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수경 나누리기자 (서초중학교 / 1학년)
추천 : 37 / 조회수 : 967
지난달 학교 동아리 활동으로 경복궁에 가게 되었다. 경복궁은 태조이성계가 1392년 조선을 건국한 후 1394년 10월 28일 수도를 서울로 옮기고 나서 1395년부터 1399년까지 지은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궁궐이다.
경복궁은 큰 복을 불러오는 궁궐이라는 뜻으로 조선의 큰 발전을 의미한다. 또한 500년을 넘는 그 장중한 역사에 걸맞는 복잡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경복궁은 임진왜란 전까지 꾸준히 사용되다가 임진왜란 후 불타버리자 1728년 경복궁을 버려지게 되었다. 그 후, 고종이 왕위에 오르게 되자 고종의 아버지인 흥선대원군은 왕실의 권위를 회복하기 위하여 경복궁을 중건한 후 다시 사용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1895년, 명성황후가 시해되는 ‘을미사변’이 일어나게 되자 고종은 자신도 시해당할 수 있겠다는 생명의 위협을 느끼게 되어 다시 경복궁을 버리고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난을 가게 되는 아관파천이 일어나게 되었다. 그리고 그 후 독립협회의 환궁요구로 인해 고종은 오늘날의 덕수궁인 경운궁으로 가게 되었고, 경복궁의 기능을 상실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 후 조선이 일제의 치하에 들어가게 되자, 경복궁에 조선총독부를 짓게 되었고, 1995년 철거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후부터 지금까지 경복궁을 원래 모습으로 중건하고 있다.
경복궁에 들어가게 되면 제일 먼저 만나게 되는 건물은 근정전이다. 근정전은 왕실의 공식 행사를 하던 곳이다. 근정전에서는 또한 한달에 4번 조화식이 열렸었다. 조화식은 신하가 관복을 입고 임금을 맞는 행사이다. 이 조화식은 연산군을 제외한 모든 임금이 했던 행사이다.
근정전에 있는 비석은 풍괴석이라고 하며 행사가 있을 때 신하들이 자신의 지위와 풍괴석에 써 있는 지위에 맞추어 서 있었다고 한다. 근정전을 지나면 볼 수 있는 대표적인 건물은 신하와 임금이 나랏일을 논하던 사정전이 있다. 사정전의 천장에는 2마리의 용과 구름을 볼 수 있는데, 이 그림을 운용도라고 한다. 운용도의 구름과 용은 임금과 신하의 관계를 나타낸다고 한다.
임금의 침실은 강녕전이라고 한다. 강녕전에서는 잠뿐만 아니라 업무도 함께 보는 건물이었기 때문에 임금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던 곳이라고 한다. 왕비의 침실은 교태전이라 하였고, 교태전의 후원은 ‘아미산’이라 하여 아름답게 꾸며 놓았다.
경회루는 외국에서 온 사신접대와 연회를 하고 임금이 휴식을 취하던 곳으로, 연못에 2층으로 된 누각이 있는 곳이다. 경회루에는 총 48개의 기둥이 있고, 동그란 기둥은 하늘을, 사각형 모양의 기둥은 땅을 상징한다고 한다. 경회루에서는 또한 과거시험을 치르고 비가 오지 않을 때는 비가 오도록 비는 기우제를 했다고 한다. 또한, 경회루는 잡상이 경복궁에서 가장 많은 곳으로 총 11개가 있다. 경회루의 연못 북쪽에는 용이 있는데, 용이 불과 물을 제어하기 때문에 불이 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
경복궁에서 임금의 물건을 보관하는 창고는 내탕고라고 하는데, 내탕고는 고종이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전구를 들여온 곳이라고 한다. 고종황제는 에디슨이 전구를 개발한지 8년만에 발전소를 세우고 전구 750개를 들여왔다고 한다.
이번에 학교에서 경복궁에 가기 전에도 경복궁에 온 적이 많았지만, 이번에는 가이드 선생님과 함께 경복궁에 대해 하나하나 자세히 알아보는 기회가 되어서 무척 유익했다.
한수경 나누리기자 (서초중학교 / 1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