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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호 10월07일

문화 속으로 추천 리스트 프린트

백승협 기자 (중부초등학교 /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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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토 기요마사가 만든 구마모토성을 찾아서

9월 11일 누나와 함께 일본 큐수로 여행을 갔다. 누나와 둘만의 여행은 처음이라서 아빠는 무척 걱정을 하셨는데 엄마는 누나는 대학생이고 외국에도 자주 다녔으니 별 걱정 없다고 하셨다. 난 해외 여행은 처음이고 또 겁이 많아 누나와 가기 싫다고 했지만 일본은 꼭 가고 싶었기에 포기할 수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갈 때 어떤 동기가 있어 나가는 경우가 많듯이 내가 일본을 가고 싶었던 이유는 아주 단순한 것이었다.
어릴 때 즐겨보던 짱구 만화에 온천이 자주 나오고 특히 내가 어른들처럼 온천을 좋아하다보니 꼭 온천으로 유명한 큐수 지방으로 여행을 가고 싶었던 것이다.


또 일본어를 배우게 된 이후 일본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되어 가 보고 싶다고 했는데 엄마가 한번 다녀오라고 권하셨고 우여곡절 끝에 누나와 둘만의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인천공항에서 구마모토 국제공항까지는 1시간 30분 걸렸고 도착한 다음 우리들은 다른 일행들과 함께 규수 최대의 도시인 규슈 최대의 도시 후쿠오카로 이동을 하였다.
다자이후텐만구(태재부천만궁)은 학문의 신인 스가와라노미치자네를 모신 신사로, 매년 수험생 자녀를 둔 많은 부모들이 합격기원을 위해 이 곳을 가는데 우리나라 학부모님과 일본의 학부모님들이 이런 모습은 거의 비슷하다는 것이 정말 신기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수능을 앞두고 절이나 교회를 찾아가 기도를 하는 모습을 TV를 통해서도 보았고 우리 부모님들도 누나가 수능볼 때 기도를 했던 것으로 기억을 한다.


관광객들이 날씨가 더운데도 상당히 많아 둘러 보면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는데 같이 관광을 하게 된 최은옥 누나는 내가 어리다고 잘해줘서 참 고마웠다.
내가 일본이 섬나라인 것을 알고 갔는데 모모치 해변을 갔을 때 정말 아름답고 낭만적이어서 누나는 꼭 유럽에 온 듯한 느낌이라면서 혼자서 신이 나 손을 높이 들고 사진 찍느라 바빴다.


내가 가장 인상 깊엇던 것은 구마모토성이었는데 일본의 3대성으로 오사카성 나고야성 그중에서도 구마모토성은 시내 한복판에 있고 성둘레가 길어서 여러 곳의 입구가 있었다.
일본의 성은 우리나라나 중국과는 좀 다른 모습이었다. 서양처럼 영주 또는 공작들이 사는 곳이라고 했다. 구마모토 시의 북쪽에 있는 우에키 정에서 남쪽으로 뻗은 설상대지의 선단인 자스 산 구릉지 일대에 축조된 평산성이다. 구마모토성은 덴쇼 16년 (1588년) 가토 기요마사 ,히고 북반국 19만5000섬의 영주로서 이곳에 들어 왔다고 한다. 세키가하라의 전투 기요마사가 히고 남반국을 합쳐 54만섬을 소유했다고 하는데 기요마사는 50세 병사, 셋째 아들인 다다히로가 대를 이었지만 가토가는 영지와 가옥을 몰수 당하고 데와쇼나이에 유배를 당하게 된다.


가토가는 2대 44년을 구마모토성을 지키고 그 후로는 호소카와가 11대 293년을 이어왔다고 한다.
전국시대의 명장이었던 가토 기요마사가 구마모토성을 축성한 후, 가토 가문을 대신한 호소카와 가문이 약 200년에 걸쳐 다스린 구마모토. 메이지유신 때에는 요코이 쇼난이라 하는 일본 근대화의 주역이었던 사상가를 배출하기도 하고, 유신 후에는 세이난 전쟁이라는 큰 내란의 무대가 되기도 했다. 중세의 검호 미야모토 무사시는 구마모토를 생을 마감할 곳으로 선택하였으며, 근세의 문호 나쓰메 소세키는 구마모토에서의 경험을 기초로 수많은 명작을 남기는 등 구마모토는 옛부터 무인과 문인에게서 사랑을 받아왔다고 한다.


상부는 뒤로 젖혀지는 듯한 곡선을 그리고 있으며,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한 “무샤가에시”라고 불리는 돌담, 성 주위를 흐르는 2개의 자연강을 능수능란하게 이용한 수로와 땅을 파서 만든 거대한 호(물이 없는 해자) 등 다양한 실전기능을 가진 전국시대의 요새 겸 “불락의 명성”으로 오사카성, 구마모토성 3대 명성 중 한 곳 나고야성과 함께 일본3대 성으로 손꼽힌다고 한다.


현재 대소천수각은 1960년에 재건된 것으로 내부에는 대대로 전해오는 영주의 유품이나 구마모토성의 역사 등이 전시되어 있으며, 제일 위층에서는 구마모토시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었다.
스이젠지 조주엔 공원은 가토 가문으로부터 구마모토를 이어 받은 영주 호소카와 가문에 의해 약 360년 전에 만들어진 일본식 정원이 있는데 쓰키야마산, 스이젠지 조주엔 공원 구마모토의 영주 호소카와 가문이 만든 오랜 역사를 가진 일본식 정원 소나무, 구마모토의 넘치는 지하수가 훌륭하게 꾸며진 이 정원의 차실인 “고킨덴주노마”에서는 맛차라 불리는 진한 녹차와 일본식 과자(유료)를 먹을 수 있었는데 우리 누나하고 나는 녹차를 먹어 보기도 했다.


구마모토성과 스이젠지 조주엔 공원에서 구마모토의 땅을 일구어낸 역대 영주들의 용맹함과 풍류를 볼 수 있었다.
세이난[西南]전쟁으로 구마모토성의 많은 부분이 파괴되었으며, 지금의 성은 1906년에 재건된 것이라고 한다. 어느 나라든지 문화재가 훼손되는데 있어 가장 큰 피해를 주는 것은 전쟁이 아닌가 싶다.


임진왜란 때 악명을 떨친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 )가 만든 성으로 일본의 3대성에 들어갈 정도로 규모적으로나 기술적으로도 빼어난 구마모토성. 지금 나는 이곳에서 그시절을 회상할 수밖에 없다. 만약에 우리나라를 침략하지 않았다면 내가 구마모토성을 바라보는 마음이 어떠했을까? 조금 화가 나기도 했지만 일본의 문화를 지난 역사를 가지고 너무 힘들어 하거나 미워하거나 화내는 것보다 앞으로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며 둘러보라고 누나가 한마디 해주었다.


누나와 여행을 하기 전 두려웠던 것은 사실이지만 누나가 있어서 든든했고 모르는 것도 물어보면서 다닐 수 있어서 고마웠다.
가끔 누나에게 짜증을 낸 적도 많았는데 이번 여행을 통해 누나가 멋있고 자랑스러워 보였다.


내가 좋아하는 온천은 4번했는데 유카타를 입고 갔는데 내가 꼭 짱구가 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정말 신기한 것은 인사동에 가면 우리나라 상점 주인들이 거의 일본어나 중국어로 대화를 하는 것을 흔하게 볼 수 있는데 이곳에서는 한국어를 상점 주인들이 너무 잘해서 내가 일본어로 말 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놓치게 되기도 했다.


안내판도 한국어 방송도 한국어로 정말 내가 한국에 있는 것인지 일본으로 여행을 온 것인지 착각 할 정도였다.
여행을 통해 새로운 사실도 많이 알게 되지만 모르는 사람들과도 정을 쌓을 수 있었고 특히 우리누나의 새로운 모습을 많이 발견할 수 있었던 좋은 시간이었다.

백승협 기자 (중부초등학교 /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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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아영
성당중학교 / 1학년
2010-10-10 11:26:29
| 저도 일본에 가보고 싶어요 기사 잘 보았습니다
박건하
대왕중학교 / 1학년
2010-10-10 13:19:48
| 저는 올초 2월에 오오사카를 다녀왓는데 오오사카성과 구마모토성은 색깔만 틀리고 구조나 분위기는 비숫한것 같아요. 저도 그때 일본사람들이 한국어를 잘해서 깜짝 놀랐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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