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선영 기자 (회천초등학교 / 6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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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는 평소 청나라 문물에 관심이 많았던 연암 박지원이 건륭 황제의 고희를 축하하기 위해 사절단의 일원으로 청나라를 다녀오면서 쓴 중국 기행문으로, 조선시대의 연경, 즉 베이징을 소개하는 최고의 기행문이다.
열하일기는 내가 읽은 고전 중 다음 내용이 계속 궁금해진 흥미로운 책이다. 책이 지루할 때쯤이면 “아마 이 글을 보면 다들 웃느라 입 안에 든 밥알이 마구 튀어나올 것입니다” 등의 위트 있는 말투로 피식하고 웃게 만들 뿐만 아니라 “몽골인들은 코가 우뚝하고 눈이 길다. 게다가 화난 듯한 인상이 우리와 무척 다르게 생겼다. 또한 옷과 얼굴은 지저분하기에 짝이 없다” 등의 상세한 설명으로 머릿속에서 그림이 그려지게 만들기도 한다.
벽돌과 기와로 집을 지은 모습을 보고 박지원이 부러워하는 모습이 정말로 문물을 받아들여 도움을 주고자하는 마음이 잘 나타나 보였다. 그 당시에는 우리나라 백성들이 초가집을 짓고 살아서 추위를 못 견딜 뿐만 아니라 초가를 1년에 한 번씩 다시 엮어야 하는 불편함도 컸다.
‘막북행정록’은 베이징(연경)에서 나와 왕이 있는 열하로 가는 여정으로 “장복이는 창대의 손을 잡고 꺼이꺼이 울어댔다. 가까운 벗이 되어 먼 곳까지 함께 왔는데 서로 헤어져야 하니 몹시 슬픈 모양이다. 그 모습을 보니 사람 사는 일 중에서 가장 괴로운 것이 이별이요. 이별 중에서도 산 사람 사이의 생이별이 으뜸인 듯하다”라는 글귀가 실려져 있었는데, 충남 서산에서 차례를 지내고 친척들과 헤어질 때의 나의 마음을 박지원이 꿰뚫어 보는 것 같았다.
박지원의 글 중 ‘어느 어느 것 하나 본받지 않을 것이 없는데 갈 길이 바빠 자세히 볼 수 없으니 안타까울 뿐이다’라는 말처럼 열하일기 중간 중간에는 청나라의 문물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박지원의 마음을 엿볼 수 있는데, 이는 박지원의 이용후생(利用厚生)의 철학 즉, 낙후된 현실을 개혁하기 위해서는 청나라의 발달된 문물을 수용해야한다는 주장이 녹아있다.
당시 병자호란이 일어난 후 조선은 청나라를 원수로 생각했다. 청나라를 오랑캐의 나라라고 해서 청나라의 문물을 절대 받아들이지 않았다. 청나라에게 복수를 하려면 그들의 문화를 알아야 하는 것 아닌가? 왜 인조는 소현세자가 ‘천문 역산서’ 등의 진귀한 물건을 들고 왔을 때 살펴보지도 않고 불태우라고 명했을까? 아무리 적이 쳐들어와서 복수를 해야 한다고 해도, 그 나라의 문화를 알았다면 우리나라는 그 문화를 바탕으로 더 강력한 계책을 세워 청을 무너뜨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지금쯤 우리나라가 더 빨리 선진국이 되어 독도문제나 동북공정 등의 역사적 사건들을 해결할 수 있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감히 해보았다.
나도 베이징과 중국을 자주 다녀왔지만 기행문을 잘 쓰지 않은 것이 후회가 된다. 주변의 생활들을 잘 관찰하고 기록한 이 열하일기를 보고 많은 도움이 되었다.
엄선영 기자 (회천초등학교 / 6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