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준 기자 (서울송전초등학교 / 5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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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26일은 내겐 너무도 잊지 못할, 특별한 날로 평생 기억될 것이다. 리코더 연주자 조진희 교수님을 인터뷰하러 춘천으로 가는 동안 설렘과 묘한 흥분으로 많이 긴장되었다. 우리나라 리코더계를 이끌어온 최정상의 리코더 연주자, 최초로 고음악을 보급, 비인 국립 음대에서 디플롬을 받은 최초의 한국인! 게다가 블록 플뢰텐 서울 음악 감독이자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교수인 조진희 교수님을 만나러 가는 길 내내 심장이 심하게 쿵쾅거렸다.
나는 3학년 음악 교과에서 리코더를 배운 후 리코더 특유의 음색과 매력에 빠져 있다. 리코더를 통해 다른 악기에도 관심을 넓혀 가고 음악가를 진로로 결정하고 싶을 만큼 내 리코더 사랑은 대단하다. 드물게 있는 리코더 콘서트가 열리는 날이면 시험 전날이라도 거리에 상관없이 다녀온다. 그렇게 알게된 연주자들은 내 롤모델이 되고 나는 그들을 닮고 싶어했다. 그런데 그 대부분 연주자들은 조진희 교수님의 제자인 것이다. 우리나라 리코더 연주자 중 최고인 조진희 교수님을 만날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 내게 있어 조진희 교수님은 훌륭한 위인보다 더 멀리 높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도 가지 않은 힘들고, 외로운 길을 선택해서 최고의 위치에 오른 분이라서 아직은 너무도 평범한 내가 만날 수 있는 인물이 아니라는 생각에 꿈도 꾸지 않았었다.
춘천에 도착해서 잠시 숨을 고르며 춘천 호반과 소양강 처녀 동상을 감상하고 5분정도 더 가니 작고 예쁜 리코더 공방 간판이 보였다. 다음 날이 춘천 리코더 콩쿠르가 있는 날이라 행사 준비로 바쁘실 텐데 인터뷰 요청을 받아 주고 매우 따뜻하게, 마치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낸 제자처럼 대해 주셨다. 호기심이 많은 기자는 회양목 향이 가득한 공방 안의 이곳저곳을 신나게 탐색한 후 조진희 교수님과 마주 앉았다.
기자: 리코더란 어떤 악기인가요? 리코더의 역사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조진희 교수님: 정확한 기원을 알 수 없으나 인류가 만든 최초의 음을 가지고 있는 악기는 리코더일 것이라 추정해요. 인류 최초의 음악은 노래였을 것이고, 노래를 부를 때 흥에 겨워서 장단을 맞추며 무엇인가 두드렸을 것이라는 가정 아래 자연스럽게 타악기가 탄생했을 것이에요. 또 다른 주장이 있는데 이는 무엇보다도 사람의 목소리를 모방하기 위해서는 음정이 있는 피리 종류의 악기를 만들어 불었을 거라 생각해요. 최초에 만들어진 리코더는 지금처럼 나무가 아닌 동물의 뼈로 만들었고 점차 발달하여 운지 구멍이 점점 많아지다가 바로크시기에 이르러 현재 사용하는 8개 구멍의 목재 리코더가 완성되었어요. 하지만 구조와 형태는 현재 사용하는 것과 거의 비슷해서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그 모습과 주법이 크게 변하지 않은 유일한 악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로 이런 이유로 인해 현대에 와서 세련되고 인공적이진 않지만 그 순수한 음색으로 다양하고 복잡한 구조의 다른 악기들 속에서도 사랑받고 있지요.
기자: 선생님께서 리코더를 배우게 된 동기 좀 말씀해 주세요.
조진희 교수님: 전 11남매 중 막내에요. 어릴 때 집에는 참 다양한 악기가 많았어요. 그중 8째 형이 리코더를 부는데 그 소리가 참 좋고 즐겨하게 되었지요. 리코더를 국내에 처음 보급하게 된 분은 1963년 춘천교대 교수이신 박지은 교수님이셨어요. 그 교수님이 형님의 선생님이셨어요. 두 분의 영향으로 리코더를 쉽게 접할 수 있었지요. 진로를 결정해야 할 때 국내에서는 리코더를 전공할 수 없어 플루트로 전공을 바꾸어 대학에 입학했으나 그 꿈을 접기가 쉽지 않았어요. 졸업 후에 교사 발령을 받은 상태에서 유학을 선택했지요.
기자: 국내 리코더 연주자 중 대부분이 선생님 제자라고 하는데요, 특히 기억에 남는 특별한 제자가 있으신가요?
조진희 교수님: 제자들 한 명, 한 명 다 특별하지요. 다른 악기와는 달리 그들이 리코더를 전공하게 될 때까지는 여러 가지 사연이 있었기에 모두 다 특별합니다. 제 제자 중 대부분이 여학생인데 남학생으로서 힘든 선택을 한 제자가 있어요. 2009년 몬트리올 국제 리코더 콩쿠르에서 1위 올랐던 권민석 군이에요.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저와 인연이 있었는데 리코더를 대단히 즐겨했어요. 고등학교 때 진로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부모님과 마찰을 겪은 후 리코더에 대한 의지를 적은 편지만 남겨두고 가출을 하였어요. 부모님은 의대를 권유했었어요.놀란 부모님께서 편지를 들고 제게 오셨던 때가 생각납니다. 학교 성적도 우수하여 휘문고 전교 1, 2등을 놓치지 않았는데 결국 리코더로 대학 진학은 안 하고 서울음대 작곡과에 입학했다가 네덜란드 헤이그 왕립 음악원으로 유학을 갔어요. 현실적으로 남학생으로서는 여러 벽이 많은데 자신의 길을 개척하고 꿈을 이룬 권민석 군이 자랑스럽습니다.
기자: 현재 국내에서 리코더를 배울 수 있는 전문 기관은 어디인가요?
조진희 교수님: 2002년부터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에서 리코더를 전공할 수 있게 되었어요. 아직까지는 문턱이 높아 아쉬움이 있지만 다른 대학에도 리코더 전공학과가 개설되도록 노력중이에요. 또 일반인들에게 열려있는 숭실 콘서바토리, 백석 콘서바토리 등이 있고 여러 지역에 리코더 합주단이 있어 배울 수 있는 곳은 많이 있어요.
기자: 현재 리코더 연주자이며, 지도자이고, 또 리코더 제작자의 길을 함께 걷고 계신데요. 리코더를 제작하시게 된 특별한 동기가 있으신가요?
조진희 교수님: 2003년부터 오른쪽 귀에 난청이 왔어요. 연주가에 있어서 난청이란 것은 참 절망적이었지요. ‘어떻게 해야 하나? 뭘 해야 할까?’ 정말 힘든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평소 리코더 제작에 대한 꿈이 있었기에 일본의 리코더 제작자이며 연주가로 유명한 야마오카 선생에게 배웠지요. 이후 작년에 유럽 4개국에 리코더를 전시하고 제가 만든 리코더로 연주하였는데 좋은 평을 받았습니다. 더 노력해야겠지만요.
기자: 음악인 가족이라고 들었는데요, 가족 이야기를 좀 들려주세요.
조진희 교수님: 연주자의 힘듦을 알기에 반대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환경 탓인지 아이들이 전부 음악을 전공해요. 큰 딸은 중 2때 오스트리아 빈으로 유학가 현재 대학교 3학년인데 피아노를 전공하고 있고, 둘째 아들도 국내 대학에서 첼로, 막내는 큰 딸과 함께 오스트리아에서 바이올린을 공부하고 있어요.
기자: 선생님에게 있어 리코더란 무엇인가요?
조진희 교수님: 어려운 질문이네요. "리코더는 내 인생의 전부이다." 이렇게 말해야지 멋질 텐데! 이제까지 제 인생의 대부분을 리코더와 함께 살았어요. 연주자로, 지도자로, 제작자로 살아왔고 살고 있지만 전부라고 말하기는 힘드네요. 아내와 아이가 있는 상태에서 뒤늦은 공부를 하러 ‘빈’으로 떠났었죠. 가족의 믿음이 있었기에 오늘의 제가 있다고 생각해요. 리코더, 가족, 조진희는 하나로 묶어서 표현하고 싶네요.
기자: 춘천리코더축제를 춘천고음악축제로 확대시키고 정착시켜 2006년 강원음악대상을 수상하셨는데요. 올해는 고음악축제가 언제 열리게 되나요? 2011 고음악축제에 대해 미리 알고 싶어요.
조진희 교수님: 9월 23일부터 28일까지 국립춘천박물관 강당에서 열릴 예정이에요. 23일 첫 오프닝 공연을 제 지휘로 춘천시립교향악단과 리코더 연주자 황지영 양이 협연합니다. 헨델, 비발디, 모차르트 등의 큰 편성의 작품들이 무대에 오를 거예요. 리코더의 고대 버전인 차칸과 제가 만든 리코더와 유사한 형태의 관악기 소개와 연주도 있구요. 24일에는 무지크 서울의 공연으로 성악과 기악이 함께 어우러지는 연주가 될 것 같아요. 25일에는 최근 주목 받는 라이징 스타 시리즈에서 바로크 오보에와 트라베르소 연주자들을 만날 수 있어요. 27일과 28일에는 외국 연주자들의 내한 연주로 꾸며질 예정이에요. 27일에는 국내에 잘 알려져 있는 리코더 앙상블 플란더스 리코더 콰르텟과 28일에는 고음악 전문 앙상블 라테르나 마지카 연주가 계획되어 있어요. 고음악축제의 모든 프로그램은 전석 무료초대로 진행되니 많은 분들이 오셔서 고음악에 대한 이해도 넓히고 관심 가져주셨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기자: 리코더 연주 때 반주로 하프시코드 소리를 듣다 보면 특별한 음색이 느껴져요. 또 하프시코드 독주 연주회도 종종 접할 수 있구요. 하지만 아직까지는 하프시코드가 일반인들에게는 낯설게 느껴져요. 하프시코드에 대해 궁금합니다. 또 하프시코드와 챔발로는 같은 악기인가요?
조진희 교수님: 맞아요. 리코더가 독주 악기로 각광받던 17-18세기의 바로크 시대에 하프시코드와 리코더는 단짝과도 같은 존재였죠. 하프시코드는 흔히들 피아노의 전신악기로 알고 있지만, 피아노와는 다른 종의 악기로 실제 피아노의 전신은 하프시코드 이후에 등장한 포르테 피아노라고 보는 게 맞습니다. 리코더와 마찬가지로 하프시코드도 국가별로 부르는 명칭이 다양한데요! 영어권에서는 하프시코드, 독어권에서는 쳄발로, 불어권에서는 클라브생으로 부릅니다. 하프시코드와 피아노가 가장 크게 구별되는 점이라면 소리를 내는 방법이 다르다는 것이죠. 피아노의 경우 건반을 누르면 해머가 피아노현을 때리는 방식으로 소리를 내지만, 하프시코드의 경우에는 건반을 누르면 잭이 올라오면서 현을 뜯는 방식으로 소리를 내죠. 하프시코드는 건반을 누르면 건반 끝의 잭이 따라 올라가면서 잭에 부착된 손톱 같은 플렉트럼이 현을 뜯어 소리를 내고 건반에서 손을 떼면 잭이 내려오면서 댐퍼가 현에 닿으면서 음의 지속을 끊는데, 하프시코드는 오늘날의 피아노처럼 페달이 없기 때문에 다이내믹을 미세하게 표현하긴 어렵지만 약간의 스톱을 적용해서 어느 정도의 다이내믹 구현은 가능해요.
한 분야에서 최고의 위치에 있는 아티스트라고는 도무지 믿기지 않는 소박한 조진희 교수님. 내게 리코더 이상의 가르침을 주셨다. 내가 교수님이라면 저렇게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진희 교수님이기에 최고의 위치에 설 수 있었던 것 같다. 먼 곳까지 왔다며 춘천의 소양강 감자까지 한 박스 주시던 선생님! 앞으로 자주 뵙기를 약속하고 인사를 드렸다. 내가 리코더 연주자의 길을 가지 않더라도 난 평생 선생님과 인연을 이어갈 것을 마음속으로 다짐을 했다. 또 먼 훗날 " 가장 기억에 남는 제자로 나, 최민준이 되도록 노력해야지!" 굳은 결심을 하며 서울길에 올랐다.
최민준 기자 (서울송전초등학교 / 5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