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민성 독자 (성동초등학교 / 6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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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의 유묵에는, "이로운 것을 보았을 때 정의를 생각하고, 위태로움을 보면 목숨을 바쳐라"라는 말이 있다. 이 유묵에 적혀있는 것처럼 살다가 1910년 10월 24 만주 하얼빈에서 조선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안중근 의사는 순국할 때까지 뤼순감옥에서 수감되어있었다. 안중근 의사 순국 100 주년을 맞이해서 요즘 다시 주목받고 있다.
안중근은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나, 16세가 되던 1894년 아버지가 감사의 요청으로 산포군을 조직하여 동학군을 진압하려고 나서자 이에 참가하였다.1906년 삼흥학교를 설립하고, 돈의학교를 인수하여 학교경영에 전념하기도 했다.항일무장투쟁을 시작한 후 일본군 정찰대를 공격, 격파했으며, 1909년 10월 26일 이토 히로부미를 태운 열차가 하얼빈에 도착하여 그가 러시아 장교단을 사열하고 군중 쪽으로 발길을 옮기는 순간 권총을 쏴 3발을 명중시켰다.여순감옥에 수감된 후 1910년 3월 26일 형장에서 순국하였다.
또한 안중근 의사는 뤼순감옥에서 "한.중.일 세 나라가 힘을 합쳐야 평화가 온다"라는 ,동양평화론,이라는 책을 냈다. 안중근 의사는 그 시절에 미래에 있을 일을 예견한 것을 보고 요즘 학자들이 공감을 하고 100년 전에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는지 연구하고 있다,
나는 이 말을 듣고 안중근 의사는 미래에서 온 사람일까,하는 생각이 든다, 이 시대에 다시 안중근 의사 같은 애국자가 태어나서 다시 우리 나라를 뒤바꾸어 한, 중, 일이 서로 평화롭게 되고 남북이 통일되도록 도와 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태어났어면 좋겠다,
나는 죽음을 각오하고서도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안중근 의사가 참 자랑스럽다. 이토 히로부미가 사살되고 나서도 우리 나라가 바로 해방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그 독한 이토 히로부미가 없어져서 다행이다. 이토 히로부미가 살아있었더라면 아예 우리의 깊은 뿌리를 없애려고 했을 것 같다
송민성 독자 (성동초등학교 / 6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