아서 가족들이 행복하게 오래오래 잘 살잖아, 앞으로 병 훌훌 다 털어 내고, 나랑 행복하게 백년 천년 살기로 했잖아. 사랑하는 나랑 아빠 두고 갈거야? 엄마 나 공부 잘해서 좋은 대학 가는 거, 좋은 직장 얻는 거, 시집 가서 행복하게 엄마랑 오순도순 살길 바랬잖아. 벌써 이러면 안되잖아. 조금 만 더 참아..’
병원 앞에 다다랐을 무렵.. 갑자기 엄마의 호흡이 더 가파졌다. 그리고 갑자기 가파르던 호흡이 느려지는 듯 했다. 서윤이는 기적이 아닐까, 자신이 그렇게 바라던 거짓말 같은 기적이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기적이 아니었다. 서윤이 엄마는 가파른 숨을 참고 서윤이에게 마지막 메시지를 남기려고 애쓰고 계셨다.
"서..윤.. 아....컥! 엄마가... 끝까지.. 못 .컥! 지켜.. 컥! 줘서 미안하다.. 컥! 사랑.. 한..."
엄마가 갑자기 눈을 감고, 손을 떨궜다. 서윤이의 눈과 손도 심하게 떨렸다. 서윤이는 소리 질렀다.
"엄마, 엄마, 다시 눈 떠, 엄마, 우리 아직 같이 하고 싶은 거 많잖아, 엄마!!!!!!!!!"
그렇게, 그 겨울 밤 엄마는 눈물콧물이 범벅된 서윤이 곁을 떠났다. 서윤이는 알 수 없는 슬픔으로 범벅된 자신의 머릿속에서 하나만은 분명히 기억 하고 있었다. 엄마가..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사랑한다... 이 말이 너무 마음 아프고 소중하게 느껴졌다. 항상 나누던 엄마와의 대화, 사랑한다.. 그리고 이번의..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너무나도 가슴이 아팠다.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서윤이는. 하지만 그 말만을 또렷했다. 그 마지막 소중한 말만은...
이채현 나누리기자 (대구대덕초등학교 / 6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