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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호 2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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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글빙글~ ‘전자석팽이’는 사랑을 싣고

평일 오전의 대형 할인 마트는 주말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한산하고 쾌적했다. 식재료 코너 사이에 시원하게 뚫린 ‘도로’를 따라 카트라이더의 본능을 발산하며 짠돌 씨는 저도 모르게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이제 스톱! 슬슬 카트라이더 놀이는 그만 하고 돌아가자. 장 다 봤잖아. 몇 시간 있으면 애들도 돌아올 테고….”
“조금만 더 하면 안 될…, 아냐! 아냐! 자기 말이 맞아. 얼른 돌아가자.”


짠돌 씨는 아내의 눈초리가 위험 수위까지 올라간 것을 용케 눈치 채고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카운터로 향했다. 그래도 남는 아쉬움에 입맛을 쩍쩍 다시며 괜히 주변만 살피던 그의 눈에 완구 코너가 들어왔다.

아차, 그러고 보니 노느라 중요한 걸 잊고 있었다.

“아, 참! 그러고 보니 막신이랑 막희에게 여행 못 가는 대신 장난감 사 주기로 했는데….”
“그랬어? 마침 잘 됐네. 그럼 여기서 사.”


아이들이 바라는 것은 어쨌든 멋지고 재미있고 신기한 장난감일 터. 무엇을 어떻게 고르느냐는 둘째 치고, 아내 손에서 돈을 얻어내는 것 자체가 넘을 수 없는 난관이다.

“…내가 어떻게든 해결해 볼 테니까 저쪽 문구 코너 가서 네오디뮴 자석 두 개랑 1.5v 건전지 한 쌍만 사 와.”
“도, 돈은?”
“그쪽 주머니에 고이 접혀 쉬고 계시는 비상금으로도 충분하거든요? 난 먼저 이 짐들 계산할 테니까 자석 사들고 와. 주차장에서 기다리고 있을게.”


눈초리를 뾰족하게 세운 채 총총 사라지는 김 씨의 등을 따라, 대형 마트의 에어컨 바람을 뛰어 넘는 시베리아 강풍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짠돌 씨는 저도 모르게 어깨를 움켜쥐며 문구 코너로 발걸음을 옮겼다. 으흑, 그냥 출근할 걸….


다행히 시베리아 강풍은 집에 도착하기 전에 멎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김 씨가 뭔가를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는 바람에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거실에 멀뚱히 앉아 아내의 종종걸음을 멍하니 구경하던 짠돌 씨는 아내가 내민 종이와 가위를 보고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별 오려 줘. 예쁘고 균형 잡힌 모양 만드는 거 알지?”
“으응, 노력해 볼게…. 그건 그렇고, 아까부터 묻고 싶었는데 이걸로 뭘 할 거야?”
“일단 보기나 해. 생각보다 꽤 재미있을 걸?”


잠시 꼼지락 대던 김 씨가 “짜잔~”하며 내어놓은 것은 못과 자석, 전선이 붙은 작은 전지. 그리 거창하게 굴더니 겨우 이거냐고 짠돌 씨가 궁시렁 준비운동을 하는 순간, 자석과 자석 밑에 붙은 별이 힘차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눈이 휘둥그레진 남편이 전지로 고개를 들이미는 것을 보고 김 씨는 웃음을 터뜨렸다.


“자기 표정 걸작이야. 실험보다 자기 표정이 더 재미있다~.”
“이게 무슨 조화야? 자석이 대체 왜 돌아가는 거지?”
“전자기력 때문에 그래. 아마 중고등학교 물리 시간에 배웠을 텐데, 기억 나?”
“음, 어렴풋하긴 하지만…. 전류가 흐르는 선 주변에도 자기장이 생긴다는 그거?”

“정답~! 자석 주변에 자석의 힘이 작용하는 걸 자기장이라고 해. 그런데 자기가 말한 것처럼 전류가 흐를 때도 주변에 자기장이 생기거든. 그래서 전류가 흐르는 전선으로 전자석을 만들 수 있는 거지. 왜, 공사할 때 보면 철근을 커다란 판에 붙여서 번쩍번쩍 들어 올리는 커다란 차 있잖아? 그 판이 전자석이야. 우리가 흔히 자석이라 부르는 ‘영구자석’과 다르게 전자석은 전류의 양에 따라 자기장의 세기를 조절할 수 있고 영구자석보다 자기장 자체도 훨씬 강하기 때문에 여러 곳에서 쓰이고 있어.”

“그럼 전자석과 같은 원리로 이 자석이 돌아가는 건가?”
“이건 자기장 두 개가 만나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야. 둥근 네오디뮴 자석 주변에는 가만히 있어도 자기장이 생기겠지? 그런데 자석, 못, 전지를 전선으로 연결하면 전류가 흐르면서 또 하나의 자기장이 생기거든. 이 두 자기장 사이에 인력과 척력이 발생하기 때문에 못이 돌아가는 거지.”

“인력, 척력…. 아, 자석이 서로 당기거나 밀어내는 힘을 말하는 거지? 전류로 생기는 자기장에도 그런 힘이 있구나.”
“어엿한 자기장이니까 당연하지. 아까 얘기했듯이 전자석은 자기장의 세기를 아주 크게 만들 수 있기 때문에 MRI 같은 의료 기기에도 쓰여. MRI 찍을 때 들어가는 커다란 원형 터널이 전자석이야.”

“오오, 그렇군! 참, 하나 더 궁금한 게 있는데 왜 밑에 별을 붙였어?”
“자석만 두면 돌아가는 게 잘 안 보이거든. 별 같은 걸 붙여 놓으면 훨씬 보기도 좋고 재미도 있으니까….”
“왜 하필 별이야?”
“왜냐하면….”


묘하게 말끝을 흐리는 김 씨의 볼이 조금씩 빨개졌다. 짠돌 씨는 짓궂은 미소를 띠며 아내에게 좀 더 가까이 얼굴을 디밀었다. 아까 ‘별을 만들어 달라’는 주문을 받은 그 순간, 뇌 깊숙한 곳에서 살포시 떠올랐던 기억. 풋풋하고 달콤했던 그 가을의 풍경.


“내가 맞혀 볼까? 첫 데이트 때 종이별을 가득 오려줬던 거 기억한 거지? 그지?”


안 그래도 전기 팽이 보느라 얼굴을 가까이 했던 두 사람이다. ‘지이이이이’ 팽이 돌아가는 소리만 들리는 듯 들리지 않는 듯 이어지는 가운데 남편과 아내의 눈은 살포시 감겼다. 공기에 핑크빛이 맴돌고, 그리고…!

“학교 다녀왔습니다! 신종 플루 때문에 오늘 단축 수업…!”
“……”
“……”
“…인 줄 알았는데 제 착각인가 봐요. 다시 학교 가겠습니다. 두 분, 계속 하세요.”


얼굴을 가까이 하던 때보다 10배는 빠른 속도로 후다닥 떨어진 두 사람과 힘차게 열렸다 조용히 닫힌 현관문, 못과 자석이 분리된 채 바닥에서 뒹구는 팽이와 창문 너머에서 무심히 반짝이는 가을 햇살. 일상인 듯 일상이 아닌 듯 묘한 경계선에 선 어떤 것들이 흩어진 정오 무렵의 집안에는 미안함과 민망함이 적절히 배합된 아들의 목소리만 긴 여운을 남겼다.

<동영상으로 보기>


- 글 : 김은영 과학칼럼니스트
- 기사 제공: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과학향기’

위 기사의 사진 / 동영상은 CCL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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